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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18년 12월 31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대화하는 나경원-정양석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18년 12월 31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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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연말부터 촛불혁명으로 타격을 받았던 보수진영이 2년 뒤인 2018년 연말부터는 맹공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 밖의 태극기부대가 잠시 잠잠해진 상태에서, 보수 정당이 공격 선봉에 서 있는 모양새다. 촛불혁명 이후 사회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시도로 읽히는데, 주무기는 도덕성 공격이다. 민주당 정권도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보수진영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점화하며 정부여당을 공격하고 있다. 지난해 국감 당시 불거졌던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고용승계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역시 크게 보면 도덕성 공격이다. 기획재정부가 KT&G 사장 교체에 관여했다고 주장하는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를 근거삼아 공세를 벌이는 것도 크게 보면 같은 분야에 속한다. 

보수진영의 공세는, 촛불혁명 때 자신들이 당했던 것을 도로 되갚는 양상을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 제기하는 쟁점도 그렇고, 공격하는 방식도 그렇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어떻게든 국회로 끌어낸 것도 촛불혁명 때 자신들이 공격받은 방식과 비슷하다.

반혁명을 위하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이었던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이었던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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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촛불혁명을 주도한 쪽도 아니고, 촛불혁명 후에 새로 탄생한 집단도 아니다. 당연히 민주당 역시 촛불혁명 이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의 정치 관행으로부터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한가 아닌가를 두고 도덕성 공세가 계속되다 보면, 민주당 정권도 일정 정도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혁명이나 민중항쟁으로 권력이 바뀐 뒤에는 한국당처럼 과거로의 복원을 꾀하는 시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국당의 행보는 지극히 당연하다. 1992년에 김우태 경북대 교수가 쓴 <정치학 원론>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작용·반작용의 물리법칙처럼 혁명 뒤에는 구체제를 동경한 나머지 이를 회복시키려는 반동적 운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반혁명은, 혁명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새 정권 세력이 통치능력을 갖지 못하고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에 흔히 성공한다."
  
한국당의 시도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들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지금 양상이 계속되다 보면 과거의 보수층 지지를 회복할 수는 있겠지만, 촛불혁명을 계기로 새로 짜여지고 있는 한국 사회 전반의 신질서에는 큰 영향을 주기 힘들다. 왜냐하면, 도덕성 공격이라는 그들의 무기가 너무 빈약할 뿐 아니라 자기모순적 측면마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동' 성공의 몇가지 요소
 
프랑스 혁명.
 프랑스 혁명.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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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인 1789년, 혁명으로 타격 받은 부르봉 왕가가 프랑스 왕권을 회복한 것은 영국·러시아·프러시아·오스트리아 등이 군사력을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이념의 파급을 우려하는 보수 왕정들이 군대를 동원해줬기 때문에, 부르봉 왕가는 1814년 프랑스 권좌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한양 시민과 하급 군인들의 반정부 투쟁으로 고종 정권이 마비된 1882년 임오군란 때, 보수진영이 한달 만에 상황을 '원위치' 시켜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인천에 상륙한 청나라군의 지원 덕분이었다. 1894년에 호남 곡창지대 중심지인 전주성을 동학군에게 빼앗기고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보수진영이 개벽 세상의 도래를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군의 동학군 진압작전이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눌렸던 친일 보수진영이 해방 3주 만에 허리를 빳빳이 펼 수 있었던 것은 1945년 9월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1960년판 촛불혁명인 4·19 혁명으로 위기에 내몰린 보수진영이 1년 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 덕분이었다. 
  
