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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작물은 눈에 덮여도 금방 녹여낸다
▲ 시금치 월동작물은 눈에 덮여도 금방 녹여낸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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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농사일은 작년 가을에 수확한 콩(서리태, 밤콩, 강낭콩, 팥)을 도리깨로 내리쳐서 타작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바닥에 펼쳐놓은 콩대에 붙은 콩깍지가 도리깨를 맞으면 '탁탁' 소리를 내며 콩을 토해낸다.

그동안 콩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서 파종 시기를 보름 정도 앞당겼는데, 가뭄에도 예상을 넘는 백배(?)의 수확량이 나왔다. 서리태는 조금 덜 익은 것들이 있어서 올해는 보름 정도 더 앞당겨 6월 초에 파종하면 제대로 여물은 콩이 나올 것 같다.

콩 타작을 하는 비닐하우스에서 흘리는 땀은 여름과 다르게 시원하고 개운하다. 그 기분을 더 느끼려고 하루 만에 끝낼수도 있었지만 서너 번에 나눠서 조금씩 했다. 몸을 움직이면 이마에 땀이 맺히는 비닐하우스와 달리, 바깥은 휑한 칼바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비닐하우스의 안과 밖의 온도 차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몸의 전율을 느낄 만큼 크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비닐을 씌워준 양파
▲ 비닐터널 찬바람을 막아주는 비닐을 씌워준 양파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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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작물의 생존전략

농장의 노지밭에는 월동을 하는 양파, 마늘, 쪽파, 시금치가 동면(冬眠)을 하듯이 꼼짝 않고 겨울과 대치하고 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긴 한파가 없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겨울 가뭄으로 겉흙이 바람에 날릴 만큼 푸석거린다. 한겨울이라도 수분부족은 흙과 작물생육에 좋지 않다.

추운 겨울에 월동을 하는 작물의 생존전략은 뿌리내림이 얼마나 깊고 넓게 활착됐는지에 달렸다. 앞에서 말한 서리태콩의 여물기가 파종시기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월동작물도 파종시기를 제때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작년과 같은 초강력 한파가 길어지면 제때에 파종을 했더라도 소용이 없음을 경험했기에 날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요즘이다.

뿌리활착이 충분히 안 되면 양분과 수분의 흡수율이 떨어지면서 강추위와 가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말라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생육이 부진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해 추운 지역에서는 비닐터널을 씌워서 보온과 수분유지로 작물을 월동시킨다.

콘크리트 위에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텃밭은 노지밭과 달리 지하수로부터 올라오는 지온(地溫)이 단절돼 있어서 월동작물 재배에 불리한 환경이다. 마찬가지로 비닐을 씌워주면 찬 바람을 막고 햇볕을 저장해 보온을 할 수 있다.
  
흙과 단절된 콘크리트 텃밭에 비닐을 씌웠다
▲ 옥상텃밭 흙과 단절된 콘크리트 텃밭에 비닐을 씌웠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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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예보에서도 실제기온과 몸이 느끼는 체감온도의 차이가 큰 것을 생각해보면 비닐 한 장의 효과는 대단하다.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니며, 농장의 마늘밭은 입춘 무렵에 비닐을 덮어주면 점차 날이 풀리고 흙이 녹으면서 마늘의 성장을 앞당길 수 있다.

월동작물이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뿌리활착을 안정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작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적 작용으로 추위를 이겨내려는 노력을 한다. 농장과 가까운 이웃한 농부는 오랜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안 죽는 것 보면 신기해, 그게 다 뿌리가 잘 (활착)돼서 그런 거야. 날이 추워지고 눈이 내려도 뿌리에서 차가운 기운을 빼내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거야."

작물의 생존전략을 오랫동안 지켜본 농부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을 한다. 식물의 뿌리는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면서도, 반대로 뿌리를 통해서 밖으로 배출도 한다. 삼출액(滲出液)작용은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을 공생하는 토양미생물에게 나눠주고, 양분을 얻는 과정에서도 교환방식으로 화학물질을 배출한다. 월동작물에게는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의 12월에 수확한 양배추 맛이 달다
▲ 양배추 영하로 내려간 날씨의 12월에 수확한 양배추 맛이 달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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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작물의 맛은 달다

월동작물의 또 다른 매력은 맛이 좋다는 것이며, 그 맛의 표현을 '달곰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긴 겨울을 버텨낸 월동작물의 맛은 달다.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단맛이 배어 있다. 그 이유도 겨울의 추위와 관련된 것으로, 순수한 물은 -0도에서 얼지만, 불순물이 있으면 응고점의 온도는 더 내려가야 한다. 물로 채워진 작물의 세포는 겨울에 당분을 높이는 작용으로 추위를 견딘다.

가을에 수확을 예상했던 양배추의 속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서 월동을 하기로 했다.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양배추가 겨울을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을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일부는 비닐을 씌우고 생육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겨울 추위가 시작되면서 양배추의 상태를 보러갔다가 놀랐다. 어느새 빈속을 채워서 단단해진 양배추가 많아진 것이다. 봄까지 먹을 만큼을 수확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아삭한 맛에서 달곰함이 많이 느껴졌다. 여린 속잎을 감싸고 있는 겉잎이 두꺼운 것은 겨울을 버티겠다는 결의로 느껴졌다.

농사를 짓다 보면 예상을 못 한 상황과 현상들을 볼 때가 있다. 해마다 노지의 월동작물을 안타깝게 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현실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가드닝,인드라망 생명공동체 회원 소식지에도 송고 예정입니다.


태그:#양배추, #서리태, #삼출액, #광합성, #월동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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