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6일, 오는 1월 열리는 2019 중국 4개국 친선대회에 참가할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소집 명단이 발표됐다. 그런데 낯선 이름이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경주한수원의 측면 수비수 박세라가 생애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10년 충남일화의 유니폼을 입고 WK리그 무대에 입성한 지 아홉 시즌 만에 찾아온 태극마크다.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경주한수원 박세라(오른쪽)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경주한수원 박세라(오른쪽) ⓒ 정홍열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세라는 W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2010년 충남일화에서 데뷔한 뒤 전북KSPO(현 화천KSPO)와 서울시청을 거쳐 2018년부터 경주한수원의 유니폼을 입었다. 특히 지난 5월 28일 인천현대제철과의 리그 경기에서 개인통산 150경기, 그리고 10월 29일 수원도시공사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개인통산 170경기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세라의 혜성 같은 등장은 지난해 깜짝 발탁으로 화제가 되었던 박초롱(화천KSPO)을 연상시킨다.
 
 2017 E-1 챔피언십에 소집된 화천KSPO 선수들. 왼쪽부터 박초롱, 이정은(수원도시공사 이적), 강유미, 손윤희.

2017 E-1 챔피언십에 소집된 화천KSPO 선수들. 왼쪽부터 박초롱, 이정은(수원도시공사 이적), 강유미, 손윤희. ⓒ 대한축구협회

 
화천KSPO의 측면 수비수 박초롱은 2017년 9월 27일 발표된 세계랭킹 1위 미국과의 원정 평가전 소집 명단에 포함됐다. 이전까지 17세 이하 대표팀 1경기(2골)가 태극마크 경력의 전부였던 박초롱은 한국 나이 서른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국가대표 데뷔를 이뤄냈다.

레프트백 박초롱과 라이트백 박세라. 두 선수의 행보는 마치 데자뷰처럼 묘하게 닮아 있다. 두 선수 모두 해당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소속팀의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크게 이바지했다. 박초롱의 화천KSPO는 2017시즌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2위 이천대교를 2-1로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는 1, 2차전 도합 0-6으로 완패했지만 화천KSPO가 일으킨 돌풍은 2017년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박세라와 경주한수원의 2018년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창단 2년차를 맞아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한 경주한수원은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했다. 2017시즌 7위에 머물렀던 팀이 2018시즌에는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 수원도시공사를 꺾고 진출한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인천현대제철을 3-0으로 무너뜨렸다. 현대제철 천하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인천현대제철이 챔피언결정전에서 패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2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패하며 인천현대제철의 통합 6연패를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지만, 박세라는 소속팀의 선전과 함께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박세라는 전화 인터뷰에서 "은퇴하기 전에 태극마크를 달아보게 되어 기쁜데, 사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 더 크다. 걱정도 많이 된다"고 발탁 소감을 밝혔다.

늦깎이 국가대표가 된 박세라는 26명의 소집 명단 가운데 유일하게 첫 발탁이다. 이에 대해서는 "함께 뽑힌 선수들 중에서는 (이)금민이랑 가장 친하다. 금민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대표팀 경험은 선배니까 어떻게 생활하는지,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그리고 수비 쪽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정)영아와 (윤)영글언니는 소속팀에서도 같이 뛰니까 든든하고 많이 의지가 될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박세라는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WK리그 챔피언결정전이라는 좋은 기회가 왔는데, 1차전을 이겼기 때문에 당연히 그걸 잡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더라. 태극마크는 내게 찾아온 또다른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기회는 절대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 이번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에도 또 대표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국가대표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은 각오를 내비쳤다.
 
 "벤치에만 있어도 좋으니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던, 2017년 서울시청 시절의 박세라

"벤치에만 있어도 좋으니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던, 2017년 서울시청 시절의 박세라 ⓒ 청춘스포츠 윤지영

 
박세라의 국가대표 발탁은 오로지 실력으로 얻어낸 성취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제 그는 태극마크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윤덕여호라는 호박마차에 몸을 실었다. 짧지 않은 시간 묵묵히 땀흘리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박세라의 앞날에 꽃길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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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6기 윤지영
축구 여자축구 국가대표 경주한수원 박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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