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춥다. 엄청 춥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겨울이 오고야 말았다. 겨울이 싫은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여름은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버틸 수 있는데, 겨울은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계절이다.

매년 겨울마다 나는 움직임을 최소로 줄이고 동물들처럼 동면(冬眠)에 들어가는데, 재작년에는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느라 충전을 못 했다. 이번 겨울에는 동면하고 싶지만, 그러기에 세상은 쉬게 할 정도로 여유롭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길을 나선다.

영화 '대관람차(The Goose Gose South)'는 일본 오사카로 출장 간 우주(강두 분)의 동선을 따라간다. 일본 거래처 직원과의 술자리에서 실종된 선배 대정(지대한 분)의 이야기가 나오고, 술에 취한 우주가 대정을 닮은 사람을 따라가다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술집 '피어34'로 들어가 주인장 스노우(스노우 분)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만둬요, 회사." 주인장의 말에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술집으로 돌아온 우주, 그리고 그를 어이없게 바라보는 스노우.  
 
 우주는 전화로 사직 통보를 하고 다시 ‘피어34’로 돌아온다. @영화 갈무리
 우주는 전화로 사직 통보를 하고 다시 ‘피어34’로 돌아온다. @영화 갈무리
ⓒ 대관람차

관련사진보기

  
영화는 여름의 일본 오사카를 배경으로 음악과 함께 전개된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진짜 '이방인'이 된 우주는 대정과 함께 꿈꿨던 음악을 '피어34'에서 다시 시작한다. 음악과 공간이 연결하고 조합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야기는 포크 선율처럼 담담한 듯하면서 중간중간에 큰 파동을 던지기도 한다. 

나는 감독의 지인이라는 덕분에(?) 이 영화의 제작과정을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감독의 전작과 연결해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백재호 감독은 배우로 먼저 시작했고, 여러 단편과 장편의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로도 역할을 해 왔다. <대관람차>의 극장 상영이 끝난 지금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바보, 농부>의 감독으로서 올해 5월 개봉을 앞두고 한창 마무리 작업에 있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겸손과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 좋은 친구이자 동지이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과 행동도 놓치지 않는다. (영화에는 세월호 참사와 지진이 투영돼 있다). 그의 다양한 행보와 도전, 그리고 내적인 고민들이 이 영화 속에 묻어있고, 그를 닮은 '우주'라는 인물을 탄생시킨 것 아닐까 싶다. 

영화의 시작은 대정을 찾아 나선 우주의 여정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목소리에 기울이게 되는 우주의 이야기로 끝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명확한 설명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끝나는데, 장면의 의도에 대한 내 질문에 백재호 감독은 "보시는 분들이 완성해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쉽지만 계속 질문을 던져봤어요"라고 답했다. 여행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예술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결국 자신이 걷는 것이 길이며, 답은 자신이 찾는 것이니.
 
 오브젝트 레슨스
 오브젝트 레슨스
ⓒ 플레이타임

관련사진보기

  
친구출판사 플레이타임에서는 '오브젝트 레슨스(Object Lessons)' 시리즈로 네 권의 작지만 알찬 책을 출간했다. (이 시리즈 원본은 훨씬 많은 책이지만 계약상 우리나라에서는 4권만 출간되었다고 한다.) 네 권의 책이 서로 다른 주제와 장르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호텔>을 제일 좋아한다. 

호텔에 들어서는 한 여성, 나는 호텔을 돌아다니면서 리뷰를 쓰며 돈을 버는 일을 한다. 호텔마다의 공간적인 특성, 리뷰어인 나를 대하는 호텔 직원들의 표정과 태도, 그리고 호텔 투숙객들에 대한 관찰은 나의 일상과 교차되면서 서서히 전개된다. 

이 책은 한 권의 책이기도 하지만 여러 개의 파편이기도 하다. 평범한 소설 같았던 이 책은 형식상 갑자기 연극의 대본이 되기도 하고,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변신한다. 나만 고정이 되어 있을 뿐, 불안한 시선 속에 내 주변의 사람들이 오간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자꾸 상상하게 된다. 이방인으로서의 보이는 그녀가 일상에서는 지금과는 반전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작가 조애나 월시는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작가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연극으로 만들어지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의 건조하면서도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특유의 '비꼬는' 화법이 다음 쪽으로 서둘러 넘기게 만든다. 여행이 돈과 시간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준비를 요하는 이방인이 되는 법인 반면에, 책 읽기는 이방인이 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 않을까.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당신이라면 단연 이 책, <호텔>을 추천하고 싶다.
 
 술에 취한 우주에게 낯선 여성이 나타나 호통을 치고 사라진다. @영화 갈무리
 술에 취한 우주에게 낯선 여성이 나타나 호통을 치고 사라진다. @영화 갈무리
ⓒ 대관람차

관련사진보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왜 이렇게 여유롭게 살죠?"


위의 멘트는 감독의 전작 <그들이 죽었다>에서도 볼 수 있다. 감독이 앞서 말한 관객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의도대로 이 멘트 역시 각자의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은데, 나는 이 멘트가 우주(또는 영화를 보는 나 자신)를 억누르는 외부의 시선이라고 읽었다. 살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했을 때 흔들림이 적어지는데, 나는 항해의 돛을 어디로 올리고 있는가 보다 어디로 가든 자신 있게 갈 준비가 돼 있나 싶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정주하는 삶을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옥천에 내려온 지 어느새 7개월이 되었다. 새 직장 생활에 바빠서 계획했던 것들을 많이 해내지 못했고 아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니까. 세월호 참사나 지진이 일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방인도 특이한 대상이 아닌 그저 사람일 뿐이며 결정적으로 나 역시 이방인이기에. 

대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유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상 속에서 틈을 벌려 이방인이 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책 <호텔>과 영화 <대관람차>
책 <호텔> (2017)
플레이타임 펴냄 ∥ 조애나 월시 지음 ∥ 이예원 옮김
http://00bookcoop.com/shop/%ed%98%b8%ed%85%94

영화 <대관람차> (2018) 
감독 백재호, 이희섭 ∥ 출연 강두, 호리 하루나, 스노우, 지대한 등 ∥ 러닝타임 111분
* 굿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 음악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 O.S.T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루카 : 매일 순간순간을 여행이라 생각하다가 옥천에 눌러앉았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정주하는 삶, 괜찮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루카는 땡땡땡협동조합 서평단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땡땡책협동조합은 책을 읽고 쓰고 만들고 전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책 읽기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이웃과 연대하며 자율과 자치를 추구하는 독서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