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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100여 일 이상 분당 탄천에 나가 오리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작은 생명들이 전해준 감동적인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지난 5월 폭우 내린 다음 날에 만난 오리 가족은 청둥오리였다. 현장에서 얼핏 본 어미 오리가 갈색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탄천에 흔한 '흰뺨검둥오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을 본 새 박사 친구가 "청둥오리 암컷"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청둥오리는 초록 머리인데?" 하면서 새 도감을 찾아보았는데 청둥오리 암컷과 수컷은 색깔이 다르다고 했다.

청둥오리는 머리가 초록이라고 알려졌는데 수컷이 그렇다는 거고 암컷은 갈색이다. 오리 종 중 수컷의 색깔이 화려한 녀석들이 많다. 원앙이 그렇고 쇠오리가 그렇다. 그 화려한 청둥오리 수컷은 번식이 끝나면 암컷을 떠난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건 전적으로 암컷의 몫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독박 육아'를 하는 이 암컷의 잔상이 머리에 남곤 했다.

녀석들을 관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어미에게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다. '도로시'라는. 새끼들을 이끌고 탄천을 모험하는 모습에서 '오즈의 마법사'의 용감하고 현명한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자연의 한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주니 달리 보였다. 단순히 "정이 들었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그래서 마음을 더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도로시는 경험 많은 엄마였던 같다. 마침 도로시와 아이들을 관찰하는 동안 다른 새끼 오리 가족도 볼 수 있었는데 어떤 어미냐에 따라 그 새끼들의 생존율이 달라졌다.

올 6월 6일에 부화한 어떤 흰뺨검둥오리 가족의 경우 첫날에는 7마리의 새끼가 보였었는데, 그다음 날에는 3마리만 남아 있었다. 결국, 그 어미는 2마리의 새끼만 성체로 키워냈다. 아마도 그 어미의 능력으로는 2마리의 새끼만 돌보는 게 한계가 아니었을까?

그 녀석과 비교해보니 도로시는 노련한 엄마였던 것. 11마리로 시작해서 초기에 2마리를 잃었지만, 나머지 9마리를 성체에 가깝게 키웠다. 가을 즈음에는 일찍 독립한 새끼들을 제외한 6마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 나머지 아이들도 어미 근처를 맴도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성체가 되어가며 외모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면도 있어서 다른 개체일지도 모르지만.
 
청둥오리 가족들이 탄천을 건너고 있다.
▲ 도로시와 아이들 청둥오리 가족들이 탄천을 건너고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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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 가족들이 탄천을 건너고 있다.
▲ 도로시와 아이들 청둥오리 가족들이 탄천을 건너고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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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는 든든한 파수꾼이었다. 새끼 오리들의 삶은 이동하거나, 풀을 뜯거나, 덤불에 숨어 자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 모든 행동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순간 아니었을까? 그 한가운데에 새끼 오리들의 어미 도로시가 있었다.

탄천을 횡단할 때는 앞장서서 때론 옆에서 고개를 계속 돌리며 경계하는 도로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지도 못하고 헤엄도 빨리 못 치는 새끼들은 탄천 한가운데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다행히 이즈음 탄천 하늘에는 맹금류가 자주 나타나진 않았다. 아마도 까마귀와 까치가 텃세를 부린 탓이리라. 떼로 덤비는 녀석들이라.
 
청둥오리 가족의 어미인 도로시가 새끼들을 재우고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 도로시, 어미 청둥오리 청둥오리 가족의 어미인 도로시가 새끼들을 재우고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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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 양안의 덤불로 숨어 들어가더라도 도로시는 티가 났다. 고개를 쑥 올리고 사방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마치 수면 위로 올라온 잠망경처럼. 실제 녀석들이 숨어있으면 찾기 힘든데 가끔 올라오는 도로시의 머리를 운 좋게 발견한 날이 많았다.

도로시는 또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자연의 동물들은 어미를 모방하면서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운다. 단순히 따라하기도 하지만 어미가 어떤 상황에 내몰면서 극복하게도 하는 듯.

도로시는 어느 날 아이들을 물살이 빠른 여울로 이끌었다. 항상 잔잔한 물가로만 다닌 모습이었는데 의외였다. 마치 "이제는 빠른 물살도 이겨야 해"라는 듯. 그리고 그날 아이들은 여울 바닥의 돌에 낀 이끼를 뜯었다. 전날만 해도 수초의 이파리만 뜯었었는데. 아마 부리도 딱딱해진 모양이었다.

