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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km걸을 때마다 1,000원을 기부하는 사람들(평화누리길 1코스 김포 대명항 염하강철책길 출발점에서)
 1km걸을 때마다 1,000원을 기부하는 사람들(평화누리길 1코스 김포 대명항 염하강철책길 출발점에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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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아침 9시, 경기도 김포시 대명항 평화누리길 1코스 '염화강철책길' 앞에 나이가 지긋한 남녀 11명이 옹기종기 모였다. 칼바람이 불어와 날씨는 무척 추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고 염화강철책길 14km 걷기 도전에 나섰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를 살펴보니 70대 이상 4명, 60대 3명, 50대 3명, 40대 1명. 최고령자는 77세, 최연소자는 40대 후반인 네팔에서 온 케이피 시토울라(네팔관광청한국사무소장)씨가 가장 젊다.

이번 평화누리길 걷기는 서울식품 김병용 사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는 2017년부터 동해안 해파랑길 770km를 완주하며 1km 걸을 때마다 1000원의 성금을 기부해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희망장학금으로 한국자비공덕회(www.kjb.or.kr)에 후원 한 바 있다. 2019년도에는 평화누리길 189km를 걸으며 네팔어린이들을 위한 희망장학금을 기부하기로 하고 평화누리길 완주에 도전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국토대장정에 나선 김병용씨의 뜻에 감명을 받은 '희망봉여행자클럽' 회원들도 이번 평화누리길 걷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이들은 모두 여행길에서 만난 순수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출발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염화강철책길에 들어서니 염하강 변에 키를 훌쩍 넘기는 철책선이 살벌하게 장벽을 이루고 있어 일행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말로만 듣던 철책선이 강변을 따라 높게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분단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바라보며 말없이 걸었다.
 
강변에 높게 장벽처럼 드리워진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강변에 높게 장벽처럼 드리워진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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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네팔에서 온 케이피 시토울라씨는 평화스럽기 만한 강변에 장벽처럼 길고 거대하게 둘러쳐져 있는 철책선을 바라보며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하고 철책선 구멍 사이로 강을 바라보기도 하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장벽처럼 드리워진 살벌한 철책선을 신시한 듯 바라보는 네팔인 케이피 시토울라 씨
 장벽처럼 드리워진 살벌한 철책선을 신시한 듯 바라보는 네팔인 케이피 시토울라 씨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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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진 손돌목에 도착하니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강화해협 중에서도 가장 좁은 폭을 사이에 두고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손돌목'이라고 한다. 손돌목이라는 이름이 특이해 안내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슬픈 사연이 있었다.

고려시대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해 도성으로 쳐들어오자 당시 왕이었던 고종(高宗)은 강화도로 피난하면서 바다를 건너갈 배를 마련하지 못해 뱃사공 '손돌'의 작은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물길이 좁아 앞이 보이지 않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겁에 질린 왕은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손돌이 이 지역의 물길이 험해서 그러한 것이라고 했지만 고종은 손돌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손돌은 죽기 전에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손돌을 참수하고 흘러가는 바가지를 따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뱃사공의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일행은 목숨 바쳐 자신을 살려준 뱃사공 손돌을 무고하게 죽인 왕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길을 재촉했다.
 
고려시대 순돌 뱃사공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손돌묘
 고려시대 순돌 뱃사공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손돌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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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묘에서 내려와 부래도 앞에 도착한 일행들은 가져온 음료수와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눈앞에 보이는 부래도(浮來島)는 글자 그대로 염하강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통진읍지' 기록에 의하면 부래도는 강화와 통진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을 따라 한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한다.

오후 1시 일행은 마침내 1코스 종착점인 문수산성 남문에 도착했다. 문수산성은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성곽에 오르니 염하강과 어울려 주변 경관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다.

문수산성 남문 앞에서 평화누리길 14km 완주를 돌파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참가자들은 따끈한 칼국수로 몸을 데우며 오늘 걸었던 평화누리길 걷기 후일담을 각자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나누었다.

"우리가 언제 이런 길을 걸어보겠습니까? 염하철책길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데 오늘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매우 뜻 깊은 길을 걷게 되어 너무 영광입니다."

"저는 손돌묘의 사연을 읽고 너무 슬펐어요! 자신을 살려준 뱃사공을 무고하게 참수를 하다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다시는 그런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마스테! 네팔에서 온 저는 오늘 평화누리길 걷기가 평생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강가에 둘러쳐진 살벌한 철책선을 바라보며 남과 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평화누리길 걷기에 첫 발을 내딛었으니 모두 올해 안으로 여러분의 건강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평화누리길 189km를 꼭 완주하시기를 바랍니다."


칼국수를 맛있게 먹은 후, 참가자들은 각자 14km에 해당하는 14000원의 성금을 네팔어린이 희망장학금을 위해 기부했다.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 같다. 참가자들은 작은 정성을 모아 남을 도우며 걷는 보람이 이루 말할 수 크다며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태그:#평화누리길 염화강철책길, #네팔어린이 희망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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