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은 이제 인터넷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은 스마트 기기와 컴퓨터를 통해 단순히 정보를 주고 받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었으니까요. 무슨 일을 하든 인터넷이 끼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전작 <주먹왕 랄프>에서 만나 단짝이 된 아케이드 오락실 게임 캐릭터 랄프와 바넬로피 역시 인터넷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바넬로피가 나오는 게임 '슈가 러시'의 운전대가 불의의 사고로 파손되고, 인터넷에서 비싼 돈을 주어야만 운전대를 구할 수 있게 되자,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기계 자체를 없애 버리기로 했기 때문이죠. 랄프와 바넬로피는 '슈가 러시'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인터넷에 직접 뛰어듭니다.

소재와 주제가 잘 어우러진 수작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스틸컷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작 <주먹왕 랄프>는 추억의 아케이드 게임들을 스크린으로 소환해 잘 재현한 동시에, 반복과 규칙성에 기반한 아케이드 게임의 논리를 이야기에 잘 녹여내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영웅 신화의 모티브가 지닌 아이러니를 극대화함으로써 정서적 깊이까지 확보했죠.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역시 소재의 본질에 충실한 묘사와 그에 걸맞은 주제 의식이 돋보입니다. 우선, 오늘날의 인터넷 세상을 구축한 여러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했습니다. 검색창과 개별 웹사이트의 연결, 팝업 광고, 아이템 거래, 동영상 공유, 온라인 게임 등 인터넷 세상에서 이뤄지는 기본적인 활동을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누구나 알기 쉽게 영상으로 풀어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배경인 작품답게 2편의 주제는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자아의 확장입니다. 랄프와 바넬로피는 고작 '슈가 러시' 핸들을 찾으러 인터넷에 들어왔을 뿐이지만. 관계 맺기(네트워킹)를 통해 점점 가능성을 확장해 갑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취향을 존중하는 자세는 필수적이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 주인공들은 한 단계 도약하게 되죠.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디즈니 공주들이 총출동하는 장면들입니다. 바넬로피는 얼떨결에 들어간 디즈니 웹사이트에서 <인어공주>(1989) 이후의 나온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의 공주들을 한자리에서 다 만납니다. 전편의 설정상 자신도 공주인 바넬로피는 다른 공주들과 대화를 통해 변화의 실마리를 얻게 되죠. 디즈니 공주들 역시 이질적인 존재인 바넬로피와 교류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디즈니 공주들과 함께 바넬로피가 겪는 변화는 지난 몇 년간 디즈니가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통해 추구해 온 여성 중심 서사를 아주 명시적이면서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푼젤> 이후에 나온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픽사 작품은 제외)이 그랬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가 그랬듯이요. 다만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한 듯 다소 직설적이고 단순한 전달 방식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 이해와 존중이 할 수 있는 일
 
 영화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스틸컷

영화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휩쓴 신자유주의는 오로지 자본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경쟁을 통한 이윤 극대화와 효율성 제고가 마치 지상 과제인 양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세계 대공황 이후 국가의 역할로 여겨온 공공 서비스와 복지 제도를 사적 자본의 경쟁 체제에 돌려줘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그 진위와 상관없이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며 빠르게 퍼져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의 집중과 빈부 격차 확대를 부추겼으며, 인종-성-종교 등 여러 층위에서의 갈등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상호 이해와 존중, 그리고 협동은 필수 불가결한 가치입니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 속에 힘을 합치지 않으면 밥벌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다른 인간에게 신세 지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얻는 이득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노력이나 희생에 기반한 것입니다.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가 그린 인터넷 세상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상대의 취향과 결정을 존중할 수 있을 때만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터넷상의 연대는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개인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도 서로의 지식과 기술을 빌려주면 충분히 할 수 있게 되니까요, 물론 상대를 모욕하고 기만하며 착취함으로써 단기적 이익을 꾀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교한다면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속 바넬로피와 디즈니 공주들이 보여준 여성 캐릭터의 각성과 연대,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랄프가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바넬로피의 선택을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 등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와 존중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 때 좋은 결과는 물론, 행운도 따르는 법이니까요. 
 
 영화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포스터

영화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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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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