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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100여 일 이상 분당 탄천에 나가 오리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작은 생명들이 전해준 감동적인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지난 5월 중순에 11마리의 새끼 청둥오리를 만난 후 삼일은 폭우가 계속 내렸다. 신기하게도 아침에는 그쳤다가 날이 저물면 새벽까지 들이붓곤 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라, 밤새 뒤척이다 날이 새면 탄천으로 나갔던 기억이 새롭다.

평소의 탄천은 아파트와 구름이 물에 비칠 정도로 잔잔히 흐르지만, 폭우 내린 뒤의 탄천은 황톳빛 물이 거친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 물 위의 새끼 오리들은 위태로워 보이기 그지없었지만, 유유히 거친 물을 오르내렸다. 오히려 거친 폭우를 뚫고 태어났기에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마리, 9마리... 사라지는 새끼들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어미의 구령에 줄 맞춰 폭우로 거칠어진 탄천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산책객들의 시선을 잡기에도 충분했다. '탄천은 매년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그들이 또 새 생명을 잉태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관심이 없어 쳐다보지 않았을 때도.

그렇지만 자연에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는다는 생각을 들게 한 사건이 종종 벌어졌다. 나의 탄천 산책은 보통 도로시(어미 오리)와 아이들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녀석들을 운 좋게 찾게 되면 새끼 오리들을 출석체크, 숫자를 세어보는 게 다음 순서다.
 
자, 출발!  도로시와 아이들이 은신처에서 탄천으로 나오고 있다.
▲ 자, 출발!  도로시와 아이들이 은신처에서 탄천으로 나오고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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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뭉쳐 있으면 머리를 세기 무척 힘들다. 놀이터에 풀어놓은 유치원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맞을 거다. 그래서 도로시가 아이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가 정확히 셀 기회다. 어미 꽁지깃을 따라 줄 맞춰 따라서 가니까. 그때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세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그렇게 첫날 세어본 아이들이 11마리. 이튿날도 11마리였다. 그런데 폭우 내린 마지막 날인 사흘째에는 아무리 세어도 10마리였다. 혹시 겹쳐 보여 그런가 싶어 아무리 확대를 해봐도 오리 부리는 10개였다.

새끼 오리들을 만나고 처음으로 자연이 무서워진 순간이었다. 그날 도로시는 아이들을 물가로 인도하진 않고 기슭 안쪽 물이 고인 웅덩이에 머물렀다. 물론 내가 관찰한 시점만 그랬겠지만, 왠지 계속 그랬을 것 같았다. 아직은 거칠게 흐르는 황톳빛 탄천은 새끼들에게 위험해 보였다.

그래도 남은 10마리라도 건강한 성체로 키워낸다면 훌륭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녀석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석체크를 했다.

그렇지만 2주 차에 1마리를 더 잃어 9마리가 됐다. 녀석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확실했다. 맹금류가 날아들었나? 네 다리 달린 포식자들이 물고 갔나? 아니면 그냥 길을 잃었나.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기에 상상만 할 수밖에 없었다.

동화의 내막
 
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의 1주차 모습이다.
▲ 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의 1주차 모습이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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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의 4주차 모습이다.
▲ 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의 4주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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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탄천의 넉넉한 환경과 지혜로운 어미의 헌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날이 갈수록 커가는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다. 몸이 커가니 행동도 달라지는 듯했다. 어느덧 품성이 보인다고 할까? 먹이 활동을 할 때 어미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물론 어미 곁에만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이동할 때도 어미와 떨어져서 이동하는 그룹이 생겨났다. 덕분에 먹이 활동 후 이동할 때 도로시가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예전에는 도로시가 움직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알아서 이동했는데 이즈음부터는 도로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겨우 모였다.
 
