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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어학연수가 끝났다. 지난 2018년 7월의 일이었다. 50대 후반 나이에 필리핀 바기오에서 3개월을 보냈다. 결혼 이후 가족과 가장 오래 떨어져 있었다. 지나고 보니 3개월은 어학연수 기간으로 부족한 듯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한 달, 공부에 대한 고민과 갈등으로 또 한 달을 보냈고 영어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니 어학연수 기간이 끝난 것이다.

수업을 함께 듣는 동료들이 송별회 자리를 마련했다. 과자와 콜라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덕담을 나누었고 정성스레 작성한 카드를 나에게 주었다. 영어, 태국어, 일본어에 서툰 우리말까지. 그들의 따스한 마음에 감사하며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으로 어학연수는 마무리됐다.
 
어학원 동료들 어학원 동료들과의 환송회
▲ 어학원 동료들 어학원 동료들과의 환송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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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여정

이른 아침 바기오에서 짐을 꾸려 마닐라로 이동했다. 공항 인근 숙소에 짐을 풀고 마닐라 베이 인근에 있는 쇼핑몰로 이동했다. 어학연수생에서 여행자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쇼핑몰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발전했던 과거의 추억을 간직한 쇼핑몰은 영화관, 아이스링크, 콘서트홀 등 멀티 콤플렉스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스산한 분위기였지만 '마닐라 베이',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인트라무로스', 필리핀 독립 영웅 호세 리잘이 처형된 '호세 리잘 공원'과 한인 타운이 형성된 '말라테'에서 여유로움을 즐기며 필리핀 생활을 마무리 하였다.
 
마닐라 베이 필리핀 수도 마닐라 베이
▲ 마닐라 베이 필리핀 수도 마닐라 베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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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보낸 3개월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휴일에 다녀온 여행지는 매력적이었다. 친절한 어학원 교사, 청소부터 식사 준비까지 궂은 일을 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던 직원들, 그리고 산책할 때 늘 만났던 가게와 카페 주인까지 모두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 어디나 비슷한 법.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겠지.

집에 도착했다.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계절은 어느새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식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며 정감을 나누니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서재 책상 앞에 앉아 필리핀에서 찍은 사진을 보자니 3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실패한 어학연수

나의 어학연수는 실패였다. 성공과 실패의 객관적인 잣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고 듣는 것도, 쓰고 읽는 것도 연수 전과 비교해서 변화가 없었다. 필리핀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3개월을 보낸 것은 의미 있었지만 영어 회화 실력은 늘지 않은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하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졸업장 졸업장
▲ 졸업장 졸업장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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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었다. 토익이나 토플 시험 성적 올리기, 회사 승진, 더 나은 삶을 위한 워킹 홀리데이 등 젊은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온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어권 국가에서 적당히 공부하면 적당히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둘째,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수십 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문법이나 단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준비 없는 어학연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초가 부족한 내가 짧은 시간에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어학연수원 바기오 어학연수원 모습
▲ 어학연수원 바기오 어학연수원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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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기숙사 다인실을 사용하는 연수생들은 국적이 다른 학생끼리 같은 방을 배정한다. 동료와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기간과 비례하여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적극적인 학생들은 방과 후에 교사들과 어울려 취미 활동을 함께하며 영어 공부에 몰입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이 어린 동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1인실을 사용했다.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다른 연수생들과 살갑게 가까이 지내지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으니. 자연히 말하고 듣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어느덧 육십이란 나이가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지만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어학연수를 떠난 것만으로도 의미 있겠지. 세상에는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어학연수를 떠나던 날, 70대 택시 기사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가슴에 여운으로 남는다.
 
"나이 육십이 되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고, 칠십이 되면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같습니다."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살라는 말씀이 아닐까. 필리핀 어학연수는 끝났지만 남은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며 살고 싶다. 설령 끝나고 나서 후회가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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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