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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코앞이다. 업종마다 대목이 있겠지만, 학교는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앞둔 지금이 1년 중 가장 바쁠 때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이야 OMR 카드 리더기와 컴퓨터가 다 계산해줄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아이들의 학교생활 면면을 기록하는 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1년 동안 이것저것 메모해둔 교무 수첩을 뒤적이고, 아이들이 제출했던 보고서 등을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가 마감되어야 비로소 한 해 농사가 끝난다.

수첩이든 보고서든 근거 자료가 없다면, 교사는 생기부 작성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 학급 당 서른 명도 넘는 아이들의 특징을 기억해내고 글로 풀어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수백 명의 수업 태도와 교과 역량을 일일이 기록해야 하는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매일 생기부에 접속하여 한 문장, 한 단어씩이라도 그날그날 아이들의 행동 특성을 기록하는 부지런한 교사도 없진 않다. 하지만 어차피 학년 말이 되면 그것들을 제한된 글자 수에 맞춰 요약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다. 대개 겨울방학이 끝나고 이듬해 2월이 되어서야 생기부가 마감되는 이유다.

근거 자료 하나 없이 오로지 머릿속의 기억에 의존해 작성하게 되면 생기부는 '소설책'이 되고 만다. 아무리 속을 썩인 아이들이라도 생기부에 곧이곧대로 기록하는 교사는 없다. 생기부에선 신중하다는 건 게으르다는 뜻이고, 쾌활하다는 건 산만하다는 지적이라고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자신에 대한 생기부 기록이 잘못됐다며 해당 교사를 찾아와 문제를 제기하는 아이도 본 적 있다. 과제도 제출하지 않고 수업에 불성실했는데도, 생기부에는 수업 준비가 철저하고 적극적이라 적혀있다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오타가 난 것 같다고 말하는 순진무구한 그에게 교사는 무어라 답했을까.

한 해 농사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현실은...

이맘때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수업 중 특기할 만한 내용을 묻는 설문지를 나름대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다. 쓸 만한 거리가 부족해 벌충해보려는 고육지책이지만, 자칫 교사마다 영악한 아이들의 '자기 PR 실력'에 놀아날 우려가 없지 않다. 황당무계한 내용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적어낸 활동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3.1운동에 관한 수업이라면 학습 목표에 따라 일어난 배경과 전개 과정, 영향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따금 과제 삼아 세계 여러 나라의 민족운동까지 다루는 경우가 있지만, 더 이상의 심화 학습은 정규 수업에서는 어렵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 주말에 도서관을 찾아 3.1운동이 다른 나라 교과서에 수록된 현황을 조사했다거나, 당시 보도된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서 상호 비교해봤다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아이가 수업을 들은 뒤 호기심이 생겨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찾았다는 건 교사로서 뿌듯하고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타쿠'가 아닌 다음에야 고등학생에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주요 교과도 아니고 시험에 출제되는 내용도 전혀 아닌 데다 해야 할 숙제조차 만만치 않은 마당에 부러 주말의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건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번은 해당 아이를 교무실로 불러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적이 있다. 남다른 호기심과 공부 습관을 칭찬하면서도 도서관에 간 때와 조사한 내용을 문초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가긴 간 것 같은데 공부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모습이 적잖이 민망했다. 하긴 대답은커녕 밑도 끝도 없이 생기부에 적어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 밖 외부 교육기관에서 활동한 내용은 아예 생기부 기재가 금지되어 있다. 수상 내역도 학교 내 실적만 가능할 뿐만 아니라 횟수도 제한될 정도로 엄격하다. 자율활동과 진로체험활동을 실시한 기관명조차 기록할 수 없게 돼 있다. 사교육 등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허점투성이다. 경찰 열 명이 도둑 한 명을 못 잡는 법이다.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부모의 '후광'과 사교육의 '혜택'을 생기부에 두루 반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앞에 언급한 사례처럼, 학교 수업 이후의 다양한 '후속 활동'을 했다며 자료라도 만들어 제출할라치면 규정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교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교무실에 찾아와 생기부에 기록해달라며 출력물을 건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생기부 기재 항목에 맞춰 영역별로 글자 수까지 맞춰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것이 그대로 옮겨진다면, 생기부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나 학부모가 작성하는 셈이 된다.
  










