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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을 이용한 엽기적인 폭행 사건.
  권력을 이용한 엽기적인 폭행 사건.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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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에게 메시지가 왔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청년으로 칼럼을 작성해줄 수 있느냐는 문자였다. 마침 셜록의 기사 영상에 시선이 닿았다. 핵심을 이루는 내용은 권력을 이용한 엽기적인 폭행 사건이었다. SNS와 각종 포털 메인에 양진호 회장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흔한 최고 경영진의 '갑질' 논란이 아닌 보다 뿌리 깊은 악행을 고발한 내용에 마음이 아팠다. 퇴사 후에도 회사에 불려가 뺨을 맞고, '왜 회사생활 안 하냐', '이용 가치가 없다'는 말까지 들으며 불법 동영상을 업로드한 직원, 그리고 용기를 내어 제보한 내부 고발자. 양회장이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직원 폭행 영상과 동물 학대 영상은 빠르게 퍼졌고, 폭력 사태는 순식간에 '음란물 카르텔1)'로 떠올랐다.RLA 


 
   웹하드 카르텔 구조도
  웹하드 카르텔 구조도
ⓒ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 형사 합동수사 전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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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았다.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까지 촬영해 권력욕을 채우고자 했던 심리도, 콘텐츠의 생산 및 유통하는 방식도. 개인적 삶과 사업, 모든 영역이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특정 동물을 학대하도록 지시한 것도 그에게 결코 비상식적인 일은 아녔을 것이다. 그는 불법으로 제작한 영상을 유통했을 뿐만 아니라 저작권자에게 수수료를 내지 않고 수익을 챙기는 영업 구조를 조장, 피해자가 신고해 디지털 장의사에게 맡기더라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이른바 생태계를 만들었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등 그와 함께 그의 사업들이 망하더라도, 콘텐츠의 수익 및 유통 구조를 사라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나는 여성이고, IT업계 종사하는 한 청년이다. 양회장의 9가지에 이르는 혐의만큼이나 이번 사태에서 시사하는 것 또한 다양하다. 자본가의 폭력 사태를 넘어, 극악한 기업윤리, 폭력을 통해 생산한 수익와 권력 구조는 물론, 주목해야 하는 건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이 아닐까.
  
   혐의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혐의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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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모독적인 폭행 사건은 순식간에 이슈가 되었다. 수만 명의 청원에 제보자는 용기를 냈고, 수사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오랫동안 쌓아둔 문제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하수구에 머리카락 뽑듯 말이다. 여기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수년간 웹하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못했을까? 영상의 주인공이 제보자로 나서기로 작정한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겨레의 어느 칼럼에 실린 그의 의견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진호의 피해자는 자신만이 아니라고 하면서, 불법 동영상 카르텔이나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에 대해 언급했다. '갑질' 폭행이 핵심이 아니라 '동영상'의 존재가 그가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게 된 이유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피해가 다른 여성들의 피해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앤디루빈의 성추행 은폐에 분노한 구글직원들의 공동행동
  앤디루빈의 성추행 은폐에 분노한 구글직원들의 공동행동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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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맥도날드의 직원들이 임원들의 성추행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전 세계 10여 개의 지사의 직원들이 거리에 나온 것이다. 구글에서도 비슷한 공동 행동이 일어났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의 성추행 사실을 은폐한 것에 대해 분개한 것이다. 세계 40여 개 지사의 직원들이 같은 시간대에 회사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사실 구글도, 우버도, 다양한 IT업계의 기업들은 임직원들의 성폭행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지금도 여전히 문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매해 수십 명의 직원들이 물의를 일으켜 해고당한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기업의 일이다. 
   
영상 속, 폭행을 보고도 돌아보지 못한 채 침묵으로 일관한 채 일하는 다른 동료들과 우리의 모습은 닮아있지 않은가. 오랜 세월 방조와 갑질로 양회장의 혐의는 두껍게 쌓여갔다. 퇴사한 동료가 맞았고, 누군가는 그 장면을 촬영해야 했고, 워크샵에서 석궁으로 닭을 쏘아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던 건 수년 후다. 한 명의 내부 고발자에 의해서였다. 구글의 시위와 양회장의 구속,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공동 대처에 나서는 문화, 그리고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문화. 모두 우리에게 절실하단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물리적 폭행을 당하는 것이든, 도촬 영상으로 시달리는 정신적 폭행이든, 우리 모두가 당사자고 그렇기에 즉각적이고 단결된 행동이 일어나야 한다. 
   
양회장 뒤에는 지난 3년간 400억 원짜리 그의 '갑질'의 힘을 만들어준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1000만 명의 다운로더들이 있다. 5명 중의 한 명꼴이다. 알고 있을 터, 규제를 만들지 않은 정부에도 책임이 있단 건 말할 것도 없다. 악랄한 폭행과 부도덕한 사업 운영은 질책받아야 마땅하다며 손가락질하면서도 조용히 그의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누군가, 불법 도촬 영상 거래에 문제 의식을 갖지 않는 누군가, 악의 굴레에 소비함으로 동참했던, 그리고 이에 대해서 지금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 이들에게, 그 침묵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양진호를 만들어낸 것은 누구냐고.

덧붙이는 글 |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1월 18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태그:#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서울청년정책LAB, #양진호, #웹하드카르텔,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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