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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동상(당진 심훈기념관)
 심훈 동상(당진 심훈기념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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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농촌계몽소설인 심훈의 <상록수> 주인공의 실제모델이 심훈의 조카 심재영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역은 물론 문학계에도 파장이 일고 있다.

소설 속 남자주인공인 박동혁의 실제모델은 그동안 심훈의 조카인 심재영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윤성의 심훈기념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 정설처럼 여겨진 이같은 내용을 반박하고 나섰다. 이어 윤씨의 주장을 잇는 의견이 또 제기되면서 심재영 모델론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발간된 당진문학 제17호에 윤성의씨는 "소설 '상록수'와 공동경작회"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윤씨는 이 글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소설 <상록수> 속 남자주인공 박동혁의 모델이 심훈의 조카인 심재영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심훈과 <상록수>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헌과 심재영이 남긴 자료들을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심재영 모델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소설 '상록수' 박동혁 실제 모델, 심훈 조카 아니다")

"심재영 스스로 박동혁 모델이라 칭해"

당진시대의 보도 이후 윤성의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의견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청한 A씨는 "심재영의 삶은 농촌계몽운동과는 큰 관련이 없다"며 박동혁의 실제 모델이 심재영이라는 설에 대해 강한 반론을 제기했다. A씨는 "심훈의 집안은 친일적 시류에 순응하는 전통적인 양반 가문 출신의 중산층 지주계급으로, 심훈과 달리 심훈의 두 형은 친일파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심훈의 두 형인 심우섭·심명섭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돼 있다.

심훈의 큰형이자 심재영의 아버지 심우섭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발행된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전시동원 선전조직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순회강연반 연사가 돼 함경남도 지역에서 연설을 하고, 조선임전보국단(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해 여러 단체들이 통합돼 조직된 연합단체)에도 참여하는 등 일제에 협조한 행적이 있다.

이에 심우섭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언론·출판 분야로 분류됐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개신교 목사였던 작은 형 심명섭 또한 친일파로 분류돼 있다.

35년 전에도 '심재영 모델론' 비판 있었다

또한 A씨는 "심재영씨의 삶은 농촌계몽운동과 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재영 이전에 박동선이라는 사람이 먼저 송악읍 부곡리에서 야학을 진행했다"며 "심재영은 해방 후 농촌계몽운동 활동으로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심재영 본인이 소설 <상록수>의 남자 주인공 모델이라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덧붙였다.   

소설 <상록수>가 연재된 1930년대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방학이면 농촌에서 여러 계몽활동을 전개한 가운데 심재영이 소설 속 박동혁처럼 농촌계몽운동을 주도한 게 아니라 단순히 이 활동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왜곡·과장된 심재영 모델론"

심재영 모델론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심재영이 살아 있던 당시 박동혁의 실제모델이 심재영이라고 알려지던 때, 송악읍 부곡리에서 1년여간 거주한 백승구는 1985년에 발행된 <심훈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상록학원설'과 '모델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두 글을 통해 언론에서 소설 <상록수>의 남자주인공의 모델이 심재영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심재영 모델론이 얼마나 왜곡되고 과장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상록학원설'에는 "심훈이 소설 당선금 일부를 심재영에게 기탁해 상록학원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날조된 이야기"라며 "상록학원이 상록국민학교의 모체였느니 전신이니 하는 따위의 설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송악초등학교 상록분교장은 1958년 4월 1일 한진국민학교로 승격됐고 4년 후인 1962년 학교이름이 상록국민학교로 개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백승구는 '모델론'을 통해 심재영이 벌였던 야학을 두고 "박동선이 야학을 중단하자 마을 청년들과 이어서 농한기에 야학을 운영한 것으로, 그 시대에 유행했던 문자보급운동이었다"며 "심재영을 가리켜 농촌운동가라 하기보다는 문맹퇴치운동가라 칭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설 <상록수> 속 농우회가 심재영이 벌였던 공동경작회를 모델로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백씨는 "당시 지주였던 심재영이 마을 청년들과 계모임 같은 조직을 만든 다음, 이들과 같이 자기 집의 논을 세내어 경작한 후 거기에서 나오는 소득을 계원들의 활동에 썼다"며 "소설 <상록수>에서 말하는 공동경작은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적인 것을 말하며 심재영 등 10여 명이 해온 일은 하나의 계모임적 활동이므로, 이를 두고 작품 속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일은 잘못"이라고 기술했다.

"소설 속 인물 재창조 될 수 있어"

한편 윤씨의 주장을 두고 일각에서는 허구의 소설을 지나치게 현실과 동일시해 '다큐멘터리'로 바라본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남광현 당진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장은 "소설의 인물을 두고 실존인물과 똑같지 않다는 이유로 모델이다, 모델이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심재영이 소설 속 주인공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 자체가 심훈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심재영의 일부 면모가 박동혁에 투영될 수 있는 것으로, 소설 <상록수>는 박동혁의 전기가 아니기에 인물을 재가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심재영의 활동 중 일부를 모델로 삼고 거기에 심훈 스스로가 가진 사상을 더해서 박동혁이란 인물을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에 송고됐습니다.


태그:#심훈, #당진, #심재영, #박동혁,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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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진시대 박경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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