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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어금니가 말썽이다. 치과의 공포심이 극에 달한 상태라 안가고 싶었지만 어쩔수가 없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시큰거린다. 더 이상 못 참겠어서 치과에 가기로 했다.

치과에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나는 일반 전화로는 통화가 어렵다.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려면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후, 옆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 내 옆에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다시 나에게 말해주거나(입모양을 봐야 알아들을 수 있으므로), 문자로 쳐 주어야 통화를 할 수 있다.

2016년도에 그런 서비스를 해 주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손말이음센터가 그곳이다. 손말이음센터는 전화통화가 어려운 청각·언어장애인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만든곳이다. 나처럼 듣기는 어렵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문자 중계를 해주고, 듣기와 말하기가 모두 어려운 사람에게는 수어로 통역을 해준다. 손말이음센터에서 문자와 수어로 통역해 주는 사람을 '중계사'라고 부른다.

치과에 가기로 마음먹은 지난 2일, 손말이음센터에 컴퓨터로 접속했다. 예약을 위해서다. 웬일인지 그 날 따라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치과에 대한 공포심을 겨우 달래고 접속했는데 연결이 안된 것이다. 신년이 되어 새해 인사하느라 이용자가 많은가보다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지 하며 콜을 넣었는데 서너번 콜을 넣어도 중계사가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결국 손말이음센터를 이용해 치과 예약하는 것을 포기했다.
 
 손말이음센터 화면. 콜을 넣었는데 받지 않았다.
 손말이음센터 화면. 콜을 넣었는데 받지 않았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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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침에 다 보지 못한 신문을 마저 보는데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장애인 통역' 중개사들 새해 첫날 해고 '날벼락'"이라고 쓰인 헤드라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청각·언어 장애인의 전화 소통을 돕는 수화중계사들의 직접고용 전환을 앞두고 절반에 가까운 중계사들을 무더기로 해고…(중략) 2019년부터 '진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중계사 12명은 새해 첫날부터 일자리를 잃게 됐다. (중략) 졸지에 실업자가 된 중계사들의 빈자리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채워지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한겨레> 2019년 1월 2일자 13면)

해고된 중계사들도 기가 막힌 일이지만 나에게도 날벼락 같은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새해 벽두부터 생길 수 있지? 지난해도 겨우 숨만 쉬며 살았는데 올 한 해는 또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손말이음센터가 생긴 지 올해로 11년째다. 청력이 많이 나쁘지 않은 나는 이런 센터가 있다는 것을 모르다가 2016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센터를 이용해 전화를 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컴퓨터로 센터에 접속해 내가 통화하고자 하는 전화번호를 치고 기다리면 중계사가 화면으로 뜬다. 수어를 이용해 통화를 하는 사람은 화면에 뜨는 중계사의 수어통역을 보고 통화를 한다.

나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중계사가 상대방의 말을 문자로 쳐준다. 처음에 이 서비스를 이용해 보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동안 전화를 하려면 누군가가 꼭 옆에 있어야 했는데 손말이음센터를 이용해 전화를 하면 나혼자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문자를 치지 않고 말로 하니까 편하고 좋단다. 내용이 길어지면 카톡이나 문자보다는 말로 하는 게 용이하니까. 건청인(청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을 잘 모르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전화 한 통화가 매우 절실할 때가 있다.

청각장애인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끈' 이어주길

이번 경우처럼 병원에 예약을 해야 할 때,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살 때, 카드를 분실해서 급히 은행에 전화를 걸어 신고해야 할 때, 사고가 나서 112나 119에 신고할 때는 모두 전화로 해야한다. 건청인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손에 든 전화로 위급한 상황을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과 농아인은 전화 한 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즉, 생명과 직결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멈췄다(엘리베이터 안에는 청각장애인 혼자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비상벨이 있지만 음성으로만 소통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지시를 들을 수 없다. 얼마나 무섭고 불안하겠는지 상상해보라.

2018년 6월에 심각한 사건 때문에 상대방과 꼭 통화할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손말이음센터를 통해 전화했다. 다행히 연결이 잘 되었고, 중계사는 친절하게 상대방의 말을 문자로 통역해 주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건의 내용을 들었고 사과도 받았다. 만약에 손말이음센터가 없었다면 문제를 풀기 위해 사람을 만나러 왕복 6시간이 넘는 거리를 움직였을 것이다. 그 때 부터 손말이음센터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서비스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손말이음센터 중계사들을 '3단계 정규직 전환 시험'을 핑계로 해고했다. 8년째 손말이음센터에서 수어통역을 해 온 황소라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장은 "정규직 전환 시험 절차, 평가 기준 등 모든 것이 부실 그 자체였으며 1차 시험은 시험 바로 전날인 12월 18일에 문자로 통보했고 최종 면접은 올해 1일 정규직 전환 마감을 5일 앞두고 치러졌다"며 진흥원의 횡포를 말했다.(레디앙)

중계사가 해고되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12명의 중계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24시간 돌아가며 근무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수어를 보여주는 화면으로 성희롱을 당한 중계사도 있다고 한다. 상부에 보고했지만 별다른 개선책을 내놓지 않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고 청각장애인에게 더 질 좋은 서비스를 해주기 위해 중계사 충원을 요구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돌아온 결과가 '해고'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정보화진흥원은 중계사들을 해고했지만 그것은 30만 청각장애인들의 '생명줄'을 끊은 것과 같다. 지금이라도 진흥원은 중계사들을 직접 고용해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청각장애인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끈'을 이어 주기 바란다.

설날이 다가온다. 무뚝뚝한 엄마는 문자나 카톡을 쓰지 않는다. 얼마 전에 손말이음센터를 이용해 전화했다. "어떻게 전화를 다했어? 청력이 갑자기 좋아졌니?"라고 묻길래, "요새 세상이 좋아졌잖아. 엄마가 하는 말을 컴퓨터에 있는 중계사님이 문자로 다 쳐줘. 이제는 엄마가 하는 말 다 알아들을 수 있어.  앞으로는 이걸로 전화 자주 할게"라며 신나게 통화했는데. 이번 설에는 엄마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하지?

며칠 전에는 온라인 홈쇼핑에서 사고 싶었던 생선구이 오븐을 파는 걸 봤다. 생선을 자주 구워 먹기 때문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 벼르고 벼르다가 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주문은 전화로 해야 한다. 손말이음센터로 전화하면 친절한 중계사님이 도와줄텐데 오늘도 콜을 받지 않는다.

남편의 도움으로 치과에 예약하고 어금니와 사랑니를 뺐다. 어금니를 뺀 곳에 임플란트를 해야한다. 치과에 자주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어쩌나. 앓던 이를 뺐으니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해고된 중계사들을 생각하니 고통이 다시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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