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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극도로 불행한 사회라고 진단한 한국인이 있다. 그는 적폐 정권이 물러났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불행감이 극에 치달아 사회가 생(生)이 아닌 사(死)를 향한다고도 한다. 그를 한국인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의 얼굴만을 본다면 외국인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저자는 박노자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 '러시아의 아들(露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귀화 한국인. 노르웨이의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한국인. 탈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역자학자.
 
  대한민국 심층 구조의 전환을 제언한 책
▲ 박노자의 <전환의 시대>  대한민국 심층 구조의 전환을 제언한 책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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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할 책은 <전환의 시대>로 그가 발표한 글들을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정책 실패에 대한 여론이 한창이던 지난여름에 나온 책이지만 올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박노자는 책에서 진보 진영의 담론에 손을 들어주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보수, 진보 양 진영을 동시에 비판하는 '모두 까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진영 혹은 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라 '심층구조'에 그 문제가 있다면서.

그때그때의 '정책'만이 아니라 이 국가와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골격' 즉 대한민국의 심층구조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가 언급한 기본 골격에 대한 담론의 시도다. 만약에 대한민국의 기본 구조가 건전했다면 과연 적폐들이 무성하게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을까?라는 질문도 던지면서.

대한민국의 심층구조를 바꿔라

박노자는 적폐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기본 골격의 문제를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대한민국은 아직도 병영 사회라는 것이다. 올해 그 세력의 여전함을 느끼게 한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가 대표적 사례다. 그들이 꾸준히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적폐 정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부역을 대를 이어 해왔기 때문이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어린이 해병 캠프가 여전하고 신입사원 연수에 장거리 행군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군사주의가 내재화되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득을 보는 곳은 자본이다. 군사주의의 미덕은 고강도, 초장기 노동에 견딜 인력을 배출하고 그들에게 복종과 순종을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그렇다 치고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은 달라졌는데 무비판적인 지시에 대한 복종에 익숙해져야 하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둘째는 대한민국은 여성 혐오 사회라는 것. 박노자는 군사화된 사회는 여성 혐오를 낳을 위험이 크다고 주장한다. 군사라는 단어 자체가 남성 중심의 단어를 의미하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군사화가 자본의 요구와 맞물려 있듯이 여혐도 자본의 논리와 결탁한다고 진단한 것. 남녀 평균 임금 격차 등 구조적 차별에서 여혐이 벌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연예와 결혼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여혐 바이러스에 걸리기 쉽다고도 예측한다. 미국 남부에서 가난한 백인들이 흑인에게 인종주의적 폭력을 자행하는 논리와 유사한 구조라면서.

셋째로 대한민국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지만 '노동 지옥'이라고 진단한다. 노동자는 여전히 머슴이라는 것. 근대적 고용 노동의 개념은 법적으로 동등한 관계인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노동과 노임의 교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전통 사회의 주종 관계가 연상된다고 한다.

올해는 유난히 가진 자의 갑질이 뉴스에 많이 나왔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그 폭력과 폭언은 기업과 그 소유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박노자가 한국 대학에 있었을 때 목격하고 체험한 사례는 낯 뜨거울 정도다.

드러난 사례뿐 아니라 감춰질 수밖에 없는 그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주종 관계는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에도 존재한다고.

넷째로는 재벌을 비판한다. 대한민국의 최대 해악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4대강 죽이기와 인허가 비리, 불법 청탁 등 각종 적폐 정책의 가장 수혜자가 재벌이었다며 그들이 한국 사회를 좌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 때문에 우리 사회의 격차도 심해진다고 진단한다. 덕분에 모순과 갈등도 커진다며. 박노자는 재벌이 지배하는 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대수술 없이는 각종 적폐를 효과적으로 청산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섯째는 대한민국은 위계와 서열의 사회라는 것. 동료가 아닌 선배와 후배, 급우가 아닌 우등생과 열등생이 있을 뿐. 나아가 은행 잔고, 아파트 평수, 영어 구사력, 성별, 나이, 지위까지도 그 평가의 잣대라고.

박노자는 이러한 사례가 갑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한다. 이런 구조에서 과연 행복하게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전환하라

박노자는 이렇듯 대한민국 기본 골격의 다섯 가지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제는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폐 정권은 몰락했지만, 적폐 자체는 아직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며. 청산을 위해서는 인적 청산만으로는 어림없다고 주장한다.

적폐 정권 9년 동안 견제를 받지 않고 일부 지배 계급이 맘대로 할 수 있었던 토양 그 자체를 대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적폐들은 다시 돌아온다면서. 그러려면 대수술, 3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탈분단이다. 통일이라는 구호 대신 탈분단을 사용했다. 한쪽의 힘이 아닌 양쪽이 평등하게 진행되는 평화 통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탈군사화다. 대한민국처럼 군대와 사회 사이에서 뚜렷한 경계를 찾기 힘든 나라도 없다고 주장한다. 탈군사화가 진행되면 학교, 직장, 사회의 갑질 문화도 사라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셋째는 탈자본이다. 지금까지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였다면 이제는 다들 골고루 살기 편한 사회로 개조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몸에 익었던 대한민국의 기형적 구조가 한때 외국인이었던 눈으로 보기에 이상했을 것이다. 한국인이 되었지만, 경계인 혹은 이방인으로 취급당하며 그 구조적 모순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이렇듯 박노자의 <전환의 시대>는 무작정 한국을 지지하는 '국뽕' 글이 아니라 아픈 비판을 담았다. 그렇지만 촛불 혁명 후 역사 대전환의 기회를 잡은 한국인으로서의 뿌듯함이 담긴 글이기도 하다. 그의 머리말에서 이 책에 담은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적폐 정권과 함께 박정희식 '성장신화'도 영원히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된다고 한들, 갑질과 불안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이 숫자놀음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성장과 이윤이 아닌 모두의 생존과 평등한 행복이 사회의 최고 가치가 돼야 한다.!' (15쪽 )
 
다수가 공유한 꿈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그 꿈을 함께 꾸는 2019년이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환의 시대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2018)


태그:#전환의 시대,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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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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