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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에서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이 숲 속에서 점심을 먹으며 저들끼리 웃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하도 예뻐서 등산길도 잊고 한동안 주저앉아 넋을 잃고 바라봤다고 쓰고 있습니다. 

언제 마음껏 많이 웃었을까 돌이켜보면, 김훈이 봤던 것처럼 저 역시 여고시절에 친구들과 근심 없이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딸이 많은 집안에서 자랐는데(무려 다섯입니다), 자매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낄낄거리며 웃는 일이 많습니다.

지금도 자매들과 만나면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우스꽝스러운 춤을 선보이거나, 판소리를 열심히 배우지만 도통 실력이 늘지 않는 남편의 에피소드를 재현해 웃음 폭탄을 터트리게 합니다. 제가 바보가 돼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지요. 그게 가능한 것은 신뢰의 관계(여고시절 친구들이나 우애가 깊은 가족)가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란 책으로 모멸 권하는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했던 사회학자 김찬호가 이번에는 유머를 통해 사회의 면면을 살펴보고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 <유머니즘>을 냈습니다. 

 
<유머니즘> 책 표지  사회학자 김찬호의 새 책 <유머니즘>이 나왔다.
▲ <유머니즘> 책 표지  사회학자 김찬호의 새 책 <유머니즘>이 나왔다.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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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은 2014년에 나왔는데, 당시 땅콩 회항 사건과 같은 갑질 사건들이 사회에서 공분을 일으키고 있던 때여서 이 책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모멸감>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멸감의 본질을 분석하고, 왜 사람들이 그토록 자주 직장과 학교, 군대 등에서 모멸을 주고 받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멸감을 극복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합니다. 독자들은 일상적으로 주고 받았던 모멸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공감하였기에 이 책은 널리 회자되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선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세상을 읽어내 온 김찬호는 어느 날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유머에 대해 연구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농담 한 마디를 던졌는데 오히려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왜 농담이 통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 그는 유머의 본질과 사회적 연관성이 궁금해집니다. 그리하여 2015년 가을에 처음 구상을 하고, 3년여 시간 동안 관련 자료도 모르고 또 여러 곳에서 유머에 관한 강좌를 진행했으며, 수강생들과 의견을 나누며 내용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세간에 우스개를 모아놓은 유머집은 가끔 나오지만, 유머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은 드뭅니다. 책의 제목인 <유머니즘>은 유머가 무엇이고,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김찬호의 생각을 드러내주는 제목입니다. 유머니즘은 '유머+휴머니즘으로 인간의 존엄을 세우면서 더 나은 삶을 빚어내는 유머; 놀이와 웃음으로 표현되는 탁월한 인문정신'입니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1부는 웃음이 피어나는 과정, 2부는 유머의 문법, 3부는 유머 감각의 여섯 기둥, 4부는 제대로 된 웃음을 위한 맥락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5부는 유머가 의미의 창조이고 생각의 해방구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멸감'을 넘는 유머를 천명한 사회학자 김찬호  한국 사회의 면면을 예리하고 분석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사회학자 김찬호
▲ "모멸감"을 넘는 유머를 천명한 사회학자 김찬호  한국 사회의 면면을 예리하고 분석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사회학자 김찬호
ⓒ 김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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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맥락에 대한 감수성 파트는 유머를 둘러싼 삶의 풍경을 돌아보게 합니다. 작년에 우리 사회를 흔든 중요한 키워드가 '미투'였습니다만, 농담이 희롱이 되는 경우를 저자는 말해줍니다. 돌이켜보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가 회식 자리 등에서 성적 농담을 할 때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음담패설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있고, 절대 나눠서는 안 되는 관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상하관계이거나 갑을관계와 같이 평등한 관계가 아닐 때 강요되는 억지웃음은 앞서 저자가 말했던 모멸 권하는 사회의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같이 웃을 수 있으려면 '정서적 신뢰'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머 코드가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데 맞춰서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제대로 된 조롱과 풍자는 우리 조상들이 판소리 등에서 했듯이 권력자를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촛불 시민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바로 그러한 풍자와 여유였습니다. 반면 코미디언들조차 종종 구설에 오르는 것이, 이민자,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과 여성을 비하하여 유머를 만들 때입니다. 그들의 낮은 인권 감수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천박한 웃음입니다. 웃음은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관계와 공동체에서 크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한 웃음은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작가 로맹 가리도 유머가 그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쓰고 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 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 유머는 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중략)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요,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함의 확인이다."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에서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암담하고 슬픈 소식들이 도처에 있고, 새해가 된다고 해도 우리 삶이 썩 나아지리란 전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새해가 되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새 희망도 품어보고, 새 계획을 만들며 심기일전하게 됩니다. 건강과 일, 공부에 대한 소망도 있겠지만, 이번 새해에는 잘 웃어보자는 목표를 세워보면 어떨까요? 새해 돼지해에 복돼지처럼 배부르고 정서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새해엔 우리 함께 웃으면 '돼지'요(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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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고 여행하는 삶을 삽니다. 책이나 영화, 연극을 텍스트 삼아 일상의 삶을 읽어내고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