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영화 <말모이>. ⓒ 더 램프

  
한국인의 우리글·우리말 사랑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도 상당히 유별나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민족주의 감정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민족주의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면, 다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전통 민족문화는 거의 다 한자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한자와 한문은 어느 정도 한국화돼 있다. 한국식 한자, 한국식 한문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중국어와 비교할 때 어휘가 많이 다르다. 조선시대 한문 문장을 보면, 문법도 약간은 다르다. 조선 선비들의 한문 문장은 '콩글리시' 같은 면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상당히 한국화된 한자·한문에 의해 민족문화 대부분이 기록돼 있는데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 언어에 애착을 갖지 않는다. 어려워서 배우지 않더라도 애착이라도 가질 만한데, 한국인들은 냉랭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만약 한국인들이 오로지 민족주의 감정만으로 언어 문제를 대한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리 없다. 민족감정에 휩싸여 있다면, 민족문화를 담고 있는 한자와 거리를 두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는 한글로 표기되는 우리말에 대한 애착 역시 민족주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민족주의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말모이 편찬에 없어선 안 될 핵심 인물 김판수
 
 김판수(유해진 분).

김판수(유해진 분). ⓒ 더 램프

  
배우 유해진은 언뜻 보면 악역을 해도 될 듯한데도 실상은 악역이 어울리지 않는다. 친숙하고 정감 넘치는 외모가 강점인 그의 얼굴을 쉴 새 없이 보여주는 영화 <말모이>는 상상의 시나리오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글·우리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규명해주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김판수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일본글·일본말을 강요하는 1940년대 제국주의 치하에서 우리말 말모이 즉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운명을 함께한다.
 
그런데 외형상 그는 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극장 직원으로 일하면서 부정직한 짓을 저질러 해고됐을 뿐 아니라, 소매치기를 서슴없이 할 정도로 손버릇도 좋지 않다. 매너도 마찬가지다. 사무실 바닥에도 함부로 침을 뱉는다. 결정적으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조선어학회에 사환으로 들어가더니, 말모이 편찬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로 성장한다.
 
경성역(서울역)에서 김판수한테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있어 그의 일거일동이 몹시 못마땅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 분)은 어떻게든 그를 내쫓으려 한다. 판수의 따뜻한 마음씨를 잘 아는 학회 큰어른 조갑윤(김홍파 분)이 판수를 사무실에 들이고 신뢰를 표시하는데도, 정환은 판수를 내쫓고자 '매우 난해한 미션'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정환이나 갑윤 같은 사람한테는 전혀 난해하지 않지만 판수한테는 매우 난해한 그것은, 1개월 안에 한글을 마스터하는 미션이다.
 
세종대왕이 훌륭한 창제자라는 사실이 바로 그때 드러난다. 누가 봐도 불가능할 것 같던 한글 습득이 착착 진행되더니, 얼마 안 가 판수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며 감동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까지 된다. 인력거꾼인 김첨지의 비극적 일상을 '운수 좋은 날'이란 제목으로 그려낸 현진건의 역설적 기법을 가슴으로 느낄 정도가 됐으니, 세종대왕이 한글을 얼마나 쉽게 창제했는지가 판수의 일취월장에서 잘 드러난다.
 
한글을 사수하기 위한 절절한 투쟁기
 
 류정환(윤계상 분).

류정환(윤계상 분). ⓒ 더 램프

   
그렇게 한글에 늦바람이 든 판수가 말모이 편찬의 투사가 되어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 싸우는 장면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짠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다. 20일 저녁 서울 영등포의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서는, 유해진의 코믹 연기에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이 어느새 그의 슬픈 연기를 보며 눈물을 훌쩍이기도 했다.
 
스크린이나 TV 화면에 가족 사랑을 느끼게 할 만한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곧잘 눈물을 글썽인다. 그렇지 않으면 대단히 불쌍한 뭔가를 봤을 때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은 일제에 맞서 한글을 사수하기 위한 절절한 투쟁을 보면서도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
 
관객들이 유해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때는 그의 연기가 재미있어서지만, 그를 보고 눈물을 글썽일 때는 그의 연기가 슬퍼서라기보다는 한글에 대한 애정이 끓어올라서일 수도 있다. 한글 앞에서는 가족 사랑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못지않은 감정을 우리 한국인들은 느끼곤 한다.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영화 속 판수 같은 민중계급이 힘을 합쳐 지켜낸 게 바로 우리글·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조부모·증조부모·조부모·부모의 힘으로 지켜낸 게 바로 우리 언어이기 때문이다. <말모이>가 우리 언어 수호의 전사로 판수를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글·우리말을 지켜낸 진짜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조갑윤(김홍파 분).

