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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스물다섯 살 권대희씨는 성형외과병원에서 턱 수술을 받은 후 과다출혈로 대학병원에 응급 이송되었으나 뇌사상태에 빠져 49일 만에 사망했다.
 취업준비생 스물다섯 살 권대희씨는 성형외과병원에서 턱 수술을 받은 후 과다출혈로 대학병원에 응급 이송되었으나 뇌사상태에 빠져 49일 만에 사망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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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의사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당시에 아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을 거예요. '14년 무사고'라는 광고만 믿고 수술하러 간 대희가 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확인할 길이 없었겠죠.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병원에서 하는 말만 믿었겠지요."

권대희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착실한 청년이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평소 불만이 많았던 턱 부분 수술을 위해 서초구의 한 유명 성형외과병원에서 2016년 9월, 아래턱과 사각턱 절개 수술을 받았다.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청년은 수술 중 출혈이 심해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49일간 뇌사상태에 있다가 10월 26일 사망했다.

"성형외과에서 허위나 과장으로 광고를 많이 하잖아요. 그 병원만 해도 14년 무사고라고 광고하면서 원장이 케이블TV 프로그램에 나오곤 했어요. 그러니 수술하러 가면서 친구한테만 얘기하고 보호자도 없이 가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거죠. 출혈이 심해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을 했고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어요. TV에서 의료사고 나는 거 보고 안타까워했지만 막상 제가 그런 일로 아들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어요."

병원에선 대희씨 사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들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었던 어머니 이나금씨는 형사고발을 했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의무기록지 감정의뢰 결과 무면허 의료행위가 인정된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경찰은 2년간의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해당 병원 의사 3명과 간호조무사 1명을 업무상과실치사죄 및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동영상 통해 밝혀낸 기가 막힌 사실들

"병원에서는 전원한 대학병원에 책임이 있다고 했어요. 자기들이 원인 제공은 했지만 우리 대희가 사망한 책임은 대학병원에 있다는 거였죠. 사과는커녕 책임 인정조차 안 하는 태도 때문에 분노했어요. 피눈물을 흘리면서 수술실 동영상을 봤어요. 처음에는 보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지만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정말 그런지 한번 보자.' 그런 심정으로 본 것 같아요."

이나금씨는 수술실 CCTV 동영상을 4백 번 가까이 봤다. 꼭 알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왜 멀쩡하던 아들이 돌연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야 했다.

"동영상을 보니 다 알 수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환자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참 기가 찰 정도였어요. 의무기록지에 기록된 내용과 실제로 취한 조치가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동영상을 수백 번 보면서 초 단위로 분석하고 기록했어요."
 

이씨가 동영상을 통해 밝혀낸 사실들은 의료사고 유가족으로서는 알 수 없는, 그러나 기가 막힌 사실이었다. 의사가 수술실을 여러 곳 열어 놓고 동시에 수술하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환자 혈압이 떨어져 위험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수혈이 필요한데 펜타스판 수액만 주입하고 출혈이 계속되는 환자를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술실에서 눈썹을 고치거나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당시 아들이 처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직 갈 길 먼 수술실 CCTV 법제화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숨진 고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씨가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숨진 고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씨가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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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16년 12월, 환자단체연합회에서 진행한 제19회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사건을 알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경찰은 검찰에 지난 10월 사건을 넘긴 상황이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이런 거 다 모르고 살면 좋을 텐데. 수술실 동영상을 몇백 번이나 봐야 하고, 의료행위에 대해 공부하게 되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죠. 하지만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가족들이 사건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잘 알아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어요. 전문가들도 실수할 수 있고 가족들만큼 절박한 심정은 아닐 테니까요."

이씨는 지난 11월 22일부터 국회 앞에서 열리는 1인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19명의 의료사고 피해자 및 유족이 참여한 릴레이 1인시위에 가장 먼저 나선 이가 이나금씨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수술실에 CCTV 설치를 법제화해달라는 것이다.
  
"대희가 49일 동안 뇌사상태로 있을 때부터 동영상 자료를 봤어요. 우리 아들이 '엄마, 고생되고 힘들지만 이런 일 다시는 없도록 고생해줘.' 그런 메시지라고 생각하면서 봤어요. 어른들이 못 지켜주고 사회제도가 부실해서 나는 의료사고는 더 이상 없길 바라요. 대희는 없지만 이런 일이 다시는 이 땅에 생기지 않도록요."
 

그가 생각하는 수술실 CCTV 법제화는 아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선물이나 다름없다. 지난 5월 부산 영도구 정형외과의원에서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에 의한 무자격자 대리수술로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환자단체와 의료사고 피해자·유족들은 관련 의료법의 개정안 발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나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나금씨의 힘겹고 외로운 1인시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태그:#1인시위, #의료법 개정안, #대희법,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의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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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노동자.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후 2022년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2023년 <나의 낯선 친구들>(공저)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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