 5·16 쿠데타.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5·16 쿠데타.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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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나 민중항쟁의 결과로 권력을 잃은 보수진영이 권세를 회복하는 방법은, 자신들이 당했던 것 이상의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혁명의 동력을 압도할 만한 더 큰 동력을 확보해야 반혁명이나 반동(反動)이 성공할 수 있다. 그 '더 큰 동력'은 거의 언제나 군사력이다. 이극찬 서울대 교수가 1969년에 쓴 <정치학>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반혁명이란 글자 그대로 혁명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구(舊)지배세력이 무력을 가지고 구체제의 복귀를 기도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민중이 군사력 없이도 정치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민중이 전복한 결과를 뒤집으려면 군사력이나 그에 상응하는 힘이 필요하다. 반혁명은 '무력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 이제껏 그 어느 정치세력도 이런 이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촛불'을 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트린 결정적 원동력은 언론과 정치권이 가한 도덕성 공격이 아니었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총 23차례에 걸쳐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로 몰려나온 수십·수백만 국민의 의지가 그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국민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언론과 정치권이 박근혜 정권을 상대로 도덕성 공격을 가했다. 박 정권을 무너트린 궁극의 힘은 도덕성 공격이 아니라 국민적 심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당과 보수진영이 지금 구도를 뒤엎고자 한다면, 도덕성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다. 한국당이 반혁명을 이루는 길은 촛불혁명을 압도할 만한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민중의 도움을 받든가, 군대의 조력을 받든가 해야 한다. 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이룰 가능성은 현재로선 지극히 낮다. 

한국당은 새누리당과 전혀 다른 정당이 아니다. 명칭만 바꾸고 지도부만 바꿨을 뿐이다. 국민들이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촛불을 끌 역량을 부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군대의 조력을 받을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태극기부대 등이 걸핏하면 국방부 청사 앞이나 용산 전쟁기념관 같은 곳에 가서 궐기를 촉구하지만, 사회 질서가 잘 유지되는 지금 상황에서 군이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군다나 전시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사실상 주한미군이 한국군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군부 내 일부 세력이 딴 마음을 품기도 쉽지 않다. 1980년 광주항쟁 때 전두환 집단을 지지했다가 미국 문화원이 연쇄적으로 불타는 일을 경험한 뒤로, 미국은 군대를 동원해 한국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럴 능력도 없다. 

결국 남는 건 도덕성 공격이지만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 2018년 12월 31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국 민정수석을 바라보고 있다.
▲ 조국 민정수석 바라보는 이만희 의원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 2018년 12월 31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국 민정수석을 바라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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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군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으니 도덕성 공격에 주력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공격으로 민주당 정권에 상처를 줄 수는 있어도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도덕성이라는 무기는 한국당의 주무기가 아니다. 한국당한테는 무기가 되기는커녕 되레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자기모순적인 무기다.

단적인 예로, 지난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만희 한국당 의원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거론하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의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낭패를 본 일을 들 수 있다. 이만희 의원은 "내로남불의 DNA가 뼛속까지 들어있는 정권, 거짓과 위선이 판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자칭 피해자는 임기를 모두 마쳤고, 새누리당 비례대표 23번을 배정받은 것으로 확인돼 증언의 신뢰도가 없음이 드러났다.

마태복음 7장 3절에서 예수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대들보와 비슷)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꾸짖었다. 도덕성을 화두로 상황을 끌어가다 보면, 눈에 '티'가 낀 민주당 정권보다는 눈에 '들보'가 들어 앉은 한국당이 더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도덕성을 운운하는 한국당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새누리당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한국당의 도덕성 공격을 지켜보면서 민주당 정권을 다시 볼 국민은 많아도, 한국당한테 과거의 영광을 되돌려주려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빈약하고 자기모순적인 도덕성 공격이 장기간 이어지게 되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민주당과 한국당을 포함한 기성 정치권 전체가 될 것이다. 다른 정당도 아니고 한국당이 가하는 도덕성 공격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과 불신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정치권 혁신을 위한, 또 다른 국민적 움직임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당의 도덕성 공격이 한국당 자신과 민주당의 공멸을 담보로 정치권 혁신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태그:#환경부 블랙리스트, #민간인 불법사찰, #서울교통공사, #고용승계, #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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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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