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방송된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29일 방송된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 MBC

 
"우리가 다 아는 얘기지만, 스포츠계에 그런 말이 있지 않나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저기 앉아 있으면서 대상에 제 이름을 불러주시는데, '아,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 했다. 저를 보면서 많은 분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훌쩍거리면서도 웃음기를 잃지 않는 이영자의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함께 희망을 품은 이들 역시도 많았으리라. 1990년대부터 TV를 접한 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방송인이자 희극인인 이영자의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수상은 눈물어린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몇 가지 상징적 장면들과 함께.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진리를 일깨우는 장면은 언제나 숭고하다. "92년도에 신인상 탈 때도 떨리더니 대상 타도 똑같이 떨린다"던 이영자의 대상 수상도 그러했다. 1990년대 방송3사를 휩쓸며 전성기를 보내고, 2000년대 스캔들과 함께 일종의 숨 고르기를 지나, 2010년대 꾸준한 활약과 함께 MBC <전지적 참견시점>의 '먹방'의 신으로 등극하기까지.
 
관찰예능과 먹방, 그리고 매니저와 연예인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풀어낸 <전지적 참견시점>은 트렌디한 요소와 이영자라는 걸출한 방송계 '대(식가이자)모'가 만난 2018년의 예능이었다. 특히나 이영자와 그의 매니저 송성호 팀장과의 궁합을 절묘하게 잡아낸 제작진의 '신의 한수'는 프로그램 성공의 견인차라고 할 만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영자가 수상 무대에 오르기 직전, 이영자의 품에 안긴 송 팀장이 한참을 우는 장면은 지극히 이례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하는 매니저들이 테이블에 앉아 카메라를 받는 장면은 물론 출연자인 박성광과 그의 매니저 임송이 연이어 수상하는 장면 역시 <전지적 참견시점>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줬다. 이영자 역시 수상소감으로 송 팀장에게 감사를 돌렸다.
 
"송 팀장에게 물었어요. 매니저로서 목표가 뭐냐고. 자기가 케어하는 연기자가 상을 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거든요. 그럴 때 내가 삶의 의미를 느낀다고. 오늘 그 목표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송성호 팀장님은 나의 최고의 매니저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29일 방송된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29일 방송된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 MBC

   
송은이의 눈물

"제가 주는 상이라면 저는 나래 씨한테 (대상을) 주고 싶어요. 우리 후배님 열심히 하는 모습 너무 멋있고. 제가 돈 벌어서 MBC를 사면 (박나라에게 대상을) 드리겠습니다."
 
대상 수상에 앞서 대상 후보에게 주는 '올해의 예능인상'을 수상하러 무대에 오른 이영자는 "누가 대상을 받았으면 하느냐"는 진행자 전현무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전에 없던 '올해의 예능인상'을 제일 먼저 받게 된 이영자는 "이걸로 혹시 대상이 끝난 건 아닌가, 당혹스러움과 절망이 같이 나옵니다"라는 너스레로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여성 후배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50대를 넘어선 여성 방송인 선배가 1985년생 후배에게 전하는 최고의 찬사이자 관심과 배려의 표명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영자의 풍모는 송 팀장과의 감동적인 포옹에 앞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지적 참견시점>을 함께 한 후배들과 한 명 한 명 포옹하는 것은 물론 무대 아래를 돌며 방송인 선후배들을 안아주고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유례없이 길게 이어졌다.
 
누군가는 '오지라퍼'라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 명 한 명을 챙기려는 모습이야말로 이영자만이, 그리고 30여 년을 버텨온 여성 방송인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배려이자 여유였을 터. 그래서 이영자는 수상소감에서 개그우먼 선배들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늘 연예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우리 이성미 언니한테 감사하고, 개그우먼으로서 이 길을 뚫어주신 박미선 선배님한테도 너무 감사하다."
 

지난 22일 KBS <연예대상> 최초 여성 대상 수상자이자 MBC 대상까지 거머쥐며 2관왕의 영예를 안은 이영자의 수상은 그렇게 여성 방송인, 여성 희극인이 겪어온 힘겨운 궤적의 결정판이라 할 만 했다. 선배 이성미, 박미선이 걸어왔으면서 이뤄내지 못한 길이자, 후배 박나래, 송은이가 가야 할, 변화와 개척의 길인 셈이다.

