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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다르게 보기'의 발원지다. 더 나은 시공에 살고자 꾀하는 상상세계다. 지금 여기의 실재와 관념의 버무림인 셈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지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온갖 경험들이 그 재료로 동원된다. 저마다의 재료에 기초한 갈망의 보편적 이야기가 신화인 거다.

저자 고 이윤기 작가는 그것을 일상의 문화적 현상에서 찾아내 보여준다. 삶터의 한 흔적이 신화세계로 이끄는 티켓이다. 그 티켓행이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 또는 '역류의 신화학'이다. 여기서 신화는 그리스 신화다.

이윤기를 처음 만난 건 번역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다. 이후 어떤 번역서든 필요할 때면, 그의 것이 있는지부터 찾았던 게 기억난다. 요즘도 다른 이의 번역서를 보다가 외국어와 국어(한글)의 접점을 잘 찾는 그의 맥 짚기가 아쉬울 때가 있다. 물론 소설가로 등단한 그를 마주했던 기꺼움도 떠오른다. 개정판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를 반가움에 냉큼 집어든 이유다. 거친 말이나 말 같지 않은 말들에 치이는 요즘, 신화를 통해 세상 통찰을 전하는 그의 구수한 입담이 간절하다.

여행자 이윤기에게 말을 거는 건 대개 현지 구조물이나 그림이다. 프랑스 센강 시테섬 들머리 구조물에 앉혀진 '크로노스'를 시작으로, 유럽 곳곳의 구조물들은 신화의 상징성을 통해 자기 역할을 설명한다. 거기에 관여한 설계자들과 시공자들이 자기가 짓는 건축물에 대해 정통했음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지난해 정부세종청사 신청사 설계 논란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상상력은커녕 주변과의 조화를 꾀하는 건축철학마저 놓친 행정 실태(失態)가 두드러진다.

그 맥락 없는 문화 현상을 이윤기도 지적한다. "서울 우면동 예술의 전당 앞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절망했다면서. 상상력과 무관한 그 예술 전문 구조물은 우리네 외화내빈(外華內貧)이 중증임을 입증한다.

이윤기는 우리네 일상에 스민 범세계적 그리스 신화 흔적들도 가리킨다. 한 예로 신세계 백화점이 고객들의 크리스마스와 연말맞이를 축하하며 정문에 내건 장식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뿔'인데, 그 이미지가 남근과 조개 이미지로 통합됨을, 더 나아가 우리 민담이나 전설의 '화수분 단지(멧돌)'로, 파리의 시장에서 본 바닥이 없는 원뿔 모양의 바구니와 연계됨을 알려준다. 

읽다보면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재밌는 비유도 있다. 알렉산더 대왕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로스의 관자놀이에 그려진 '제우스-암몬의 뿔'이 이후 사자가죽을 머리에 쓴 것으로 바뀌었다는 대목이다. 알렉산드로스를 제우스나 디오니소스보다는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와 동일시하는 게 낫다는 당대의 평가다. 헤라클레스가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프랑스 상원 건물은 그래서 "힘을 전제로 하는 평화"다. 평화 정착을 위해 필요한 뱀처럼 지혜로운 그 권력이 지금 여기서 아쉽다.

"뱀 모습을 한 의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로마에 입성시킨 권력은 지혜롭다. 의술의 신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를 계승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렇게 구축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산물이다. 국부를 신화의 영원성에 접목시켜 졸부 이미지 탈출을 꾀한 국가 차원의 성공 사례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우리네 토착 신앙도 다신교다. 유일신 문화를 선진 문명으로 내세워 정통성을 미신으로 단죄한 우리네 삶이 일상 속에 다양한 신들을 끌어들여 삶의 지혜를 되새김질하는 그네 삶보다 더 탄탄할 수는 없다.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는 신화에 젖줄 댄 일상어들을 소개한다. 치명적인 약점을 비유하는 '아킬레스건', 아프로디테의 별명에서 따온 '포르노그래피' 혹은 '포르노', 감질나는 상태를 의미하는 영어 '탠털라이즈(tantalize)' 등 꽤 많다. 그들 어의는 뱀의 여러 겹 상징이나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처럼 안팎이 있는 신화의 형용 모순을 암시한다. 인생에 잠재하는 그 덫에 대해 이윤기는 '다나오스의 딸'을 예시하며 일침 놓는다. "그러니까 똑바로 살아야지요."

이윤기에게 그리스 신화는 현대인(어른)이 잃어버린 "어린이의 말"이다. 그 앳된 고음을 듣고 뒤돌아보게끔 조성된 유럽의 현대 공간은 변주를 통해 인간적 뿌리를 보전하며 이어간다. 그와 달리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가 어려운 우리네 생태계는 인간의 생명력을 뭉개 없애는 격이어서 삭막한 풍경이다. 옥상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서 피어난 꽃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 박완서의 소설이 생각난다. 이윤기가 한 수 일러준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를 응용해 오늘을 제대로 읽고 똑바로 사는 일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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