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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날이었을 것이다. 나와 만나기로 되어 있던 친구가 권당 천 원씩 하는 책 10권을 사왔다. "10권이나? 이 많은 걸 어떻게 가지고 가려고?" 내 물음에 친구는 뭐가 걱정이냐는 듯이 절반을 나에게 안겼다. 그중 한 권이 찰스 패터슨의 <동물 홀로코스트>였다.
 
    찰스 패터슨 ‘동물 홀로코스트’ 를 읽고 이 사회가 '돈이 되는 것'을 대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이해했다.
  찰스 패터슨 ‘동물 홀로코스트’ 를 읽고 이 사회가 "돈이 되는 것"을 대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이해했다.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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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프로펠러가 연간 빨아들이는 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가축들이 공장식 축산에서 태어나 죽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완벽한지 설명하는 그 책을 읽고 나는 자본을 동력 삼아 작동하는 이 사회가 '돈이 되는 것'을 대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이해했다. 그것은 새와 돼지만의 운명은 아니었다. 나의 운명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그 길로 채식을 곧장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2년 정도 그 전과 다름없이 육식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게 됐다. 악기점을 인수하여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고 음식점을 하고 있던 그 식당에서 나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것을 보다가 천장에 샹들리에처럼 매달려 있는 바이올린을 발견했다.

유아용부터 성인용까지 크기별로 매달려 있던 바이올린의 실루엣이 흡사 돼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시저 샐러드만으로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오면서 나는 죽을 때까지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바이올린의 모습은 흡사 돼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처럼 정육점을 연상시켰다.
  바이올린의 모습은 흡사 돼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처럼 정육점을 연상시켰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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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정도를 집 안에서는 비건¹으로, 집 밖에서는 페스코²로 채식을 실천하며 살았다. 놓치는 순간들도 많았다. 중간 중간 고기를 먹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집 안에서 '밥상머리 권력'을 가진 자라고 믿었다. 언제나 내가 먹고 싶은 순간에 내가 먹고 싶다고 얘기한 메뉴를 먹을 수 있었다.

1)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도 먹지 않음. 어떤 이들은 실크나 가죽같이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도 사용하지 않음(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2) 페스코 베지테리안, 육류는 먹지 않지만 물고기와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출처 : 네이버 영어사전)

         
하지만 채식 선언 이후 내가 가진 '밥상머리 권력'은 반쪽짜리라는 걸 알게 됐다. 밥상의 메뉴를 결정할 수는 있었지만, 그에 필요한 재료와 조리 방법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된장찌개를 먹을 수는 있었지만, 멸치육수와 바지락을 쓰지 않은 비건식 된장찌개를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외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싶을 만큼 절망적인 환경 안에서, 나는 조금의 '유도리'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채식을 하는 것은 이 사회가 돈이 되는 것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제기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이 때문에 고기를 소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채소를 소비함에 있어서도 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일회용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것,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나는 것, 말이 느린 사람과 일하는 것, 회의시간이 긴 조직에서 성과를 내는 것 등, 모든 귀찮은 것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려고 한다. 
     
소 한 마리가 맛 좋은 스테이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볼 기회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전처럼 자주 스테이크를 먹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것은 그사이의 긴 이야기들이 가공되거나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면서 나는 자주 그 사이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길을 걷다가 예쁜 돼지 얼굴이 그려진 삼겹살집 간판을 마주하며 지워진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생각하곤 했다. 지워진 이야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히 잊히고 만다. 이제 예쁘게 그려진 돼지는 돼지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삼겹살은 삼겹살대로, 목살은 목살대로 불판 위에 차려진다. 그사이 잘려나간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가축은 연하고 부드러운 살코기를 위해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여섯 달을 산다. 도축장에 끌려갈 때가 되어서야 제대로 서 있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비틀거리다가 푹 고꾸라지고 만다. 도축장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시야에 보이지 않으니,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도축장 내부도 과정별로 잘 나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이 하는 일의 전체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노동자의 스트레스와 죄책감이 효과적으로 줄어든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가공되거나 삭제되는 많은 이야기들을 궁금해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소비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고기를 먹으면 공장식 축산 환경에 기여하는 것이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그 옷이 생산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스다운 패딩 수십 벌이 촤르르 진열된 옷가게에 서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정말 맥 빠지는 일이다. 고개를 돌리면 플라스틱 섬유로 만든 패딩 수십 벌이 촤르르 진열되어 있다. 짐짓 선택의 기로에 선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위와 오리는 패딩 생산을 위해 일생 동안 최소 5번에서 최대 15번씩 털을 뽑힌다.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충전재는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이 세탁 과정에서 배출되어 해양을 오염시킨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거위와 오리는 패딩 생산을 위해 일생 동안 최소 5번에서 최대 15번씩 털을 뽑힌다.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충전재는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이 세탁 과정에서 배출되어 해양을 오염시킨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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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선택지가 생겼으면 좋겠다. 비건 메뉴와 비건 상품들이 더 많이 생산되었으면 좋겠다. 생산 과정이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품이 '어떤 이야기들을 지우거나 가공해야만 하는' 상품에 비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채식을 하는 사람이든 하지 않는 사람이든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A+상품이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가축들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나의 처지를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처럼, 이 문제의 당사자는 동물만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2월 7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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