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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바기오에 생활이 마무리되고 있다. 아직 3주 남았지만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 많은 나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귀국을 위해 바기오에서 마닐라 가는 버스표를 구입했고 주말을 이용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나웨(Banaue) 라이스테라스(rice terrace)를 여행했다. 어학원 입소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나는 여행. 3개월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졸업 선물인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라이스 테라스'

어학원에 이틀간 외박 신청을 하고 금요일 새벽 배낭을 메고 어학원을 나오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연수생에서 여행자로 바뀐 것이다. 바기오에서 라이스 테라스가 있는 바나웨까지 거리는 198km.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산 넘고 물 건너 6시간 지난 후에야 바나웨에 도착했다.
 
라이스 테라스가 있는 바나웨 가는 길
▲ 바나웨 가는 길 라이스 테라스가 있는 바나웨 가는 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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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테라스는 이푸가오 지방 코르디예라 산맥(2922m)의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랑이 논으로 2000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논둑 길이가 무려 2만km 이상으로 지구 반 바퀴 거리. 원주민인 이푸가오 족이 2000년 동안 일구어낸 삶의 터전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다. 20페소 지폐에도 라이스 테라스가 새겨져 있을 정도로 필리핀의 자존심이자 자랑거리.
 
라이스 테라스 문양이 있음
▲ 20페소 지폐 라이스 테라스 문양이 있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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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푸가오주에는 수많은 라이스 테라스가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은 바타드 마을. 이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해발 2천 미터 고지를 넘어야 한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시클을 타고 힘들게 고개를 넘는데 기사님 말씀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 포장이 되지 않아 걸어 다녔다고 한다.

트라이시클에서 내려 20여 분을 걷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이푸가오족이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진 다랑이 논이 펼쳐진 것이다. 산 능선을 가득 채운 다랑이 논에는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가파른 산을 오직 인간의 힘으로 바닥을 다지고 논을 만든 뒤 돌이나 진흙으로 논두렁을 만들고 산꼭대기의 숲에서 물을 끌어와 벼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대중 교통 수단
▲ 트리시클 오토바이를 개조한 대중 교통 수단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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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타드 마을 모습
▲ 라이스 테라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타드 마을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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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이 논의 맨 아래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최근에 만든 것이다. 인간의 피땀 어린 노력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장대한 생활문화 경관인 것이다. 다랑인 논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수천 년의 유구한 삶의 모습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선배 졸업식 모습

필리핀 바기오 어학연수가 막바지로 가고 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으니 시간에 가속이 붙은 듯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다.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리움이 솟구쳤다. 3개월의 연수 기간을 통해 소소한 일상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에게 힘을 주며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함께하는 가족, 너스레를 떨지만 늘 즐거움을 주며 술자리를 함께하는 친구,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일희일비했던 직장 동료 등. 함께 이야기하고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세상과 내가 어우러져 살 때가 행복이었음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니 알 것 같다.

어학원 입학은 매주 월요일에 이뤄진다. 우리나라, 일본, 대만, 중국 등에서 주말에 출발해 마닐라를 거쳐 토요일이나 일요일 밤에 어학원에 도착하면 월요일부터 연수가 시작한다. 연수 기간은 천차만별이지만 기간에 상관없이 마지막 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라운지에서 졸업식이 거행된다.

선배 졸업식에 참석했다. 다음 주가 나의 차례여서 졸업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사각모와 꽃다발로 멋을 낸 졸업생들이 졸업장을 받고 소감을 발표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식당 모습은 엄숙함보다는 축제 분위기였으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호기심 때문인지 모두 들뜬 모습이었다.
 
선배들의 졸업식 모습
▲ 졸업식 선배들의 졸업식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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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모습
▲ 졸업식2 졸업식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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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 끝난 학생은 주말을 이용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호주나 캐나다로 떠난다. 그 빈자리는 신입생으로 채워진다. 떠나고 채워짐이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어학원 곳곳에서 우리말이 가장 많이 들렸었는데 어느 순간 중국어로 바뀌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대만 학생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 어학원 식당에서 낯선 젊은이가 웃으면서 인사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니, SNS 통해 알았다고 한다. 내 글의 영향으로 바기오와 어학원을 선택했다고. 나의 흔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

태그:#필리핀, #바기오, #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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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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