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만큼 동계스포츠가 크게 주목받은 적은 이제껏 없었을 것이다. 다수의 동계스포츠 종목이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란 그늘에 가려져 겪었던 서러움을 털고 전 국민적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직후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몇몇 종목은 폭력과 갑질 파문으로 얼룩져 평창의 영광까지 잃었다. 올 한 해 동계스포츠의 주요 걸음을 각 종목별로 짚어본다.
 
쇼트트랙, 간판 발견했지만 폭력파문
 
준결승 뛴 최민정, 심석희 쇼트트랙 최민정, 심석희 선수가 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1000미터 준결승에 나서 동시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 준결승 뛴 최민정, 심석희 쇼트트랙 최민정, 심석희 선수가 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1000미터 준결승에 나서 동시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 이희훈

 
동계올림픽 효자종목으로 꼽힌 쇼트트랙은 평창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내며 최강국의 자리를 되찾았다. 특히 직전 대회였던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대표팀이 12년 만에 노메달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은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남자 쇼트트랙 임효준(22·한국체대)과 황대헌(19·한국체대)이 투톱 역할을 해내며 메달을 가져왔다. 

여자 쇼트트랙 심석희(21·한국체대), 최민정(20·성남시청) 등도 기량을 발휘하며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발견함과 동시에 굳건한 쇼트트랙 최강국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올림픽 직전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해 진천 선수촌을 무단이탈하는 등 쇼트트랙은 또 다시 '폭력 파문'으로 얼룩졌다. 쇼트트랙은 오랜기간 '금메달밭'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파벌, 짬짜미 등 숱한 논란거리로 오점을 남겨왔다. 특히 이번 폭행 사건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드러났던 문제가 십수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대물림' 된 것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질문에 답하는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 진술을 마치고 법원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전 코치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질문에 답하는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 진술을 마치고 법원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전 코치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연합뉴스

 
결국 조재범 전 코치는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했다. 심석희 선수는 지난 17일 법정에 출석해 자신이 당했던 끔찍했던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을 쏟았다. 후배의 고충을 들은 선배 변천사(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주민진(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 선수는 방송을 통해, 빙상계 내부의 충격적인 파문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오랜기간 빙상계의 적폐로 낙인 찍혀왔던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이사가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본 선수에게 미안하다며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는 뜻을 표했다.
 
한편 새 시즌을 맞이해 새로이 구성된 쇼트트랙 대표팀은 월드컵 1~3차 대회를 출전했다. 1차 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뒀지만, 2차와 3차 대회를 거치면서 점차 컨디션이 올라오고 과거 태극마크를 달았던 선수들과 평창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성공적인 세대교체 그러나...
  
서로서로 밀어주는 여자 팀추월 선수들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순위결정전에서 역주하고 있다.

▲ 서로서로 밀어주는 여자 팀추월 선수들 노선영,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순위결정전에서 역주하고 있다. ⓒ 이희훈

 
스피드스케이팅은 평창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얻은 종목 가운데 하나였다. '빙속여제' 이상화(28·스포츠토토)가 올림픽 3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된 것을 비롯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차민규, 김태윤, 김민석 등 단거리 메달리스트들이 다수 배출됐다. 또한 남자 팀추월과 매스스타트 등에서도 이승훈(30·대한항공)이 활약하면서 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어두운 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자 팀추월 대표팀에서 '왕따 논란'이 불거지면서 김보름과 박지우 선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팀 추월 경기에서 두 선수가 동료 선수 노선영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주행을 했다는 것. 이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 무려 61만 명이 이 선수들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에 동의하기도 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감사를 통해 '왕따 논란'에 대해 "고의성이 없었다"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선수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김보름은 올림픽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한편 은퇴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기를 위해 새 시즌을 맞아 대표팀에 복귀했고, 그는 월드컵에서 자신의 주종목인 매스스타트에서 계속해서 메달을 따내며 베이징을 향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평창 이후 스피드스케이팅은 과거 밴쿠버 올림픽에서 활약했던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을 뒤로하고 세대교체가 된 상황이다. 이상화의 뒤를 이어 여자 단거리에는 김현영과 김민선 등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자 대표팀에는 평창에서 메달을 따냈던 차민규, 김태윤, 김민석 등이 주전 멤버로 나서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평창에 이어 또 한 번 도약
 
 2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한국의 최다빈이 연기하고 있다.

