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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여행 간 아이 셋이 숨지고 일곱이 의식을 잃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재앙이다. 경찰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참사가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보일러 연소가스 배기관이 어긋나면서 가스가 샜다고 한다. 가스경보기를 설치해 두었더라면, 이음 부위를 제대로 살피기만 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든다.

이런 일이 연거푸 일어나고 그때마다 허둥지둥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안전점검을 철저히 하고 매뉴얼이나 지침, 프로그램을 손보겠다고 말한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하지만 늘 아까운 목숨을 잃고 난 뒤에 벌이는 뒷북 소동이라서 낯뜨겁다.

고개 숙여야할 사람이 누구인가?

이번 일을 두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방치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지난 19일 오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강릉 펜션 사고 상황 점검회의' 자리에서 "우리 학교가 '설마'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것"이라며 "교육부는 수능 이후 한 달여간 마땅한 교육프로그램 없이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지 않은지를 전수 점검하겠다"고 말해 입길에 올랐다.

그뿐이 아니다. 시·도교육청 부교육감회의에서는 "교외체험학습에 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안전이 우려되는 개인체험학습은 학교장이 진행을 재고해 달라"고 말해 논란을 부추겼다. 이번 참사가 과연 학교의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인가.

초중등교육법 제22조에서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교육과정 운영을 소홀히 했다면 마땅히 나무라야 하고 책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어떤지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교육부는 우리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맞는 수업일수 조정과 학기제 운영, 교육과정 편성을 고민하고 바꿔가야 한다. 하지만 이번 참사를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 소홀로 책임을 몰아가서는 안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8조 5항은 다음과 같다.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교외체험학습을 허가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교외체험학습을 학칙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다.  

학생들은 현장체험학습 신청과 허가 과정에서 학교규칙을 지켰다. 학교장은 보호자의 동의와 학생의 희망으로 계획서를 받고 교외체험학습을 허가하였다. 그게 설마하고 위험에 방치한 것인가.

가끔 우리는 교육부 장관처럼 안전의 문제와 교육의 문제를 헛갈린다. 이번 참사는 보일러 배기관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아서 일어났다. 안전하지 않은 숙박시설 때문이다. 시설이나 설비 설치를 규정대로 했는지 살피는 일에 소홀히 한 데 있다.

매뉴얼과 규정을 재점검하겠다고 하니

말이 났으니 기존 학생 안전 메뉴얼과 규정도 재점검하겠다는 말도 한번 짚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교육부는 '교외체험학습'이라는 용어부터 제대로 정리하여 뜻매김하는 일부터 하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교외체험학습'이라고 나오고,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 지침> 별지 제8호에는 '현장(체험)학습'으로, <2018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58쪽)에는 '교외체험학습' 내용에 '현장체험학습'을 넣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에서 낸 매뉴얼은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이고, 학교 안팎에서는 '체험학습'이라는 말도 흔하게 써서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혼란은 '교외체험학습'이란 말에 있다. 말그대로 '교외'는 '학교 밖'을 말한다. 학교나 학급 단위로 하든 개인 신청으로 하든 대부분 체험학습은 학교 바깥에서 일어난다. 그렇다고 하면 굳이 '교외'를 쓸 까닭이 없다. '현장체험학습'도 우습다. 체험학습은 '현장'에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현장'은 군더더기말이다. 그러니 '교외'나 '현장'은 떼고 '체험학습'이라고 해도 너끈하다. 다만 학생 신청으로 하는 체험학습과 학교가 교육과정으로 하는 체험학습은 구분해야 한다면 '개인체험학습'과 '학교체험학습'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그리고 차량, 시설의 안전이나 위생, 화재 점검 같은 일은 사용이나 영업 허가를 내준 곳에서 책임지고 점검, 관리하게 해야 한다. 가령, 학교에서 버스를 빌려 수학여행을 간다고 치자. 지금 매뉴얼이나 시・도 교육청 지침으로는 버스 운전자의 음주 여부, 숙박이나 식당, 대피로, 이동 경로 따위를 교사들이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 현장체험학습 매뉴얼 '공통 운영 준수사항'을 보면, 허가・등록된 시설 이용, 인증 프로그램 이용, 사전답사 및 이동경로별 안전교육 실시를 의무로 해야 한다. 보기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학생들이 타고갈 차량 점검을 교사가 해야 한다고 해놓은 것을 톺아보자.

막 수학여행을 떠나야 할 때,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들이 다 왔는지 몸 아픈 아이는 없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매뉴얼에는 교사가 운전자의 음주 여부부터 재생타이어를 썼는지 타이어 닳은 정도나 갈라진 상태, 소화기와 비상탈출용 망치를 준비해 놓았는지, 구조 변경을 불법으로 했는지, 심지어 운전자 교육까지 점검하도록 해놓았다.

돌다리도 건너라 했는데 마땅히 살피고 또 살펴서 안 좋은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일을 책임지고 해야할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상식의 잣대로 생각해 보라. 차량이나 시설, 안전 전문가가 아닌 교사들이 체크리스트를 들고 다니면서 살핀다고 해서 과연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이미 숱하게 보아온 참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다. 교사는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고,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경찰서, 소방서가 저마다 맡은 일이 있고 그 일에 저마다 책임을 다해야한다.

차량이든 숙박시설이든 설치나 설비 기준에 맞는지 점검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면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때까지 영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수많은 목숨이 위험에 빠지는 참사를 우리는 이미 숱하게 보았다. 거기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어찌 뒷날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태그:#강릉 펜션 사고, #교외체험학습, #현장체험학습, #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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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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