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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의 배낭
 부부의 배낭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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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달랏의 한 카페에서 세계 여행 중인 부부를 만났다. 결혼한 지 몇 년 안 된 젊은 부부였다. 유럽과 오세아니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남미를 거쳐서 동남아시아까지 왔으니, 이제 그 부부의 여행도 끝이 보이는 듯하다.

1년하고도 6개월 가까이 세계여행을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 뒤에는 낯선 것들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들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자못 궁금했다. 그 젊은 부부를 보니 우리가 배낭을 메고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떠났던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중년의 부부, 첫 배낭여행을 떠나다

2015년 여름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충칭(중경)으로 여행을 떠났다. 원래는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 우리 부부 둘만 가게 됐다. 단체여행은 여러 번 해봤지만 자유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충칭은 중국 사천성의 한 도시이지만 한반도의 반 가까이 되는 면적에 인구도 삼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큰 도시를 우리나라인 양 생각하고 계획을 짰으니 우리의 여행은 안 봐도 고생길이 훤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많이 다투었고, 한 번은 크게 말다툼을 한 뒤 다시 안 볼 것처럼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낯선 타국에서 의지할 데라고는 우리 둘뿐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그 후로는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나갔다.

우리 부부는 여행에 대해 생각하는 게 서로 달랐다. 남편이 원하는 여행과 내가 바라는 여행 스타일이 판이했다. 남편은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싶어 했지만 나는 한 군데라도 자세히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또 남편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인데 나는 즉흥적인 것을 좋아했다.

남편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기차표와 숙소들을 다 구해놓았다. 중국은 인구가 많아 기차표 끊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해 놓았는데 나중에 이 일정들을 소화해내느라 고생했다. 만약 한 군데가 잘못돼 기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줄줄이 다른 것도 어그러질 판이었다. 땅덩이가 큰 중국을 마치 우리나라처럼 생각하고 일정을 짰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일 처리를 잘하지 못하는 듯한 남편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엄청 불만을 가졌다. 이런 나의 태도는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됐다. 나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그 여행을 실패한 여행이라고 자평했다. 남편의 고심은 돌아보지 못했고, 오로지 나밖에 몰랐다.
 
 '대족석각'은 중국 석굴 예술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둔황의 막고굴, 낙양의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손꼽힌다.
 "대족석각"은 중국 석굴 예술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둔황의 막고굴, 낙양의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손꼽힌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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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안다. 말도 글도 다른 나라에서, 더구나 생활 방식이나 기타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의 여행은 쉽지 않다는 것을. 더는 욕심내지 않는다. 낯선 나라에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데 어떻게 계획대로 다 될 수 있겠는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닥친 상황을 즐기려 한다. 남편과 의견이 달라 다툴 때도 있지만 '하나를 양보하고 다른 하나를 얻는' 방식으로 우리는 수년째 즐거이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러 날 같이 지내다 보면 좋은 점보다는 좋지 않은 점이 자꾸 눈에 띌 것이다. 두어 시간 만나서 차 한잔하거나 밥 같이 먹고 그러면 좋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같이 여행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거의 24시간을 같이 하는 데다 낯선 곳에서 여러 상황들을 만나고 해결해야 하니 날카로워질 수 있다. 한국을 떠날 때는 친구였던 사람이 돌아올 때는 원수(?)가 돼 온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같이 여행을 하게 되면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띌 수 있다.

떠날 때는 친구, 돌아올 땐 원수

같이 여행하기 좋은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상대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 좋은 동반자가 될 것 같다. 이기적인 성향의 사람보다는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과 함께 하면 여행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여행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리라.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경우 우리는 더욱더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를 살피는 미덕이 필요할 터이다.

함께 살면서 서로 조화를 맞춰가는 게 부부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을 고집하고 내세운다면 그 부부는 결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으리라고 본다. 각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바른길일 것이다.
 
 손을 꼭 잡고 길을 건너는 두 사람에게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느껴집니다.
 손을 꼭 잡고 길을 건너는 두 사람에게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느껴집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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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은 늘 있었다. 그래서 다시는 안 볼 듯이 헤어진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물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고 다시 뭉쳤지만 그것은 앞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숙제처럼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는 다툴 것이다.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통용되는 숙제이고 난제일 터. 그래도 원만한 해결을 위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서 여행뿐만 아니라 남은 인생길 역시 잘 걸어가리라 믿는다.

인생길 최고의 동반자는 부부
 

1년 6개월 동안이나 세계여행을 다닌 그 젊은 부부는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리처럼 다투고 그랬을까, 아니면 대화로써 슬기롭게 잘 풀어나갔을까. 풋풋한 젊은 부부를 바라보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뒤뚱대며 돌아다녔던 우리의 배낭여행을 돌아보았다. 비록 싸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 헤쳐나갔다. 영어 단어로만 더듬대며 의사를 전달할 뿐이지만 그래도 매년 배낭을 메고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기 덕분이었다.

오늘(1월 3일)은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지 꼭 33년째 되는 날이다. 여행지에서 맞는 결혼기념일은 매번 새롭다. 활활 불꽃을 태우기보다는 뭉근하게 오래 불기운을 지니고 살아온 나날이었다. 춥고 손이 시린 이웃에게 그 불기운을 나눠주며 살 수 있다면 우리 인생 여행길은 성공작이리라.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만 있어도 행복하다.(베트남 달랏)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만 있어도 행복하다.(베트남 달랏)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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