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산국제영화제서 개막식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용관 이사장과 안성기 이사, 전양준 집행위원장

2018 부산국제영화제서 개막식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이용관 이사장과 안성기 이사, 전양준 집행위원장 ⓒ 부산국제영화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정치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애쓴 국내 영화제들에게 2018년은 정치적 부담이 사라진 가운데 예산도 늘어나면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한해로 요약된다.
 
지속적으로 삭감됐던 예산은 예전 수준을 회복한데 이어 새해에는 사실상 50% 증액이 이뤄지면서 조금 더 사정이 나아지게 됐다. 박근혜 정권에서 혹독한 탄압을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영화인들의 승리기도 했다.
 
다만 문화민주주의가 회복되면서 예년만큼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주목을 받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2014년 부산영화제 사태를 촉발한 <다이빙벨> 이후 <자백>과 <공범자들>, <노무현입니다> 등이 국내 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된 후 개봉해 흥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사회성 짙은 작품의 흥행 성적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국내 영화제의 맏형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월말 이용관 이사장-전양준 집행위원장 체제를 출범시키며 정권교체 이후 정상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쫓겨났던 이용관 이사장은 1년 11개월 만에 당당히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서 영화인들의 응어리도 풀렸다.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영화제 탄압의 주범으로 꼽힌 서병수 시장의 낙선은 정상화의 마지막 수순이기도 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폐막식에서 서병수 시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반드시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키겠다고 벼르던 영화인들의 각오는 빈말이 되지 않았다.
 
영화단체들의 보이콧은 2년 만에 해제됐고, 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로 북적거리며 축제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정치권력이 엇질러 놓았던 질서가 바로 잡히면서 재정비를 통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영화계의 저력이 부산영화제를 통해 나타난 것이었다.
 
다만 영화제 직후 불거진 단기 스태프 시간외 수당 미지급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비판이었다. 오랜 시간 고질화된 문제였는데, 결국 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산영화제뿐만 아닌 모든 국내 영화제들의 문제기도 했다. 부산영화제는 당사자들에게 공식 사과와 함께 미지급 수당 지급을 약속하면서 마무리됐다.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가 부각된 것은 전체 국내 영화제들에게도 잘못된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영화제들 역시 스태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미지급 임금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질서가 잡히는 계기가 됐다.
 
사퇴 표명했다 마음 돌린 전주영화제 위원장
 
 이충직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충직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 전주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영화제가 끝난 이후 3년 임기를 마친 이충직 집행위원장이 연임할 생각이 없다며 사표를 제출해 한동안 전전긍긍했다. 이충직 집행위원장은 부산영화제가 위협받을 때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들을 상영하며 국내 영화제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자백>은 전주영화제 수상작이었고, <노무현입니다>는 제작지원을 통해 영화 완성에 기여했다.

이런 성과로 전주영화제는 2년 연속 영화제 평가 1위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영화제 내부뿐만 아니라 전주시까지 나서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이 집행위원장은 완곡하게 고사했다.

하지만 올해 지방선거에서 재선된 김승수 전주시장이 서울까지 올라와 간곡히 설득한 끝에 간신히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안정적인 성장을 이룬 이충직 집행위원장이었기에 전주영화제 입장에서는 큰 어려움이 닥칠 위기를 넘긴 것과 다름없게 됐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올해 초에는 예전 집행위원장 시절의 성추행 관련 '미투' 주장이 나와 논란이 생기면서 뒤늦게 유감 표명을 하는 등 홍역을 치러야했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온 문제제기였지만 미투 운동은 영화제들도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갖게 만들었다.
 
부천영화제는 지난 8월 신철 집행위원장이 새로 선임하면서 진용을 재정비했다.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지영 감독도 올해를 끝으로 물러나려고 했던 생각을 접었다. 최근에는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와 조양일 신씨네 이사 등을 부집행위원장으로 선임하면서 새해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배장수 부집행위원장의 선임은 주목됐다. 배 부집행위원장은 영화전문기자 출신으로 언론사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고 노회찬 의원이 출연한 영화 <달밤체조 2015>를 제작하는 등 제작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능력도 뛰어나고 부지런한 분을 영입하게 됐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한편 미투 운동은 부천영화제뿐만 아니라 국내영화제들에게도 잇단 영향을 끼쳤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2월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사퇴하고 8월 홍형숙 감독이 새로운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도 박재동 집행위원장이 논란이 생기자 사퇴하고 배창호 감독이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박재동 전 집행위원장은 억울한 부분이 많다며 미투 제기에 대해 법적인 대응에 들어간 상태다. 최근 SBS를 대상으로 한 반론보도 청구 소송에서도 승소해 반론이 방송되기도 했다.
 
