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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그려낸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펜 터치가 인상적인 웹툰 작품엔 그 작가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인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잃고 싶지 않은 가치를 쥐고 뚜벅뚜벅 걷는 사람. 그렇게 올곧지만 또 유연한 사람. 작품은 단순히 아이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육아 웹툰이라기보다 작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완전히 달라진 삶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맥락으로 통한다.

네이버 베스트 도전만화에 선정되기도 한 웹툰 <봄이와>는 혼자였던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겪는 일상 속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기록한 만화다. 작가는 고군분투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교차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삶이 흘러온 방향을 가늠해보게 만든다.
 
네이버 맘&키즈판에서 6만뷰를 기록한 웹툰<봄이와> 시즌2 '둘째고민'편의 한 장면
▲ 웹툰<봄이와> 네이버 맘&키즈판에서 6만뷰를 기록한 웹툰<봄이와> 시즌2 "둘째고민"편의 한 장면
ⓒ 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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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돌이켜 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숨가쁜 독자, 특히 엄마들에게 자연스러운 공감을 일으키는 작품엔 영감과 경험이 공존한다. 만화의 생명인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을 시작으로 육아라는 인생의 큰 과업을 행하며 겪는 온갖 감정들은 작가 일상과, 또 인생 전체의 흐름 안에 배열되어 있다.

아이 키우는 것만 해도 일상이 꽉 찼을 텐데 어느 사이에 매회 작품 구상을 할 수 있었을지. 에피소드 하나를 완성하려면 최소 꼬박 4일이 걸리는, 쉽지 않은 웹툰 창작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작가 소만의 지금과 지나온 삶을 들여다 보았다.

차선을 반복했던 삶
 
웹툰<봄이와>의 작가 소만
 웹툰<봄이와>의 작가 소만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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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을 보낸 시골 동네에는 종류를 막론하고 문화생활을 향유할 만한 곳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대여점에서 좋아하는 순정만화를 잔뜩 빌려 보기도 했다. 그 시절에 자주 놀러 갔던 옆동네 친구집 2층 다락에 올라가면 만화가 잔뜩 있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종이와 펜촉이 늘어져 있었다. 알지 못한 세상이었다. 보고 싶은 만화를 볼 수 있을뿐더러 한껏 부풀어 오른 상상을 창작으로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따뜻했다. 품 넓은 공동체 안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김숙 작가의 <딸기 미용실> 같이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 속 서사가 담긴 만화를 좋아했다.

상상 속 세계를 통해 키워나간 창작의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만화가의 삶이 궁금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용기는 열망에 비례하진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우리 언니도 미술을 했어. 언니가 그림을 참 잘 그리니까 나 정도의 재능은 너무 평범한 재능이다. 이걸로 먹고살 만한 재능이 아니다. 난 어릴 때부터 되게 현실적이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는데 언니가 미대를 갔고… 그런 걸 보면서 나라도 부모님 부담 안 주는 쪽으로 가야겠다 생각을 했던 거지."
대학 졸업 후 한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했다. 경쟁의 소용돌이 속을 무던히 헤엄쳐 대기업에 안착했고, 정확히 1년 뒤 퇴사를 결정했다.
"정말 일하기가 싫더라고. 특히나 대기업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거야. 업무에 쓰는 에너지보다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써야 하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더라고. 그걸 잘 해야 유능한 거였고. 난 그 비합리가 너무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아."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받은 퇴직금으로 미대 편입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미대 편입에 성공했다. 평범한 재능이라는 불안을 떨치고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차선이었다. 선택하고자 했던 그 선택지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차선. 서양화과를 가고 싶었지만 좀 더 취업이 잘 될 것을 고려해 디자인과를 선택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
 
웹툰<봄이와>의 작가 소만
 웹툰<봄이와>의 작가 소만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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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사회의 한 축에서 자신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중국에서 들여온 값싼 물건이 디자인을 거쳐 예쁘게 포장되면 광고를 통해 사람들에게 팔렸다. 그 과정에서 모든 클레임은 기업 콜센터 직원의 차지가 되었고, 그건 맨몸으로 화살을 맞는 그런 종류의 모욕이었다.
"콜센터 직원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 이게 자본주의인가? 이 세계와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많이 들었어. 그러다 다시 간 미대를 졸업했을 때 즈음엔 내가 더 달라져있긴 했던 것 같아.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을 하며 살고 싶었어."
미대를 졸업하니 스물아홉이었다. 변화는 자기 내면에 좀 더 충실하는 행동으로 번져갔다. 다시 기업에 들어간다면 이전에 겪었던 고통의 연장선상에 놓일 게 뻔했고, 이젠 정말 마음이 시키는 무언가를 해보자고 말이다.

졸업 후 그림책 공모전을 준비하며 수많은 그림을 공부하고 접했다. 성미산 학교의 교사로 활동했고, 네팔 어린이 노동자를 지원하는 NGO 단체에서 네팔 학교에서 쓸 교재를 직접 만들기도 하였다. 생태주의가 꿈꾸는 가치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살면서 몰랐던 것들을 배웠고,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을 경험했다.
"돈이나 생계 문제에 조금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들여다볼 수 있잖아. 뭔가 시도해 볼 수가 있잖아.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제가 도입된다면 참 좋겠어."

만화는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치
   
웹툰<봄이와>시즌2 단행본 샘플북
 웹툰<봄이와>시즌2 단행본 샘플북
ⓒ 이상호(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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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한 현실 안에서 갈등하다 차선을 선택하긴 했지만, 자기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는 작가 소만. 그녀는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만화를 그리면 그런 쾌감이 있어. 내 상상의 나래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세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그때만큼은 내가 오롯이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어."
어떻게 살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갈등은 빈번하지만 그래도 이젠 자기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것 같다는 그녀는 여유로웠다. 아니 자유롭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이전엔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평가되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정형화된 기준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마스다 미리나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그림도 굉장히 매력적이잖아. 나의 개성을 찾아가면서 계속 발전시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재 작업중인 웹툰<봄이와> 시즌1-시즌2 단행본 샘플북
 현재 작업중인 웹툰<봄이와> 시즌1-시즌2 단행본 샘플북
ⓒ 이상호(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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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봄이와>는 시즌 1을 거쳐 시즌 2까지 마무리되었다. 네이버 맘&키즈판에 소개되어 공감하는 독자들이 더 늘어났다. 현재 시즌 1과 시즌 2는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최근 여성 단체 활동가로 일을 하기 시작하며 책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는 작가를 응원하고 싶다.

태그:#웹툰, #봄이와, #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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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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