조갑윤(김홍파 분). ⓒ 더 램프

   
한국 민중이 한글로 표기되는 우리말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그것이 190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민중의 언어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동학혁명·갑오경장·청일전쟁이 벌어진 1894년부터 양반 지배체제가 동요하면서 양반의 문자인 한자도 함께 흔들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주시경을 비롯한 한글 운동가들이 한글을 대중의 문자로 정비하는 노력을 전개하면서 한글이 민중의 문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훈민정음 반포 400년도 훨씬 지난 1900년 전후부터 세종대왕의 뜻이 실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1446년에 세종대왕이 반포할 당시만 해도 훈민정음은 소수의 문자였다. 백성을 위해 창제했다고는 하지만, 백성들이 사용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왕실과 더불어 지배층을 구성한 양반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을 아예 거부했다. 그래서 이것은 일부 여성들과 왕실이 사용하는 소수의 문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것이 1900년 전후부터 민중의 언어로 변신했다. 주시경을 비롯해, 이때부터 한글과 우리말을 지킨 이들은 이 문자를 민중의 감각에 맞게 정비하는 한편, 민중의 편에서 민중과 힘을 합쳐 이것을 지켜냈다.

한 국가의 지배 언어가 된 민중의 언어
 
 <말모이> 스틸컷.

<말모이> 스틸컷. ⓒ 더 램프

  
1900년 전후부터 벌어진 현상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한글로 표기되는 우리말이 그때부터 피지배층 민중계급의 언어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이 언어는 일제강점기에는 피지배민족의 언어가 됐다. 그랬던 것이 1945년 이후 한민족을 지배하는 언어로 올라섰다. 곰곰이 음미해보면 이 과정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한국 민중의 언어가 한국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와 사회의 관계를 살펴보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절감할 수 있다.
 
한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언어는 일반 민중의 언어가 아니라 지배층의 언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어가 강세를 보인 것은 그것이 지배민족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한자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그것이 양반 사대부의 문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일선 행정관청에서는 한자보다는 이두 문자가 민원사무 처리에 더 많이 쓰였다. 하지만, 이두는 지배층이 즐겨 사용하는 한자의 위상에 근접하지 못했다. 이두는 중간 계급의 문자로 남는 데 그쳤다.
 
세종이 만든 한글도 마찬가지였다. 왕명으로 만들었는데도 이 문자는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도 제1문자가 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반 지배층이 자신들의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학혁명과 갑오경장으로 양반 지배체제가 타격을 받고, 청나라의 청일전쟁 패배로 한민족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한자·한문이 급격히 영향력을 상실했다. 한자·한문은 양반의 언어인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을 전제로 하는 언어였기 때문에 그런 충격들을 견뎌낼 수 없었다.
 
이 틈을 비집고 한글 운동가들이 한글을 민중의 언어로 만들어놓았다. 조선왕조도 약해지고 양반 지배체제도 약해졌기에 이를 저지할 세력이 마땅찮았다. 덕분에 한글은 별다른 저지를 받지 않고 민중의 언어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선왕조 막판에 어느 정도나마 민중의 언어로 기반을 잡았기에, 우리글·우리말이 1910년 이후 35년간 일제 핍박을 받으면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다가 1945년 이후 한반도의 지배적 언어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민중의 언어가 한 국가의 지배적 언어가 되는 보기 드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한글로 표기되는 우리말이 본래 지배층의 언어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5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말모이>에서 김판수로 상징되는 민중계급이 한글을 지켜냈듯이, 우리글·우리말은 민중계급의 지지에 힘입어 지금 위치까지 오게 됐다. 판수의 한글 사랑을 보면서 한국인 누구나 눈물을 글썽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민중 자신의 힘으로 지켜낸 민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언어이기에 앞서 민중의 언어이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우리글·우리말에 유별난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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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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