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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지 3년이 넘어간다. 속초에서 4~5년간 극단생활을 하다가 인연 닿는 대로 춘천, 원주를 거쳐 두 달간 연극해서 번 돈 70만원을 들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따신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집에 가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나 혼자 힘으로 자립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가족에게 손 벌리기는 싫어서 보증금이 없는 대학로 고시원으로 향했다. 근처 식당 겸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고시원과 일터를 오가며 창도 없는-창이 있고 없고가 5~7만 원가량 차이가 났기에-1평 남짓한 방 한 칸에 들어가 앉아있으니 '고립'이란 단어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전철역만 해도, 거리를 걸을 때도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전철역만 해도, 거리를 걸을 때도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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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이야기를 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 전철역만 해도, 거리를 걸을 때도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러다 근처에 희곡 읽기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로에서 벌써 수년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좋은 희곡 읽기 모임"이라는 곳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속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용기를 내 참여했고 비로소 막혀있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청년예술가들의 모임 단체를 알게 되었다.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고립에 대한 불안감도 점점 옅어져 갔다. 지내는 환경은 여전히 열악했지만, 함께 사회 이슈에 관한 퍼포먼스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놓쳤던 끈을 서서히 다시 잡은 느낌이었다. 

이후 '내가 원하는 삶이 뭘까'를 고민하며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 나눌 청년 모임을 지인과 함께 만들었다. '하숙공방'이라는 작고 아담한 공간에서 버거운 책 읽기, 너도나도 글쓰기, 영화 보고 이야기 나누기, 사회적 사건들에 대하여 토론하기, 하루 여행, 등산, 자전거 타기, 아침낭독 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진행하고 참여했다.

이런 소소한 모임들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단연 대화 나누기였다. 3명부터 8명까지 소수로 진행되는 활동이었기에 다양한 주제에 대해 풍부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원하는 모임을 누구나 만들어 1:1로 진행해도 좋고 형식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다. 쉽지만은 않았던 서울살이에 뿌리를 내리게 해준 활동들이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참 나를 찾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의미 있다. 그 시간은 고요하면서도 건강하다. 그러나 고립은 스스로를 해친다. 함께하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상태로 행복할 수 없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거나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삶은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워졌다. 하고 싶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청년수당1)의 도움이 컸다. 월 50만 원씩 지원을 받는 6개월간 시간도 많아졌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직장생활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관심 있는 모임에 들어가 취미 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이랬다. '너야 지금 시간이 많아서 그렇지.', '직장 끝나고 피곤해서 움직일 힘도 없어.', '그런 체력이 어디서 나와?'

백수 생활을 한 지 오래지만 나 또한 사무업무, 편의점, 식당 서빙 등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 말들이 이해가 갔다. 일을 마치고 난 뒤 버스를 타고 가다 창가에 비친 피곤함에 찌든 얼굴. 문득 거울을 보다 마주친 퀭한 두 눈. 그래서 더 추천하는 거다. 일로 받은 스트레스, 피로를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풀고 충전하라고 말이다.

1) '서울시 청년수당'이란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취준 청년들의 구직 활동을 돕는 수당이다. 매월 50만원 씩 최대 6개월까지 수령할 수 있다.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은 이를 활용해서 취업준비등 창작활동 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출처 : 네이버포스트 청년정책있슈).

서울에 사는 소시민 오한량(닉네임)님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 일 외에 예술영화관 큐레이터, 독서 모임, 청정넷2) 청년모임, 극장리뷰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 본인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들이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보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생긴다. 특히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그런 부분들에서 재미를 느낀다.

2) 청년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해법을 시도하는 능동적인 시민참여 플랫폼

모임에 처음 참여하기가 부담된다면 주위에 있는 친구와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너무 부담되는 긴 시간 진행하는 모임이라든지 사람이 많은 모임보다 작은 모임부터 소소하게 시작한다면 그다음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고. 체력을 '소모'하는 활동이 아니라 만남을 통해 '충전'하는 시간인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으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타인과의 소통으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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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활동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확신이 든다. 갈수록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립감은 높아져만 간다. 혼밥과 혼술이 비일비재하고 고립 속에 세상을 향해 폭주하거나 삶을 포기하는 사건들이 늘어간다.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 노년층 세대들 또한 심한 고립감 속에서 괴로워한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님은 소통과 순환, 즉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이것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경우 억눌린 상태에서 타인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대가 고립감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분노를 마음 안에 담고 있는 것이다.3)

3) 감정시대 - EBS감정시대 제작팀 글 인용

앞으로 점차 노동의 비중이 줄고 공적 자산이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 화폐, 가족의 협소한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고립에 대한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고립은 '나'밖에 없는 세상이다. 혈연, 돈 관계를 벗어나 찾아야 할 관계는 '우정'의 관계다. 함께 관계 맺음으로 만들어가는 지성과 배움을 통해 속으로만 쌓이던 스트레스를 밖으로 해소하고 몸과 맘을 릴렉스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돈독한 신뢰의 관계를 맺고 인생이라는 길을 같이 걸어가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보통 불교에서 쓰이는 용어지만 단순히 종교적 언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에 좋아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도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나와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과 만나 다양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함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일이다. 

모든 모임에서 나와 딱 잘 맞는 사람을 만났던 것도 아니었다.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했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관계 유지가 쉽지 않았다. 좋았던 모습만 간직하고 싶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연락을 잘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내게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더욱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기 시작했고 나 또한 나의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는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점차 관계를 지속하는 기간이 늘어났다. 

올해 내게 참 값진 일은 서로를 응원하는 '도반'을 만난 것이다. 정답이 없는 의문투성이인 삶을 살아가며 믿을 수 있는 사람, 서로를 응원해주는 단 한 명의 동료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한 해를 돌아보며 그런 관계가 있다면 편지나 혹은 메시지를 보내 고마움을 표시해보는 건 어떨까? 아직 없다면 내년에는 관심 있는 작은 모임에 참여해 마음을 나누는 벗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

덧붙이는 글 |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2월 25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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