2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한국의 최다빈이 연기하고 있다. ⓒ 이희훈

 
빙상계 가운데 가장 크게 함박웃음을 지은 건 아마도 피겨스케이팅일 것이다. 피겨는 평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28)에 이어 최다빈(18·고려대)이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인 7위에 올랐다. 여기에 함께 출전했던 김하늘(16·수리고)도 13위로 선전했고, 남자싱글에서는 차준환(17·휘문고)이 역대 최고 성적인 15위에 올랐다. 아이스댄스에서도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조가 프리댄스 경기에 진출해 최고 성적인 18위로 선전했으며,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피겨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평창 이후 시작된 새 시즌에서 피겨계는 계속되는 메달 릴레이로 웃음꽃이 떠나지 않고 있다. 시즌 첫 대회였던 챌린저 시리즈 대회 가운데 하나인 아시안 트로피에서 임은수(15·한강중)가 김연아 이후 한국 선수 최초로 ISU 시니어 부문 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김예림(15·도장중)이 김연아 이후 13년 만에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두 개의 은메달을 따내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여기에 유영(14·과천중)도 한 차례 주니어 그랑프리 동메달을 획득해, 베이징을 향한 트로이카 세대들이 모두 국제대회 시상대에 섰다. 나아가 임은수는 김연아 이후 9년 만에 그랑프리 대회에서 시상대에 서는 주인공이 됐다.
 
남자 피겨에서는 차준환이 크게 도약했다. 평창 올림픽 시즌 부상으로 주춤했던 차준환은 컨디션을 회복한 후 그랑프리 두 개 대회에서 한국 남자피겨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해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리고 파이널에서도 또 한번 시상대에 서면서, 매 대회마다 한국 남자피겨 역사를 바꿔놓았다.
 
컬링, 평창의 영광-갑질 파문 '빛과 그림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여자 컬링팀 선수들이 25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메달을 걸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여자 컬링팀 선수들이 25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메달을 걸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 ⓒ 이희훈

 
"영미"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평창의 최고 스타로 등극했던 '컬링'은 올림픽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하고 갑질 파문으로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컬링 대표팀 '팀 킴'(Team Kim)은 평창 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다. 주장 김은정 선수가 경기 내내 "영미"를 외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새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춘천시청 대표팀에 패해 태극마크를 내려 놓게 됐다.
 
이후 소식이 뜸해질 무렵, 갑질 파문이 터지고 말았다. 선수들은 11월 6일 호소문을 통해 팀 킴의 지도자이자 스승으로 알려진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회장 대행과 김민정 여자 컬링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수시로 폭언과 갑질 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또한 팀 킴 선수들은 대회 때 받은 상금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했고, 감독의 자녀 어린이집 행사에도 불려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고통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지도자들은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도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 25일 SBS는 김 전 대행과 김민정 감독, 장반석 감독 등 김 전 대행 일가가 경북체육회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월급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오랜기간 아이스 훈련을 할 수 없었던 팀 킴 선수들은 지난 29일부터 다시 빙상훈련을 이어가며 내년 2월 동계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을 통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잡은 컬링은 올림픽이 끝난 지 1년도 안 돼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울상이 되고 말았다.
 
봅슬레이-스켈레톤, 훈련장 없어 전전긍긍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1위를 기록하며 금메달 확정 후 태극기를 들고 즐거워 하고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1위를 기록하며 금메달 확정 후 태극기를 들고 즐거워 하고 있다. ⓒ 이희훈

 
컬링과 함께 평창에서 새로운 개척지로 떠오른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썰매종목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윤성빈(24·강원도청)이 스켈레톤 금메달을 따냈고, 봅슬레이 4인승에서도 원윤종 서영우 김동현 전정린이 은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난 직후 이들은 둥지를 잃어야 했다. 이들의 보금자리이자 구슬땀을 흘리는 장소였던 평창 슬라이딩 센터가 올림픽 이후 문을 닫고 말았기 때문. 정부와 강원도에서 올림픽 이후 시설을 누가 운영할지를 두고 씨름을 벌이는 사이, 애꿎은 선수들만 훈련할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이용 대표팀 총 감독을 비롯해 윤성빈, 원윤종 등 간판선수들은 올 시즌 개막 직전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침울해 했다. 아직까지도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의 문은 굳게 잠겨 있지만, 윤성빈은 새 시즌 월드컵에서 계속해서 시상대에 서며 여전히 최강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봅슬레이는 원윤종을 필두로 새로운 선수들과 조합을 계속해서 찾고 있는 단계다.
  
질주 마친 대한민국 24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주행을 마친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질주 마친 대한민국 24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주행을 마친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최근 올림픽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춰 앞으로 더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고 믿었던 썰매계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그 꿈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동계스포츠는 이외에도 평창 올림픽 이후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를 비롯해 정선 알파인 스키장,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강릉 하키센터 등 상당수 올림픽 시설의 사후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분담금을 놓고 정부와 강원도의 의견 차가 극심한 가운데, 올림픽이 끝난 현재 평창과 강릉 일대는 과연 이곳이 올림픽을 치렀던 곳인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동계스포츠는 불과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속속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답답한 상태만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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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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