사라지거나 논란된 영화제
 
 
 보조금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지난 7월 법정구속된 김종현 서울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보조금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지난 7월 법정구속된 김종현 서울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 이정민

 
올해는 새로 생겨나는 영화제도 있었지만 일부 영화제는 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20년을 이어온 맥이 올해 완전히 끊겼다. 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종현 집행위원장이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기 때문이다. 김 집행위원장은 항소했으나 지난 11월 2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어서 최근 간신히 유지해온 행사가 사라지게 됐다. 1인 중심으로 운영된 구조다보니 향후 재개 가능성도 불투명한 상태다.
 
6월에 1회 행사를 치른 금강역사영화제는 올해 새로 생겨난 영화제다. 2년 간의 꾸준한 준비를 거쳐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에서 치러졌다. 1억 미만의 저예산으로 4일 동안 개최된 행사는 주제의식이 분명하고 지역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지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반면 지난 11월 첫 회가 개최된 홍성국제단편영화제는 2일 동안의 행사에 2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프로그램 선정 등도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역력한데다, 이틀간의 영화제 행사 중에 가요제까지 포함돼 있어 충무로에서는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협찬까지 포함하면 예산이 3억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등 행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행사를 주관한 곳이 영화인총연합회인데, 산하단체들 내부에서도 예산에 비해 허술한 행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 역시 고작 "2일간 단편영화제를 하면서 어떻게 2억이나 쓸 수 있는지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영화제 예산을 지원한 홍성군 관계자는 "충청남도와 홍성군에서 각각 1억씩 모두 2억을 지원했고, 예산은 정산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개막식에서 온 배우들에게 최대 500만원~1000만 원 정도까지 주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처음 시도된 행사로 분위기는 좋은 것으로 본다"고 영화제를 평가했다. 그러나 국내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초청인사들에게 숙박과 교통편을 제공해 주지만 따로 참가비용을 주는 영화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영화인총연합회 관계자는 "지역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일축했다. 또한 "참석자들에게는 소정의 비용만 사용 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중영화제 조근우 이사장과 김보연 집행위원장

한중영화제 조근우 이사장과 김보연 집행위원장 ⓒ 한중영화제

 
지난 11월 열린 2회 한중국제영화제도 정체성이 불분명한 행사로 꼽히고 있다. 한중이 힘을 합쳐 배우를 육성하고 영화산업발전방향을 논의해보자는 것이 취지라고 밝히고 있는데, 정작 영화제를 대표하는 이사장은 영화인도 아닌데다 예전 대종상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인사여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한중영화제가 행사대금 미지급 건으로 영진위에 제재를 받고 있고. 이사장 개인적으로도 거액의 채무를 값지 않아 민형사상 소송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화제 자체가 사기성 행사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조근우 이사장은 "채무 문제는 영화제와 관련없는 개인적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 영화제를 대표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실있는 영화제는 적은 예산에 울상
 
이 때문에 영화계 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외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한국영화 발전에 좋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부 목적이 모호하고 부수적인 이익에만 치중하는 듯한 영화제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충무로의 한 영화관계자는 "주요 영화제들이 지자체의 지원으로 행사를 여는데, 지방 공무원들은 영화계의 사정에 어둡다보니 어떤 사람들이 준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에서 영상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영상위원회들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 업무가 전문화되면서 전통 있는 영화제들은 내실있는 성장을 거뒀다. 서울독립영화제는 1만 관객을 넘어서며 전체적인 규모가 커졌고, 서울국제음식영화제나 무주산골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등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내실 있게 진행된 영화제들은 공통적으로 역량에 비해 부족한 예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논란이 된 영화제들의 경우 풍족한 예산만큼 내실이 따라주지 못했다. 영진위의 국내 영화제 지원 예산의 경우도 새해 대규모 국제영화제는 크게 늘었으나 규모가 작은 영화제 지원은 동결되면서 차이가 커지게 됐다.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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