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03 09:29최종 업데이트 19.01.09 16:07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2018년 12월 22일 토요일, 파리에 모여 드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시위대의 모습. ⓒ 연합뉴스/AP

    
크리스마스 직후, 고속도로를 타고 노르망디 해변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곳곳에 심어져 있는 과속탐지기 절반 이상이 노란조끼들에 의해 분쇄되었다는 보도는 과연 사실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 가족은 프랑스인들의 절대 다수와 마찬가지로 분쇄된 과속탐지기를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왜 고속도로 통행료 받는 기계는 그냥 놔뒀냐며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종종 고속도로 교차로에 모여 앉아 불을 피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란 조끼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운전자들은 프랑스 시민운동사를 새로 쓴 그 주인공을 향해 클랙션을 울리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노란조끼들은 손을 흔들거나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이며 응답했다.

프랑스에서 과속탐지기는 더 이상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선한 의도의 도구로 간주되지 않았다. 감시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합법적으로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도구로 여겨질 뿐. 복지를 구축하는 데 제대로 쓰이지 않는 세금은 합법적 착취로 여겨질 뿐이었다. 

국가라는 이름의 권력을 내세워 다수의 생존을 위협한 자들을 응징한 용감한 시민들의 힘을 노란조끼가 보여주었다면, 2018년의 마지막 해가 저물 무렵 헤드라인에 다시 등장한 "알렉상드르 베날라"라는 이름은 어리석은 권력자가 무너져 내려가는 일에 결정적 힘을 싣고 있다.

알렉상드르 베날라는 누구인가
 

''보좌관 스캔들' 청문회 출석 한 알렉산드르 베날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전 보좌관 알렉산드르 베날라가 지난 2018년 9월 19일 메이데이 시민 폭행 관련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 연합뉴스/AP

 
일명 '베날라 스캔들'의 시즌2가 막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무장경찰 복장을 한 채 메이데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개인적 분풀이를 하듯 경악할 만한 폭력을 휘두른 동영상의 주인공이다. 약 두달 후 동영상 속 인물이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스캔들로 번졌다. 

알렉상드르 베날라(27)는 여론의 불같은 요구 끝에 해임됐다. 그런데 그가 외교 여권을 가지고 아프리카를 드나들며 콩고, 차드 등 여러 나라의 권력자를 만나왔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노란 조끼와 같은 주요 현안들에 대해 대통령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바로 그의 입으로 폭로됐다. 

앞서 지난해 7월 '메이데이 폭행 사건'은 르몽드 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확인됐다. 이때 마크롱의 내리막길도 시작됐다. 왜 대통령 보좌관이 경찰로 위장하고 시위대 진압에 가담하여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인가? 대통령은 그 당연한 의문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않았다. 엘리제궁은 당시 베날라의 행위를 파악하고 15일간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지만,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은폐했다. 짧은 징계를 마치고 베날라는 본업에 복귀해 대통령을 밀착 수행했고, 그의 눈과 귀, 그리고 최근 보도에 의하면 때로는 머리까지 공유해온 듯하다.

지난 7월말, 야당의 압박과 끓어오르는 비난 여론 앞에서 마침내 베날라를 해고했던 마크롱은 측근을 쳐내는 상실의 안타까움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이후 내무부 장관과 체육부 장관, 환경부 장관이 더 이상 마크롱과 함께 일할 수 없음을 시사하며 내각을 떠났다. 이어진 장관들의 자진 사퇴는 장관들을 허수아비처럼 세워두고, 한줌 측근들에 둘러싸여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마크롱의 통치 스타일에 경고장을 날리는 행동이었다.

스무살 때부터 사회당 주요 인사들의 경호원과 운전사를 맡아온 20대 전문 경호원 베날라. 마크롱이 올랑드 정부의 경제부 장관직을 내던지고 대통령 출마를 선언할 무렵(2016)부터 인연을 맺고 그를 경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마크롱 부부와 밀착된 관계를 형성했고, 마크롱이 엘리제궁의 주인이 된 후에는 대통령 경호책임자, 대통령실 특임 보좌관, 경호 관련 서비스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대통령에게 고급 아파트까지 제공받는 등 특별대우도 받았다. 

언론은 줄곧 이 사건을 '베날라 스캔들'이라 불러왔다. 하지만 해고된 이후에도 그는 대통령과 수시로 국정을 논했으며 외교관 여권을 지니고 프랑스의 무기수출국인 아프리카 국가들을 드나들며 권력자들과 만남을 지속해 왔다. 그렇다면 문제의 진원지는 베날라라는 인물의 일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부적절하게 나눠 준 마크롱 자신이다. 

얼핏, 박근혜 정권 시절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떠오르게 하는 사건이다. 그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고, 권력 체계를 작동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함께 고락을 같이해온 최측근하고만 소통했다. 퇴행적인 권력 작동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비슷한 모습이 마크롱에게서 드러난다. 엘리제궁은 베날라가 "해고에 대한 응징을 하는 중"이라며 그의 발언이 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지만, 야권은 대통령을 향해 "이제 그만 진실을 양탄자 밑으로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외교관 여권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12월말 언론보도로 알려지기 직전까지 대통령과 끊임 없이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주장하는 베날라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 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대화 내용은 모두 내 전화기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상세하게 덧붙였다.

"쥬피터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만방에 선언했던 마크롱의 실체는 자신이 파면한 옛 경호원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 국정 현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나약한 존재였던가? 대통령은 당연히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그 불완전한 존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민주주의 시스템은 다양한 권력분산의 장치를 발명해 냈다. 최고 권력자가 분산된 권력 시스템의 작동을 거부하고 군주제로의 퇴행을 거듭할 때, 국가라는 유기체는 생존의 본능으로 가장 밑바닥의 힘을 작동시키는 법이다.

진실, 존엄, 희망
  
진실, 존엄, 희망. 이것은 2019년 마크롱의 신년사에 등장한 핵심 어휘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바로 그것을 지금 마크롱에게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베날라 스캔들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안타까운 표정으로 애써 감추려하는 대통령과 여유만만하고 당돌한 베날라의 얼굴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두 사람이 맺은 관계의 진실을 파악하게 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지난 대선, 사회당 후보였던 브누아 아몽은 이 사건을 두고, "대통령은 자신을 좀 더 존중하면서, 프랑스 국민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8년, 끝없이 이어지던 지옥의 계단을 내려오다, 차분히 도약할 기회를 찾고 있던 마크롱 앞에 다시 등장한 베날라의 얼굴.  마크롱에겐 저승사자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작동시켜온 모순의 온전한 결과물이다. 그 진실을 외면하고, 또 다른 거짓을 덧붙이는 순간, 이 정권은 스스로가 만든 덫에 잡히고 말 것이다.
 

지난 12월 13일 유럽 이사회 후 기자회견하는 마크롱 대통령 모습. 2018.12.16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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