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각자의 방에 살던 클레어와 올리버가 만나는 장면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각자의 방에 살던 클레어와 올리버가 만나는 장면이다. ⓒ 더웨이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두 주인공 올리버와 클레어는 사람을 도와주는 로봇 '헬퍼봇'이다. 지금 시대에서 보면 사람과 똑같이 생기고 기능도 훌륭한 미래형 로봇이지만 작품의 배경인 21세기 후반에서는 구형 로봇이라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다.

헬퍼봇들이 모여 사는 곳은 서울 메트로 폴리탄 외곽의 로봇 전용 아파트다. 그 곳에서 올리버와 클레어는 각 자의 방에서 잘 살고 있었다. 특히 올리버는 제일 친한 친구 화분과 사이좋게 살면서 본인 방이 최고로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충전기 좀 빌려달라는 클레어가 찾아오며, 두 로봇은 처음 만나게 되고 가까워진다. 올리버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활발하고 솔직한 클레어 덕분에 부쩍 친해졌고 그러다 함께 제주도로 떠난다. 올리버는 자신의 친구이자 옛 주인 제임스를 찾기 위해서였고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던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를 만나고 사랑도 하고 시련을 만나기도 한다.
 
귀여운 로봇들과 감성적인 무대 소품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 마디로 참 귀여운 작품이다. 그 중 로봇연기가 큰 몫을 한다. 극 중간 중간 로봇 같은 몸짓이나 말투를 하는데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오프닝 곡인 '나의 방 안엔'을 통해 작품 초반부에서 헬퍼봇의 특성과 작품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더 이상 부품이 생산되지 않는 낡은 로봇이라 직접 드라이버를 들고 수리하는 장면, 잡지 배달을 해주는 우편 배달부에게 "항상 수고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 등 직접 보고 있으면 올리버의 사랑스러움에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로봇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감성적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감성을 가지고 있는 점도 재미있다. 작품의 배경은 21세기 후반이지만 로봇이 발달했다는 건 무대만 보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주 배경이 올리버 방인데 이 곳은 온통 아날로그적인 소품들이 가득하다. 열심히 수집한 LP판이랑 잡지들이 집 안에 쌓여있다. 방 안 가득 울리는 LP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미래 세계의 로봇들인지 LP를 틀어주는 옛날 다방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나마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미래라는 시간적 배경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무대 뒤 편의 큰 스크린과 그 앞에 달린 원형 스크린들이다. 원형 스크린에는 날씨 예보나 올리버와 클레어가 와이파이 기능으로 검색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 원형 스크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데 무대 왼쪽에 올라와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말고 나머지 오케스트라는 모두 원형 스크린 뒤에 있다. 내내 나오지 않다가 특정 장면에서 갑자기 원형 스크린이 밝아지면서 연주자들의 실루엣이 나오는데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예뻤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참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귀엽고 중독적인 노래와 라이브 연주, 따뜻한 스토리, 캐릭터 한 명씩 확실한 서사. 스토리랑 감정을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관객과 호흡하는 작품이라 좋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올리버가 제임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올리버가 제임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 더웨이브


귀여운 클레어와 올리버의 사랑, 슬픔이 깔려 있기도...
 
그래서 이 작품은 바로 재관람을 했다. 처음 봤을 때는 클레어와 올리버가 두근거리면서 귀엽게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면 두 번째 봤을 때는 제임스에게 반했다. 극 중 제임스의 분량은 적다. 올리버의 회상 속에서 잠시 등장하거나 올리버가 LP판을 틀 때 배경 음악을 제임스가 나와서 부른다. 주로 제임스는 무대 뒤 쪽이나 사이드에서 올리버를 바라보는데, 올리버를 항상 지켜주는 것 같이 연출했다. 특히 '고맙다 올리버' 넘버에서 제임스가 매일 자신을 도와주는 올리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데 그의 표정과 눈빛에서 고마움과 사랑이 툭툭 떨어진다.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건 클레어와 올리버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둘은 망설임 없이 사랑에 솔직하다. 그 때문인지 작품은 이리저리 꼬이지 않고 오로지 두 로봇의 사랑이 시작되고 진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둘에게 큰 위기가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로봇의 사랑은 변치 않아서 동화 같았다. 게다가 둘의 귀여움에 웃느라 광대가 안 내려올 만큼 이들의 사랑이 사랑스럽다.
 
근데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작품 전체에 슬픔이 깔려 있다. 버림받은 구형 로봇이기에 사랑도 하고 기쁜 일도 생기지만 이별이 정해져 있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점점 더 망가져갔다. 팔이 고장 나고 다리가 고장 나고. 그래서 결국 기억을 초기화시키기로 결심한다. 서로를 알기 전 각 자의 방에서 행복했던 그 시절로. 아픔을 견디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고 했지만 서로를 위해 기억을 없애기로 약속하고 각 방으로 돌아간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가장 친한 친구 화분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올리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가장 친한 친구 화분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올리버 ⓒ 좋은사람 컴퍼니


어쩌면... 해피엔딩일까?
 
결말을 보면 올리버는 기억을 초기화하지 않았다. 클레어에게는 기억을 잃은 척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어쩌면 해피엔딩>의 결말은 관객과 배우들의 몫이 된다. 클레어도 올리버처럼 몰래 기억을 지우지 않았는지 아니면 지웠는지... 클레어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충전기를 빌리러 올리버 집으로 찾아온다. 전에는 클레어를 문전박대 했던 올리버가 이번에는 문을 아주 활짝 열어준다.
 
제목이 왜 '어쩌면 해피엔딩'인지 납득하게 되는 결말이다. 나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클레어는 차마 올리버와의 소중한 기억을 지우지는 못한다. 두 로봇이 결국 멈추게 될 거라는 새드엔딩은 변함이 없지만 사랑을 몰랐던 두 로봇이 사랑을 알게 되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혹시나 클레어가 기억을 지웠더라도 어쨌거나 다시 올리버에게 향했다. 아마 올리버와 클레어가 다시 사랑을 했다가 다시 기억을 지워도 둘은 또 서로에게 갈 것이고 또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 <어쩌면 해피엔딩>은 무조건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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