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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발간한 <대구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표지.
 대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발간한 <대구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표지.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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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대구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세세히 살핀 책이 출간됐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대표 배한동)는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펴낸 <대구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구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국판 248쪽의 이 책은 1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대구 3·1운동 주요 유적', 2부 '일제의 침략과 의병의 봉기', 3부 '1910년대의 독립운동과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 4부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5부 '대구의 3·1운동', 6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대구 출신 임시정부 소속 독립운동가와 그 유적 포함), 7부 '일제 강점기 10대 청소년들의 독립운동'으로 구성됐다.

1부에는 조선국권회복단 창립지인 대구 앞산 안일암, 대한광복회 결성지인 대구 달성공원, 1919년 대구 지역 3·1운동을 주도한 계성학교·남산교회·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 만세운동에 참가하려고 학생들이 뛰어올랐던 동산동 90계단, 시위대가 행진한 종로와 남장대 터(현 중앙파출소) 등지의 현재와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그림들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2부에는 일제의 침략을 맞아 우리 겨레가 보여준 창의 정신을 다루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전국 상황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대구의 사례를 비중 있게 다룸으로써 지역사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대구에서 척화비를 보려면 남산2동 938-19 관덕정 순교기념관 1층에 가라거나, 구한말 나라 안에서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문석봉인데 그의 생가터가 달성군 현풍면 성하길 68-7에 있다는 식이다.

2부가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리 없다. 이 책은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글로만 지루하게 해설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 가본 사람도 그 안에 게시되어 있는 내용을 제대로 독파하는 이는 드물다. 그 점을 감안해 이 책은 그 게시물들을 사진으로 찍어 글자를 하나하나 읽을 수 있도록 보여준다. 책 자체가 기념관인 셈이다.
  
 3.1운동 행진도
 3.1운동 행진도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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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910년대의 독립운동과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는 소제목만 보아도 내용의 상당 부분이 어디에 할애되고 있는지 짐작된다. 3부 첫머리에는 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의 한 문장이 적재적소를 찾아 인용되어 있다.

교과서는 '1910년대 항일 결사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단체는 대한광복회였다.'라고 기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광복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이 드물다고 책은 한탄한다.

3부는 또 1910년대 초반, 아직 대한광복회가 창립되기 이전 시절 국내 최대의 항일운동 단체였던 신민회의 최연소 가입자가 대구 사람이라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대구 서변동 출신 구찬회는 16세에 신민회에 가입하여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활동하다가 일제에 피체, 20세의 젊은 나이에 혹독한 고문을 당해 순국했다.

4부, 5부, 6부도 전국 상황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대구 지역의 독립운동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의 내용들과 마찬가지 편집 자세를 보여준다. 특히 6부에서는 임시정부에서 활동을 하던 이현수·이정호·이동호 3부자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이산가족'이 되었다는 내용이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장남 이정호는 남한에, 차남 이동호는 북한으로 갔는데, 남한에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통일운동에 매진했던 아버지 이현수는 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다.
 
 대구근대역사관.
 대구근대역사관.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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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독자들을 고려하여 배치된 7부 '일제 강점기 10대 청소년들의 독립운동'도 아주 읽을 만한 내용과 볼 만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15세에 순국한 여수 소년 주재년, 18세에 자진 입대한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재룡, 민족차별 행위가 유독 심했던 일본인 교사들을 골라 집단폭행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대구사범학교 학생들, 1920년대 최대의 항일 투쟁을 벌인 광주학생독립운동 참가 전국 320개 학교 5만4천여 학생들… 누가 10대를 어리다고 할 것인가.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배한동 대표(경북대 명예교수)는 "3·1운동을 시작한 우리 겨레는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1919년 4월 11일 이래 우리의 독립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그 이후 무수한 지사들의 끊임없는 투쟁에 힘입어 1945년 마침내 광복을 쟁취했다."면서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런 책을 펴내어 시민과 학생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지원해준 대구시에 감사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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