 이태 전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에 기재해달라며 찾아온 아이에게 대놓고 면박을 준 사건이다. '생기부 작성하느라 고생하시는 선생님을 위해서 정리해왔다'고 눙치는 그의 표정에 순간 모멸감이 들어, 아이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렸다.

언뜻 봐도 스스로 쓴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글쓰기 능력을 익히 봐온 터라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낸 내용을 숙지하고 있을 테니, 네가 쓴 것 맞느냐고 묻는 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분명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건넨 출력물을 찢어버렸다. 그런 후 놀란 눈을 하고 서 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생기부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쓰는 것이라고. 이튿날 그의 부모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셀프 생기부'를 막는 건, 오로지 교사들의 손에 달렸다. 아이들의 입에서 생기부라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기부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담임 및 교과 교사들의 관찰기록이다. 학부모 서비스로 제공되는 정보공시나 중간, 기말 성적 외엔 졸업하기 전까지 영역별 기록은 접근은커녕 열람하는 것조차 차단해야 한다고 본다.

수능은 교실 수업을 온통 문제 풀이 시간으로 만들어버렸고, 멀쩡한 교과서는 참고서와 문제집으로 대체됐다. 이젠 생기부가 대학입시의 당락을 결정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 전반을 빠르게 형식화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는 건, 학벌구조가 온존한 우리 교육의 불치병인지도 모른다.

소논문이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학교마다 소논문 쓰기가 유행처럼 번졌고, 1년짜리 자율동아리가 기존의 동아리 활동을 압도하기도 했다. 진로 희망과의 내러티브가 중요하다면서 맞춤형 자율활동과 봉사활동 컨설팅이 진학 담당 교사의 신규 업무로 등장했다. 학교생활의 가치는 오로지 생기부 기재와 반영 여부에 의해 결정됐다.

다만 둘 사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수능은 교사가 어찌 손써 볼 수 없지만, 생기부는 교사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얼마든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적어도 수능 체제에서는 교사에게 왜 사교육 강사처럼 하지 못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생기부는 교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사교육의 바람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교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

학교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명문대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맹목적인 의무감에서 벗어나면 된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보다 더 역량 있는 아이가 다른 학교에 있다고 여긴다면, 그의 자리를 내 아이가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내남없이 우리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요컨대 열쇠는 교사들이 쥐고 있다. 일부 학교와 교사들의 비리가 생기부와의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고 해도 모두 생기부의 불신으로 수렴되는 건 우리 사회의 교사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졌다는 분명한 신호다. '가짜 생기부'라는 세간의 신랄한 비판에는 교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교사들 대부분이 수능보다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교육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생기부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이 수능에 비할 바 없이 크고 개선해야 할 게 적지 않지만, 학종의 취지만큼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기부는 대학입시를 위해 잠깐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꿈 많은 이팔청춘 시절을 담은 소중한 앨범이라는 생각에서다.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상엔 믿지 못할 세 가지가 있는데,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그 이야기. 본디 필요에 따라 왜곡되기 쉽다는 의미로 통계를 비아냥거리는 표현인데, 그 위에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생기부가 있다고 아이들마저 조롱하는 참담한 지경이다.

동료 교사들에게 감히 부탁드린다. 아이들 스스로도 민망해하는 허황된 근거 자료에 의존하지 말고, 학년 말 생기부를 보고 겪은 그대로 소신껏 작성하자. '원칙을 지키면 나만 바보가 된다'는 생각은 교사 집단의 공멸을 부를 뿐이다. 생기부가 살면, 교사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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