 
 29일 방송된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29일 방송된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 MBC

   
그런 점에서, 이날 그런 이영자의 옆자리를 지킨 송은이의 최우수상 수상 역시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MBC 시상식에 26년 만에 처음 왔는데, 이렇게 상 받게 되서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하다"는 수상 소감을 남긴 송은이는 이영자의 대상 수상이 결정되자 이영자 못지않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케이블 방송에서 여성들의 만찬을 내세운 <밥블레스유>를 이영자와 함께 진행 중인 송은이가 KBS 공채출신으로서 유재석의 동기라는 사실은 지금껏 수차례 희화화의 소재로 활용돼 왔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 TV 밖으로 밀려났던 송은이가 2015년 김숙과 함께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한 이후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왔다.
 
팟캐스트와 소셜 미디어 상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던 송은이와 김숙은 2017년 KBS <김생민의 영수증>을 '핫'한 프로그램에 등극시켰고, 이어 송은이가 <전지적 참견시점>과 <밥블레스유>까지 콘텐츠 소비자들이 원하는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에 연이어 참여했다는 사실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날 송은이 역시 수상소감을 통해 "작지만 강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콘텐츠 비보" 식구들에게 감사를 돌리기도 했다. 그 콘텐츠비보에서 만든 송은이, 신봉선, 김신영, 안영미의 '셀럽파이브'는 각종 시상식과 연말 가요무대에 서는 등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명제를 실천하며 일종의 감동을 주고 있다. 아래와 같은 수상 소감 역시 송은이가 품은 시선과 관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전지적 참견시점>은 시작할 땐 전현무씨 제외하고는 다들 내세울 거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처럼 아껴주고 서포트해 준 매니저들, 그런 모습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준 많은 스태프들 덕분에 <전지적 참견시점>이, 별다를 것 없는 저희들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됐고, 그래서 주책없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유재석의 부재
 
그리고, 여전한 사족 하나. 이러한 감동의 순간을 시청하기까지 총 4시간을 소요한다는 사실은, 이를 지상파 3사가 매해 반복하는 일은 과연 누구의 기쁨을 위해서인지. 한 해 한 해 지상파 시상식의 개별 시상 부문은 늘어만 가고, 그럴수록 상의 공신력은 떨어져만 갔다. 심지어 지상파의 위상과 시청률 하락과 함께 눈치 보기까지 횡행한다.
 
이날 '올해의 예능인상'을 수상한 김구라는 "스토리가 있는 이영자가 대상을 받았으면 하는데 KBS에서 낼름 주지 않았나"라며 "MBC가 고민이 많을 듯"이란 과감(?)한 멘트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SBS의 이승기 대상 수상은 "백종원이 수년 전부터 수상을 고사해왔다"는 기사가 날만큼 후폭풍을 낳기도 했다.
 
지상파의 권위가 날로 떨어지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방송연예 대상과 연기대상의 과도한 제 식구 챙기기와 나눠 먹기식 시상식을 보는 일은 고역에 가깝다. 시상식이 올리는 높은 시청률을 놓을 수는 없다. 그에 따라 붙는 광고를 버릴 수 없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홍보와 출연자들에 대한 치하를 이어가야 한다.
 
이러한 방송사들의 당위 속에 얼토당토않은 이름의 수상 부문이 늘어가고, 시상식 종영 시간은 한정 없이 지연되며, "부모님이 잠들어 계실 것"이란 수상 소감이 남발되는 한국 방송계의 시상식 문화는, 아마도 영원토록 고쳐질 수 없지 않을까.
 
이영자와 송은이가 전해 준 감동과 시상식 문화를 향한 근심 속 흥미로운 부재 하나. 이날 송은이의 KBS 동기인 '유느님' 유재석의 모습은 시상자로도 찾을 수 없었다. <무한도전>의 종영과 함께 MBC <방송연예대상>에 십 수년째 개근했던 유재석의 빈자리야말로 나눠먹기가 아니라면 참석조차 않는 방송사 시상식의 이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영자 송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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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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