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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족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족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고 임세원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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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유족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을 멈추어 주길 호소했다.

2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임세원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는 이런 내용의 유족 뜻을 밝혔다.

임씨는 "유족의 뜻은 귀하고 소중했던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의료진의 안전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자 범죄의 강력 처벌과 의료 안전을 둘러싼 논란에는 "우리 오빠와 같이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자신의 진료권 보장과 안위를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질환을 빨리 극복하기를 동시에 원한다"라며 "그 분들이 현명한 해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고 임세원 교수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씨는 "(오빠가)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 것은 의사조차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그만큼 사회적 낙인이 없기를 바라서"라고 밝혔다.

임 교수는 지난해 12월 정신과 환자를 대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글로 올렸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 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임세희씨는 이 글이 오빠의 삶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오빠가 평생 소중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던 일과 사랑했던 환자를 위해서 자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빠가 얼마만큼 자신의 직업을 소명의식을 갖고 하고 있고 사회적 낙인 없이 고통받는 사람이 치료받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근조 리본을 단 동료 의료진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근조 리본을 단 동료 의료진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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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임세원 교수에 대한 추억도 꺼내놨다. 임씨는 "오빠는 효자였다. 굉장히 바쁜 사람인데도 2주에 한 번은 멀리서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라며 "엄마가 좋아한다고 곶감 주문해서 택배로 보내고, 굴비 주문해서 택배 보내고 맛있으면 더 보내주겠다고 하는, 저는 따라가지도 못하는 그런 효자였다"라고 했다.

이어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하고 있는 시간, 그냥 아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잘 크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했다"라며 "언니(임세원 교수의 아내)가 직장이 있어서 바빴는데 그러면 오빠가 미리 시간을 조정해서 퇴근해 아이들을 돌보았다. 받기만 하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오빠를 잃고 나니까 제일 먼저 후회가 됐다"라고 했다.

사건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임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경찰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물음에 "사실은 듣지도 않았고 질문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분은 여기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며 "저는 그리고 우리 유족은 고인께서 평생 환자 위주로 사셨던 것만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 확인해 준 논란이 없는 팩트는 가해자가 위협했을 때 저의 유족 입장에선 오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지만, 두 번이나 멈칫하고는 뒤를 돌아보면서 '도망쳐' '112에 신고해'라고 했다"라며 "그 영상을 아마 우리는 평생 기억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심경도 밝혔다.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조카와 새언니(고 임세원 교수의 아내)는 오빠가 살아온 삶을 가장 옆에서 봐 왔기 때문에 이 상황을 그나마 견딜 수 있지 않나 싶다"라며 "그렇지만 제가 오빠가 없는 세상이 낯설 듯, 아이들과 언니는 더 큰 낯섦과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고인의 뜻을 기리고 같이 애도하고 추모해 주고 움직여 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임 교수가 자신의 공황장애를 치료해 줬다고 밝힌 한 추모객은 "꼭 선생님 가시는 길에 명복을 빌고 마지막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서 왔다"라며 "항상 저에게 힘을 주셨고, 볼 때마다 환자로 대하지 않고 마음 속에 담아둘 정도로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해 줘 공황장애를 고칠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을 겪으셨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근조 리본을 단 동료 의료진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근조 리본을 단 동료 의료진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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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빈소에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빈소에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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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중 흉기를 휘둘러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혐의로 박아무개씨가 2일 오후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영장실질심사 받는 임세원 교수 살해 피의자 진료중 흉기를 휘둘러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혐의로 박아무개씨가 2일 오후 구속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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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 임세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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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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