그날은 그 전날과 여러모로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특히 밤새 새끼 한 마리를 더 잃은 것으로 보였다. 여울에 코 박고 바닥을 훑는 새끼들의 등을 아무리 세어도 한 마리가 부족했던 것.
 
  새끼 오리들이 여울에서 바닥의 이끼를 뜯고 있다. 어미는 그들을 지키며 바라본다.
▲ 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이 여울에서 바닥의 이끼를 뜯고 있다. 어미는 그들을 지키며 바라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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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오리들이 여울에서 바닥의 이끼를 뜯고 있다. 어미는 그들을 지키며 바라본다.
▲ 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이 여울에서 바닥의 이끼를 뜯고 있다. 어미는 그들을 지키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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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끼를 뜯는 새끼들의 등을 바라보는 도로시의 등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고. 감상적인 마음에 "새끼를 잃어 나머지 아이들에게 특훈을 시키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여울에서의 특훈 못지않은 광경도 여러 번 보았다. 탄천에는 백현보나 미금보처럼 정식으로 이름 붙은 수중보는 아니지만, 곳곳에 낮은 보가 있다. 보통 성체 오리들은 날아서 보를 넘거나 점프해서 오른다. 그러나 새끼 오리들에게는 말 그대로 난관이다. 이런 곳을 도로시는 아이들을 이끌고 오르내렸다. 어쩌면 "저 위에 맛난 풀들이 있다구" 라며 아이들을 독려하지 않았을까?
 
새끼 오리들이 보를 오르고 있다.
▲ 도로시와 아이들 새끼 오리들이 보를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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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보를 오르는 모습을 봤을 땐 작은 녀석들이 기를 쓰고 오르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그런데 몸이 자랄수록 노련해지는 모습이 대견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도로시의 모습은 교관 그 자체였다.

"다리가 튼튼해야 나중에 잘 날 수 있다구!"

날개만 있다고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리의 힘도 중요하다. 물을 힘차게 박차고 날개를 펴서 상승기류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날아올라야 진정한 야생오리가 되는 것 아닐까?

이 오리 가족을 관찰하다 보니 도로시에게서 우리네 엄마와 같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며 깃털도 자란다. 갓 태어났을 때의 솜털을 깃이 오르며 밀어내는 것. 4주쯤부터 도로시는 아이들에게 깃털 청소를 철저하게 시켰다.

먹이 활동을 마치고 쉼터로 들어갈 때마다 깃을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도 따라 하게 했다. 물론 몸이 자라며 자아가 자라듯이 새끼 중 어미 말을 안 듣는 녀석도 생기게 마련. 그럴 때마다 도로시는 그 아이를 단호히 나무랐다. "과아!" 소리도 지르며 때론 날개로 털썩. 나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곤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게 한다. 물론 도로시는 마지막 아이가 잠들 때까지 새끼들을 지켜본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관찰 4주 차 지난 어느 날, 잠시 한눈을 파니 도로시가 안 보였다. 아이들만 두고 사라진 것. 멀리 날아가는 오리가 보였는데 "설마?" 했다.

약 10여 분 후 도로시는 어디선가에서 날아와 물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곤 외출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깃털을 고르더니 잠든 아이들 옆으로 가서 시침 떼듯 함께 잤다. 그 후로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미 오리가 외출을 다녀온 후 깃을 고르고 있다. 마치 외출 흔적을 지우려는 듯. 새끼 오리들은 섬 안쪽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 도로시와 아이들  어미 오리가 외출을 다녀온 후 깃을 고르고 있다. 마치 외출 흔적을 지우려는 듯. 새끼 오리들은 섬 안쪽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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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니 마실 다니는 거였다. 기슭이나 방죽 깊숙한 곳에 난 신선한 풀을 뜯으며 때론 다른 오리들과도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우리네 엄마가 마실을 다니는 것처럼.

이렇듯 청둥오리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투영해 보기도 했다. 특히 어미인 도로시의 모습에서 우리네 엄마 못지않은 모성애를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매 순간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탄천은 자연이었다. 그것도 냉엄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탄천에서의 1년, #청둥오리 가족, #새끼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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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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