날갯짓 하는 새끼 오리들  솜털을 밀어내고 깃털이 올라 오는 게 보인다. 몸집은 많이 컸지만 날개가 자라려면 아직 멀었다.
▲ 날갯짓 하는 새끼 오리들  솜털을 밀어내고 깃털이 올라 오는 게 보인다. 몸집은 많이 컸지만 날개가 자라려면 아직 멀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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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5주 차의 어느 날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날 녀석들은 산책로에서 가까운 수초섬에 올라 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도로시가 아이들을 깨우더니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 녀석들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듯 날갯짓을 하는 사진을 보니 덩치가 어느덧 어미만 하다. 다만 날개깃이 덜 자란 모습만 다르다.

아이들은 도로시를 따라 물에 올라 수초를 뜯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섬에 남아있는 녀석이 있었다. 그 아이는 마치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서 있었고. 어미가 재촉하자 힘겹게 물로 내려섰다. 마치 잠투정하는 아이처럼.
 
깐돌이   몸이 불편한지 형제들은 물로 나섰으나 홀로 은신처에 남은 깐돌이의 모습
▲ 깐돌이   몸이 불편한지 형제들은 물로 나섰으나 홀로 은신처에 남은 깐돌이의 모습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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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돌이  어미의 재촉으로 물에 나선 깐돌이의 뒷덜미에 뜯긴 상처가 보인다.
▲ 깐돌이  어미의 재촉으로 물에 나선 깐돌이의 뒷덜미에 뜯긴 상처가 보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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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녀석의 모습이 이상했다. 나와의 거리가 약 5미터라 그 이상한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의 뒷덜미가 빨갰다. 쌍안경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도 본 모습은 더 끔찍했다. 털이 뽑혀 상처가 나 피가 흥건했던 것. 누군가에게 뜯긴 것이 확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살아서 무리와 함께 있다는 것.

녀석은 영 불편해 보였다. 먹지도 않고 무리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저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될 텐데."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녀석 곁에는 도로시가 계속 붙어 있었다. 녀석이 어미 곁으로 간 건지 어미가 새끼 옆으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공격 당한 모습에서 탄천이, 자연이 다시 보였다.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곳은 아니구나" 하는. 탄천에 오리들이 노니는 사진을 올리면 누군가 "동화 같아요"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동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도 녀석은 살아남았다. 그날 녀석은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그다음 날에는 기슭 가에서 수초를 뜯으려 점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날이 가며 다른 형제들의 활동성과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게 됐다. 비록 뒷덜미의 털은 빠진 채였지만 상처는 아물어 갔다.
 
깐돌이  사고가 난 며칠 후의 모습이다. 상처는 아물어 갔고 다른 형제들 못지 않게 활발하게 먹이 활동을 했다.
▲ 깐돌이  사고가 난 며칠 후의 모습이다. 상처는 아물어 갔고 다른 형제들 못지 않게 활발하게 먹이 활동을 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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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녀석은 눈에 띄었다. 뒷덜미가 시원하게 벗어졌으니 무리 안에 있어도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 그래서 이름을 붙여주었다. 깐돌이라는. 외모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 모습과 활발한 모습을 보니 그 이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름을 붙여주니 자연스럽게 녀석을 먼저 챙겨보게 됐다. 뒷덜미 상처가 아직 빨갈 즈음에는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했고. 혹시나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연고만 바르면 될 상처가 동물들에게는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 며칠 후 새끼 오리 중 한 마리가 더 사라졌다. 매일의 루틴처럼 아이들을 세어보았는데 8마리만 있던 것. 혹시 깐돌이가? 쌍안경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도로시 곁에 있는 새끼의 훤한 뒷덜미가 보였다.

당시 새끼 오리들은 어미만큼이나 덩치가 커져서 더는 사라지는 아이들이 없지 않을까 싶었을 때 생긴 사고였다. 그 며칠 전 깐돌이가 당한 사고만큼이나 충격이었다. 그래도 깐돌이를 비롯한 녀석들은 꿋꿋이 커갔다. 도로시는 여전히 헌신적이었고.

그렇게 8마리가 도로시 곁에 남았다. 이 아이들은 여름이 지나며 가을이 되며 하나둘씩 어미의 곁을 떠났다. 멀리 떠난 건 아니라 도로시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난 그 아이들이 하늘을 나는 첫 순간을 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날고 있었다. 그렇게 녀석들은 자라서 탄천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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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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