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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표지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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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이었다. 정확히는 11월 11일, 우리에게는 그저 빼빼로데이로 인식되는 그날에 독일 제국의 항복으로 4년간의 혈전이 막을 내린 것이다. 우리에겐 광복의 결정적으로 작용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 더 익숙하지만,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하 "1차 대전") 종전은 이듬해 2.1무오독립선언, 2.8독립선언, 3.1독립선언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기폭제가 됐다. 

1차 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14개조 평화 원칙', 그중 하나가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귀속, 정치 조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천명한 민족자결주의다. 이는 1차 대전 사후 처리를 위한 국제 회의인 파리강화회의의 베르사유 조약에 받아들여졌다. 

곧 세계 각국, 특히 식민지 국가로 퍼진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우리나라에도 당도, 연속되는 독립선언과 독립운동의 근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일본 제국이 협상국으로 승전국 자리에 앉아 있는 와중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된 한국대표단이 문전박대를 당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1919년 우리나라의 자력 독립은 불가능했다.

즉, 1차 대전 종전 후 확립된 세계질서는 매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이었다. 민족자결주의, 베르사유 조약, 파리강화회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주의와 조약과 회의 그리고 사이사이 수많은 그것들은 결과론적으로 또 다른,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파국의 전주곡과 다름 없었다. 겉으로의 세계 평화 열망과는 전혀 달리 열강, 즉 승전국들 간의 이권 다툼으로 시작해 끝을 맺은 1차 대전 사후 처리는 이후 오랫동안 계속되는 폭력의 구렁텅이를 친히 만들어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

전쟁에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승전국과 패전국이 생기기 마련이다. 승전국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패전국에서 배상 책임을 물게 마련이다. 1차 대전 주요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기타 등등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 등의 주요 패전국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배상 책임을 문다. 독일을 향한 프랑스의 배상 책임은, 과거 나폴레옹 전쟁과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복수와 복수의 사슬과 이어져 있다.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김영사)는 1차 대전을 바라보되 1차 대전 전후 '전간기'를 파헤친다. 전간기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시기를 말하는데, 흔히 잘못 알고 있듯 이 시기는 전쟁 없는 휴식기이자 평화로운 시대가 아닌 양차 대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폭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였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의 1/3에 달하는 참고문헌이 말하고 있듯 이 책은 광범위하면서도 촘촘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어졌는데, 1차 대전의 승전국 아닌 패전국의 상황과 1차 대전 양상보다 1차 대전 이후인 전간기를 깊이 파헤침으로써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아닌 '끝나지 않은 전쟁'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저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엄청난 논란과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때의 승전국들이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와중에, 패전국의 상황을 위주로 묘사하는 비주류적인 면모를 보이는 건 학자로서 크나큰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러하기에 저자가 장착한 방대한 사실적 자료들이 빛을 발한다. 1차 대전사는 다시 쓰여져야 하지 않을까. 아니, 전간기사가 제대로 쓰여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혼돈의 평화'로의 폭력적인 이행

이 책의 주제는 1차 대전에서 '혼돈의 평화'로의 폭력적인 이행의 면면들이다. 더불어 주지했다시피, 1차 대전 패전 제국들과 대전 이후 그곳들이 어떤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1차 대전에서 전후 평화로의 이행 이야기는 생소하거니와 대전 자체 이야기보다 관심과 흥미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대를 살아간 많은 사람들에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일 것이다. 

책은 1차 대전 시기이자 러시아 혁명기인 1917년부터 전간기 초기이자 그리스-터키 전쟁이 종결되며 1차 대전 연합국 측과 터키 간 로잔 조약을 맺은 1923년까지의 유럽 이야기가 20세기 유럽을 특징지은 폭력의 사이클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전제로 출발한다. 시작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기억되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일명 10월 혁명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레닌에 의한 사회주의 수출과 지배, 정복 야욕은 유럽을 '혁명'과 '반혁명'의 물결로 나뉘게 한다. 즉 사회주의 볼셰비키 세력과 그를 극렬히 반대하는 세력. 1차 대전 와중임에도 혁명과 반혁명의 대립은 유럽을 휩쓸어 외부의 전쟁과 따로 또 같이 내부의 전쟁으로 번진다. 극렬한 폭력에 안전한 곳 따위는 없어진 것이다. 

하여 유럽을 휩쓴 내전은, 그리고 내전이 남긴 병폐는 1차 대전이 종결되었음에도 계속된다. 그것은 내전의 형태뿐만 아니라 국가 간 영토 전쟁의 형태, 독립전쟁의 형태를 띠기도 했는데, 다양한 형태들이 동시에 진행되기도 하면서 중첩된 강들들이 상호 강화되어 폭력이 점증,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는 제1차 세계대전의 유산

폭력 갈등이 지속된 지역들은 주로 패전국,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독일 제국 등 구제국들과 더불어 러시아 제국도 포함된다. 전쟁 결과 이 제국들은 여지 없이 무너져 해체되었는데 제국 질서를 대체할 시스템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와중 폭력의 양상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층위적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또한 승전국임에도 불구 전후 협상(파리강화회의 등)에서 패배했다고 믿는 이탈리아, 1차 대전 직후의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한 그리스 같은 경우 여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1차 대전 후의 폭력 양상 중, 2차 대전과 이후의 수많은 전쟁들 즉 20세기를 관통하는 폭력의 극렬한 기준을 세운 게 있다. 본래 전쟁이란 특정 영토를 차지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1차 대전 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계급'이니 민족자결주의의 여파로 '민족'이니 하는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전쟁의 목표가 더이상 영토 차지가 아닌 계급과 민족의 적을 말살하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세우는 게 되어버렸다. 

이른바 '민족 청소' '인종 청소'로 불리는 이것은 히틀러에 의해 훌륭히(?) 계승되어 600만 명 유대인 대학살을 시작으로, 일본 전쟁범죄와 캄보디아 킬링필드, 유고 내전 등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고 밀접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도 '이념'이라는 전쟁의 새로운 목표가 불러온 비극이다. 1차 대전 후 열강의 입맛에 따라 제멋대로 국경이 그어졌지만 '종교'라는 절대적 전쟁 목표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게 뿌리 내린 아랍 지역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듯 보인다. 

지난해 11월, 1차 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영국, 프랑스, 독일 수장들이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평화를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서로를 치하하며 보다 돈독한 미래 비전을 약속했다고. 하지만 이 책이 말하듯이 1차 대전은 끝나지 않았다. 1차 대전이 남긴 유산은, 망령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힌다. 

21세기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1차 대전 유산과 망령의 대표적 케이스는 바로 미얀마에 의한 로힝야족 인종청소이다. 19세기 영국의 미얀마 정복 때부터 야기된 미얀마-로힝야족 갈등은 방관과 협력과 반목을 거듭하다 2010년대 이후 다시금 극렬한 대치 사항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반군과 정부군의 내전 사태로까지 이어졌고 정부군은 로힝야족 민간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로힝야족 민간인들은 더이상 미얀마에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엑소더스를 감행,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했다. 전 세계적인 규탄이 계속되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향한 학살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2011년 시작되어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여파로 2015년 수백만의 난민이 유럽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수없이 많은 난민들이 유럽을 향했지만, 이는 전무후무한 숫자인 것이다. 전쟁의 목표이자 대상이 된 민간인, 나아가 인종, 한 쪽이 한 쪽의 전체를 말살해 버리는 전쟁의 양상은 앞으로 변함없이 계속될 것인지. 2020년을 바라보는 이때에도 그 결과인 난민 사태가 생기고 있는 것을 보면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는 게 아닐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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