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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해도,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외로움은 두려움을 낳는다. 두려움은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가져간다. 때문에 외로움을 이겨 내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면 외로움을 이겨 내고 힘이 되는 동료를 얻지만,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준다.

그래서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다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부정적인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예를 들면 가족, 학교, 직장과 같은 자신의 생활 반경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 속에서 어떤 이는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학교 급우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직장 내에선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서 망가져 간다.
  
사실, 살아가면서 건강한 관계만을 가지고 살기는 쉽지 않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사회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라고 교육받는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볼수록 의문이 든다. 여전히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보다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일하는 말 잘 듣는 사람을 원하는 것 같다. 
   
주체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과 나의 관계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고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여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고립되어 가는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고립된 사람들의 관계를 지원하는 사업은 많지 않음에도 건강한 관계 형성에 이바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청년 세대의 고립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청년 활동 지원 센터는 물적 지원인 청년 수당 외의 다른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관계 지원 사업인 어슬렁 반상회가 대표적인 예다. 어슬렁 반상회는 청년 반장이라고 하는 주체적 청년이 특정한 주제를 잡아서 수당 참여자 중 희망하는 사람을 뽑아 관계를 형성하는 사업으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그중 참여자들에게 가장 많은 호응을 얻는 프로그램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모임이다. 9~10명의 사람이 모여서 청년 반장이 가져온 주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안정된 관계망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슬렁 반상회는 청년 반장이라고 하는 주체적 청년이 특정한 주제를 잡아서 수당 참여자 중 희망하는 사람을 뽑아 관계를 형성하는 사업으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어슬렁 반상회는 청년 반장이라고 하는 주체적 청년이 특정한 주제를 잡아서 수당 참여자 중 희망하는 사람을 뽑아 관계를 형성하는 사업으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 서울청년활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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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원 씨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3년 동안 진행해왔다. 준원 씨는 청소년 시절 겪었던 좋지 못한 관계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심적 불안감으로 힘들어했다. 이를 이겨 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알코올 중독이 될 정도로 악화되었다.

상담 치료를 결심하고 받으러 간 날, 상담치료사가 자신의 말을 묵묵히 들어 주기만 했던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준원 씨의 말에 어떤 의견이나 판단을 하지 않았고, 그저 들어 주기만 하였는데도 '이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안전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 치료를 계속해 삶의 만족도가 많이 좋아졌고 그날의 편안한 감정을 떠올리면서 안전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어슬렁반상회 주제모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일상에서 안전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모임이다.
  어슬렁반상회 주제모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일상에서 안전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모임이다.
ⓒ 서울활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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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나이, 학력, 이성 취향 등 서로에게 민감한 질문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되도록 물어보지 않고, 1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묻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청년 반장이 가져온 주제(주제는 보통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다.)를 가지고 모두에게 발언권을 주고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참여자들이 가장 만족했던 것은 나이, 학력 등 자신에게 콤플렉스가 되는 것들에 관해 묻지 않고, 1주일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정리하고, 그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나를 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생기는 유대감에 대해 많은 효용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 프로그램 참여자는 '삶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같이 살아갈 동료를 얻었고, 동료들이 있기에 어떤 위험이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자존감이란 결국 나 혼자만 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서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지키는 힘을 갖도록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12월, 청년 활동 지원 센터에서 더 성장한 어슬렁 반상회를 만들기 위해, 어슬렁 반상회 관계자와 참여자가 모여 약 3시간 동안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많은 만족도를 보임과 동시에 적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도 내비쳤다. 지원자에 비해 적은 인원을 뽑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참여할 수 없는 점도 이야기 했다. 관계자들은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업의 효용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참여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그룹인터뷰의 결과, 사업의 효용성이 있으나, 너무나도 부족한 인력과 재정으로 인해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참여자들과 관계자들은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다음번에는 참여대상을 수당 참여자뿐만 아니라, 서울시 청년 전체로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
   
청년 지원 사업인 청년수당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수당 참여자의 조사를 통해 매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빛나는 성적표를 만들었던 것은 물적 지원인 50만 원을 통해서만은 아니었다. 함께 진행하는 관계 지원 사업이 있었기에 더욱더 높은 만족도가 나온 것이 아닐까? 
   
결국 국가의 권한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모든 사람을 다 돌볼 수 없다. 관계 지원 사업은 국가가 관심을 갖고 돕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손 내밀고 함께 살아가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서로 소통하며 함께 보듬으며 살아가는 삶을 위해 더 많은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자.

덧붙이는 글 |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월 2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태그:#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서울청년정책LAB, #어슬렁반상회, #청년모임, #청년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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