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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생인 나는 충북 단양의 외딴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읍내에서 출발한 버스는 좁은 계곡으로 나있는 신작로를 돌고 돌아서 1시간은 들어가야 고향 마을인 상선암에 닿곤 했다.

산림이 울창하고 주변 경관이 수려해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더러 있었지만 바깥 세상과는 거의 단절된 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라디오조차 흔치 않았던 때라 외부의 사건 사고 소식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듣게 되는 경우도 흔했다.

이곳엔 높이 6m가 부족해 학교에서 배우던 지리책에는 없지만 해발 994m의 용두산이 있다. 마을 입구 신작로에서 시작된 좁고 비탈진 길을 따라 용두산 칠부 능선까지 올라간 곳엔 너댓 가구의 민가가 뿔뿔이 흩어져 있곤 했다. 

거기엔 우리 부모님이 어렵게 일군 화전밭보다 훨씬 더 경사가 심한 산에 제멋대로 생긴 밭뙈기들이 마치 바람에 연이 날리다 멈춘 것처럼 보이곤 했다. 그런데도 어느 곳 하나 뺄 것 없이 주먹만 한 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자갈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이런 밭에 소를 앞세워 쟁기로 겨우 갈아엎어 놓아도 땅심이 별로 깊지가 않아 재배하는 작물은 잎담배와 콩 옥수수 등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가 않았다. 그 위쪽으론 언제쯤 생산이 중단됐는지 알 수 없는 폐광 하나가 있다.

가림막도 없는 조그마한 갱도 입구엔 석탄을 캐낼 때 산 아래로 마구 버려진 시커먼 돌이 많아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그곳에서부터 우리 마을까지 죽 내려온 골짜기의 이름은 '산터골'이다.
 
산타는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했다.
 산타는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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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천 계곡 맞은편 산 중턱에 있던 우리 집에서는 산터골의 세네 집과 밭들이 멀찍이 올려다 보이곤 했다. 내가 언제부터 믿게 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크리스마스 전날 깊은 밤이 되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몰래 놓고 간다는 걸 어렴풋이 인지하게 됐다.

더구나 나의 두 형도 평소 산타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었다. 이런 꿈같은 얘기를 몇 차례 반복해서 듣다 보니 순진했던 나는 정말 그런가 하고 믿을 수밖에 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선물을 준다는 사람의 이름이 산타였을까? 마침 우리 마을 앞산엔 산터골이 있다.

때문에 내가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 전해 들은 대로 믿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한술 더 뜬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마다 산타할아버지는 언제쯤 내게 다녀가실까 궁금하여 맞은편 산터골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었다.

썰매가 다닐만한 매끄러운 길도 없는데 사람들이 매번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신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산터골에 사시는 마을 사람 중에서 누군가 산타로 변장하여 선물을 주러 다니는 것으로 여겼다.

'도대체 산타는 누굴까?'

평소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나는 한동안 산터골에 있는 어른을 만날 때마다 상상 속의 산타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가 싶어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는 수고를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실제 산타를 만난 적도 없으며 몰래 던져 놓고 간 선물을 받았던 일은 더더욱 없다.

나중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들어간 내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산타는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적잖이 실망했었다.

어느덧 고향을 떠나 온 지 40년이 됐다. 용두산 아래로 지나가던 뭉개 구름이 가끔씩 힘에 겨울 땐 잠시 쉬어 가기도 하던 그곳 산터골은 내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태그:#상선암, #용두산, #산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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