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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개조해 만든 정감있는 노점이다.
▲ 가야로 할머니카페 외관 트럭을 개조해 만든 정감있는 노점이다.
ⓒ 광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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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시 마동에서 광영동으로 넘어가는 이차선 도로인 가야로를 한참 달리다 보면 중간쯤 골프장이 보인다. 골프장 앞에 위치한 가야공원, 그곳에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할머니 카페'가 18년째 한자리를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 카페지기는 인심 좋고 인상  좋은 노령의 장기범(85), 김정순(79) 부부.

필자가 아이들과 함께 들를 때마다 할머니는 열심히 음식을 팔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그런 할머니 옆을 지켰다. "추운데 커피 줄까? 커피는 '둘둘둘'이 제 맛인거 알제?" 김정순 할머니는 타기 편한 커피믹스보다는 손맛이 들어간 커피, 설탕, 프리마를 스푼 수에 맞게 타먹는 옛 다방커피를 고집했다. 한잔에 천원, 그러나 그에 담긴 할머니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을 듯했다.

"할머니, 매일 문 여세요?"
"명절 이틀씩 빼고 18년 동안 하루도 문 닫은 날이 없어. 아! 나 다리 다쳤을 때 잠깐 문 닫았제. 먼저 간 아들 옆에 가는 날이 할머니 카페 문 닫는 날이여, 근디 영감님이 많이 아프셔서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몰것어."


이 카페를 운영해 손주 둘을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냈다고 하셨다. 예전 장사 잘 될 때는 하루에 20만 원 이상 번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그런지 통 오가는 사람이 없어 5만 원어치 팔기도 힘드시다고. 노령연금도 나오고 해서 큰 욕심 없이 두 분이서 매일 아침 건강하게 나와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야로 할머니 카페지기 김정순 할머니, 장기범 할아버지.
 가야로 할머니 카페지기 김정순 할머니, 장기범 할아버지.
ⓒ 광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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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들이 있어 좋다"면서 8년 전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직접 만들 어주고 간 간판과 메뉴판을 자랑하셨다. 이 노부부는 가야공원 관리인도 자처하고 있다. 18년째 가야공원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돌며 쓸고 쓰레기를 치운다고.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기 힘든 날이면 사람을 써서라도 가야공원 관리만큼은 하루도 빼놓지 않으셨다고 했다.

"노점상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염치 없이 판을 벌렸지, 그래도 내쫓지 않고 장사하게 해준 광양시에 고마워서, 우리가 뭐라도 할 게 없을까 싶어 시작한 공원 청소가 벌써 18년이여. 그래서 가야공원은 따로 관리자가 없어도 깨끗한 거여."

노부부는 광양과 이렇게 인연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그 어려운 시절 대학까지 졸업했다. 잘 나가던 집안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로 인해 점점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풍비박산이 됐다. 아들은 여기저기 쫓기다 급기야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됐고 노부부는 그런 아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들이 광양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길로 내려와 아들과 새 인생을 살아보자며 시작한게 바로 이 노점인 것이다. 앞으로 건강하게, 손주들 일만 잘 풀리면 여한이 없다는 노부부. 신문 인터뷰가 처음이라, 기자의 명함을 항상 지갑 속에 간직하고 다니시겠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 말씀도 없이 옅은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글・사진=광양시대 김보라 기자(bora1007@naver.com)


해당 기사는 전남 광양시의 지역 주간지인 광양시대(http://www.gytimes.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광양, #카페, #가야로,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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