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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주변지역 환경기초조사 10년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독극물 방류, 고엽제 매립, 기름 유출, 폐기물 불법 매립, 탄저균 반입 등 시민의 안전과 환경을 위협하는 일들이 지난 20년 동안 계속 사회에 알려졌다.

하지만 군사기지의 폐쇄적인 특성상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일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만약 기지 내부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면 기지 주변은 어떨까? 미군기지 안에서 발생하는 오염이 확산되어 기지 외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환경부는 미군기지 주변 환경오염에 대한 조사를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이하 공여구역특별법)은 5년마다 기지 주변 환경기초조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올해 녹색연합은 2008년 이후 지난 10년간의 환경기초조사보고서 전체를 입수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현재 반환되지 않고 미군에 공여 중인 53개 기지 중  24개 기지 주변에서 심각한 토양, 지하수 오염을 확인했다. 

  
환경부가 진행하는 미군기지 주변지역 환경기초조사 보고서
 환경부가 진행하는 미군기지 주변지역 환경기초조사 보고서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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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속과 발암물질 범벅이 된 흙과 지하수

그 오염은 어느 정도일까? 토양에서는 기름유출 사고에서 나타나는 TPH를 비롯하여 납,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다이옥신, PCBs와 같은 독성물질도 검출되었다. 지하수에서도 TPH, 벤젠, PCE, TCE, 납, 비소 등의 각종 유해물질이 기준을 초과하였다. 이 물질들은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매우 유해한 물질들이다.

가장 많은 종류의 토양오염 물질이 나타난 곳은 부평의 캠프 마켓이다. 기지 주변은 TPH, 구리, 납, 아연, 니켈, 다이옥신, PCBs 등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TPH는 기준치의 32.6배, 납은 29.2배에 달했다. 

가장 많은 지하수 오염물질이 확인된 곳은 경북 왜관의 캠프 캐롤이었다. 이곳은 2011년 고엽제 매립 의혹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TCE, PCE, VC, Pb, cis-1,2-DCE 등의 물질이 검출됐다.. TCE는 25.4배, PCE는 89.5배나 기준을 초과했다. 부산의 55보급창에서는 지하수에서 TPH가 489.3배, 비소가 3.7배나 기준을 넘어서는 고농도의 오염이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경기도 동두천시, 의왕시, 평택시, 의정부시, 포천시, 경북 김천시, 광주시, 대구시 등 전국 곳곳에 위치한 기지들이 이 땅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오염된 땅에서 농사 짓고

환경기초조사 보고서는 이런 오염이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몇가지 사례를 들자면 2012년 왜관 캠프 캐롤 보고서는 "일부 지역은 지하수를 생활용수 및 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용금지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2017년 원주 캠프 롱 보고서는 "현재 공여구역 주변으로 인근 지역 주민에 의한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오염예방 등의 관리가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2012년 대전 리치몬드에 대해서는 "조사지역 일대는 현재 상수원보호구역에 해당되어 '우선 관심지역'으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미군기지가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관련 대책이 시급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

 
다이옥신에 오염된 부평 캠프 마켓에 대한 미군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
 다이옥신에 오염된 부평 캠프 마켓에 대한 미군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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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 주변 지하수, 1군 발암물질 벤젠 1,170배 기준 초과

한편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용산기지의 상황은 어떨까? 용산미군기지는 환경부에서 실시하는 '환경기초조사'의 대상이 아니다. 그 대신, 서울시가 매년 용산기지 주변의 지하수 정화용역을 시행하고 있다.

2001년에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녹사평역 인근과 2006년 사고가 발생한 캠프 킴 주변지역이 조사 대상 지역이다.  이 두 지역에서는 벤젠, TPH, 에틸벤젠 등의 유해물질이 매년 지속하여 검출되고 있다.

녹색연합은 2018년의 조사결과를 서울시로부터 입수하였다. 조사결과는 놀라웠다. 녹사평역에서는 1군 발암물질인 벤젠이 무려 1,170배나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왔다. 2017년에 비해서 4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TPH도 기준치의 14배에 달했다. 캠프 킴 지역의 TPH는 293배에 달했다. 

 
녹사평역 부근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지하수를 모아놓은 집수정
 녹사평역 부근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지하수를 모아놓은 집수정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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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담장을 넘지 못하는 한국 법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오염원은 미군기지 내부에 있다. '환경기초조사보고서'들도 모두 "오염원이 기지 내부에 있으므로 기지내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법을 적용한다면 당연히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기지 내부를 조사하고, 오염을 일으킨 미군에 정화조치를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법은 미군기지 담벼락을 넘지 못한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문제다. SOFA합의의사록 제3조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무 구속력이 없는 '존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미국과 맺은 협정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두 나라의 협정에는 해당 국가의 법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보충협정 제53조, 미국-이탈리아 모델 실무협정 제17조)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 당국의 기지 내 출입이 보장되어 있다(독일보충협정 Re 제53조, 미국-이탈리아 모델 실무협정 제6조). 

하지만 한국의 경우 양국 간의 합의가 있으면 기지 내 출입과 조사가 가능하지만, 미군이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오염을 일으키는 원인에 접근조차 못하는 셈이다. 

 
오키나와현청의 기지대책과
 오키나와현청의 기지대책과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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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용산미군기지, 그리고 전국 곳곳에 위치한 미군기지들. 그 주변에는 많은 주민이 살고 있다. 건강과 환경을 위협하는 심각한 오염이 발생해도 그 원인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는 부조리는 바로잡혀야 한다.

1차적인 책임은 미군에 있지만 정부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법으로 정한 환경기초조사의 5년주기도 지키지 않는 것이 환경부의 현실이다. 소파 개정의 노력에 사실상 손놓고 있는 것도 현재 외교부의 모습이다.

또한 지자체도 주민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주일미군기지의 70%가 위치한 오키나와현의 경우 지자체 공무원 중 30명이나 되는 인력이 배치된 '기지대책과'가 있다. 여기서 기지로 인한 환경오염과 소음피해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가장 많은 오염사고가 발생하는 용산기지를 시내 한복판에 둔 서울시는 어떠한가. 또 주한미군기지의 80%가 위치한 경기도는 또 어떠한가. 지방정부의 책임자들이 미군에게 오염의 책임을 더욱 적극적으로 묻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SOFA가 걸림돌이 된다면,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그리고 지방의회가 나서서 중앙정부에 SOFA 개정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기지의 담장을 넘어 주민을 위협하는 미군기지의 오염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바로 시민의 건강권과 환경권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그:#미군기지, #환경기초조사, #토양오염, #지하수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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