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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오전, 교육부 체험학습 실태조사 공문 보고를 준비하는 경기도의 한 고교 교무실 풍경. 교사들이 모여 전교생의 출결일지를 뽑아 하나 하나 점검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교육부 체험학습 실태조사 공문 보고를 준비하는 경기도의 한 고교 교무실 풍경. 교사들이 모여 전교생의 출결일지를 뽑아 하나 하나 점검하고 있다.
ⓒ 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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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교는 성적 마무리와 학생부 기록으로 숨 쉴 시간도 부족한 시기다. 이때 교육부가 던져 놓은 면피용 공문에 돌아버리는 건 교사다."

경기도에 있는 한 고교에서 일하는 엄민용 교사(학생부장)가 지난 20일 오전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교육부의 체험학습 공문 때문에 학교는 난리"라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 내용이다.

전수조사 자료 급박하게 달라던 교육부, 입 닫은 사정은...

교육부는 지난 18일 강릉 펜션사고가 터지자, 다음날인 19일 시도교육청에 "고3 학생의 교외체험학습 실시현황 및 학사운영 점검 결과를 21일 오전까지 알려 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을 받은 교육청은 학교에 교육부 보고 시한 하루 전인 20일까지 '관련 내용을 보고하라'고 지시하면서 위와 같은 교원들의 불만이 더 크게 터져 나왔다. (관련기사: "학교가 방치? 장관이 체험학습 잘 모르는 듯")

몇몇 시도교육청은 고3으로 조사 범위를 국한한 교육부 공문과 달리 초중고 전체 학생의 체험학습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 등은 '(펜션, 리조트, 콘도 등) 숙소 유형, 보호자 동행 여부, 보호자 유선 확인 여부, 허가 인원 등을 적어내라'고 지시했다. 
 
 1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열린 강릉 펜션 사고 관련 상황점검회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1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열린 강릉 펜션 사고 관련 상황점검회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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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사들은 공문 보고를 위해 프라이팬 속 콩처럼 들들 볶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부가 '가스 방치' 때문에 생긴 펜션 사고를, 학교의 '학생 방치' 문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학교 안팎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교육부가 이처럼 하루 이틀 만에 전수조사를 벌일 것을 전국 학교에 지시하더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확인됐다.

조사 마감시한을 6일이나 넘긴 27일, 이 체험학습 조사자료를 교육부에 낸 시도교육청은 전체 17곳 중 10곳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26일까지는 6곳에 지나지 않았다. 교육부 담당부서에 직접 확인한 결과다.

김승환 전북교육감 "본질은 체험학습 아냐, 실태조사 보류"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육부는 말만 '체험학습 전수조사'일 뿐 전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체험학습 담당부서 소속 중견 관리는 27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전반적으로 (체험학습) 총통계는 아직 안 나온 셈"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19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강릉사고 상황대책반 회의에서 내놓은 "체험학습 명목으로 고교생끼리 장기투숙을 하는 여행이 있는지 신속하게 점검하겠다"는 발언이 무색해진 것이다.

교육부가 급작스럽게 '실태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시도교육감협의회장)은 "체험학습 전수조사와 점검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릉 펜션 사고의 본질이 체험학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부 중견관리도 "지금 생각하기에 시간을 딱 맞춰서 조사 결과를 언제까지 보내라 그럴 필요는 없었다"라면서 "시도부교육감들 의견이 21일 오전에 있는 부교육감 회의까지 점검(조사)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급박하게 조사할 사정은 없었는데 시도부교육감이 하루 이틀이면 조사할 수 있다고 해서 서둘러 조사하게 됐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지난 19일 시도교육청에 보낸 '체험학습 전수조사' 지시 공문.
 교육부가 지난 19일 시도교육청에 보낸 "체험학습 전수조사" 지시 공문.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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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교육부는 이렇게 조사한 결과를 무엇에 쓰려고 했던 것일까? 이 중견관리는 "현재 체험학습 하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인지 학교와 시도교육청이 체크를 하게 하자는 취지도 있었다"면서 "집계를 당장해서 교육부가 쓰겠다는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리는 "사고가 났으니 어느 정도가 체험학습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필요했고, (앞으로 발표할) 수능 이후 교육과정 내실화방안에 참고자료로 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중견관리도 "조사결과, 언제까지 보내라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이에 대해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대변인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교육부가 책임 회피를 위해 면피성 졸속행정을 한 것으로 본다"면서 "이런 과정에서 제대로 쓰지도 못할 조사 자료를 만드느라 전국 학교 교원들만 그 바쁜 학기말에 큰 고생을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6일 초중고에 공문을 보내 이 지역 '초중고 개인 체험학습 현황'을 내년 1월 3일까지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국회의원과 서울시의원이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이어 체험학습 자료 조사를 또 요구한 것이다.

박근병 서울교사노조 위원장은 "교육부 조사 공문 때문에 시달린 교사들이 이 공문을 보고 정말 약이 바짝 올라 있다"면서 "조사 목적과 사용처도 불분명한 체험학습 학기말 공문 홍수를 막아야 할 곳은 바로 교육당국"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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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