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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건전시민운동 단체대표들로부터 수범사례 발표와 건의를 듣고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기위한 강력한 실천방안을 천명했다.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건전시민운동 단체대표들로부터 수범사례 발표와 건의를 듣고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기위한 강력한 실천방안을 천명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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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맘 때, 노태우 대통령이 "더 이상 남한에는 핵무기가 없다"라는 선언을 발표했다. 1991년 12월 18일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선언에서 노 대통령은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이 시각, 우리나라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남한 비핵화는 주한미군 비핵화를 의미하므로, 노태우의 '남한 핵 부재' 선언은 미국 정부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배후에서 선언을 추동한 의도는 '남한에는 더 이상 핵이 없으므로 북한도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선언은 미국이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취약한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토대 위에서 27년이 지난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다. 모순적이고 취약한 구조 위에 서 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의 노력도 얼마든지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 선언의 한계

노태우 선언으로 남한은 공식적으로 핵이 없는 나라가 됐다. 미국 정부가 이 발언에 힘을 실어준 결과였다. 미국 시각으로 지난 11월 30일 세상을 떠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아버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 선언 직후에 "논란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 선언을 사실상 진실로 인정해줬다. 아버지 부시의 말은 "한국 주장에 이의가 없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노태우 선언은 남한에 남한 소유의 핵무기 없다는 게 아니라 남한에 미국 소유의 핵무기가 없다는 확인 선언이었다. 이는 "남한에서 주한미군 소유의 전술 핵무기(국지전에 사용되는 핵무기)를 철수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그해 9월 27일자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부시는 마치 남의 일인 양 "논란을 벌일 생각이 없다"는 말로 노태우 선언에 힘을 실어줬다. 그해 12월 20일자 <동아일보>는 '한국 핵 부재 선언, 부시 사실상 인정'이란 제하에 "논란을 벌일 생각이 없다"는 부시의 발언이 나온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한국·일본·호주·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 순방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현 시점에서 한반도에 핵무기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은 핵무기의 존재 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확인을 회피했으나 '나의 지난 9월 전술핵 철수 발표가 지금도 변함없을 뿐 아니라 노태우 대통령의 12·18 선언에 대해 논란을 벌일 생각이 없고 노 대통령 성명은 성명 그대로다'고 말했다."
 
남한 정부는 주한미군 핵무기에 대한 소유권이 없으므로 이것을 철거할 입장이 아니었다. 당시의 남한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미 의존적이었으므로, 남한 정부가 주한미군 핵무기 철거를 검증할 입장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9월 27일자 부시 선언을 뒷받침하는 방편으로 12월 18일자 노태우 선언을 유도한 뒤, '논란을 벌일 생각이 없다'는 부시의 발언으로 노태우 선언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미국은 그런 허술한 방식으로 남한 비핵화의 완성을 주장했다.

아버지 부시가 그런 선언들을 도출한 것은 북한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자국과 북한의 관계를 '핵 있는 나라' 대 '핵 없는 나라' 관계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런 미국의 의도는 부시 선언 3개월 보름 전에 나온 미국 언론 보도에서도 드러난다. 1991년 6월 7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을 수용하고 핵을 포기시키도록 하기 위해서 미국 측은 한국 배치 핵무기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태우 정권은 주한미군 핵무기의 철수를 반대했다. 노 정권은 한반도 비핵화란 명제를 불온 선전마냥 적대시했다. 그런 노 정권이 '핵 없다'는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남한에 핵이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비핵화를 추진할 명분을 얻어야 했다. 미국의 강압으로 인해 노 정권의 입장이 바뀐 것에 관해, 김창수 평화연구소 연구원은 1991년 12월호 월간 <말>에 기고한 '[정세분석] 노태우의 비핵화 선언과 한반도의 정치·군사질서 전망'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남한 정부가 이 시점에서 비핵화 선언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태우 대통령의 비핵화 선언은 부시 선언의 한국판에 다름아니다. 부시 선언의 한반도 적용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 독점을 강화하는 한국판 조치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불과 엊그제까지 비핵운동을 불온시하고 남북 군사력 불균형을 이유로 암묵적으로나마 주한미군의 핵무기 배치를 정당화해온 것에 비한다면, 노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엄쳥난 변화다."
  
미국, 허술한 방식으로 남한 비핵화 완성 주장
 
 아버지 부시 대통령.
 아버지 부시 대통령.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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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정권이 마지 못해 선언한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남한 핵 부재 선언'은 남한의 이해관계가 아닌 미국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것이었다. 또 부시와 노태우의 선언은 검증 절차를 결여한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선언은 세계 비핵화를 추진하는 미국의 일처리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방식의 한계를 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금년에 풍계리 핵시설을 폐쇄한 뒤에도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1991년에 미국은 노태우 선언에 대한 후속 조치로 풍계리 폐쇄에 준하는 정도의 행보도 취하지 않았다. 노태우가 '핵 없다'고 말하고 아버지 부시가 '논란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남한 비핵화는 사실상 종결됐다.

이는 상대방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데 반해, 자국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터무니없이 관대한 미국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최강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란 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중 잣대 문제 외에도, 1991년에 미국이 보여준 문제점은 남한 안보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한 국민들이 핵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남한이 북한 핵무기뿐 아니라 여타 국가들의 핵무기로부터도 안전해야 한다. 남한에서 미군 핵무기를 없애는 수준에서 그칠 게 아니라, 어느 나라의 핵무기도 한국에 배치되거나 한국을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외국 핵무기가 남한에 언제든 배치될 수 있다면 북한도 걸코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미국 핵무기가 언제든 남한에 수송될 가능성이 있다면, 북한 역시 미국을 믿고 핵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남한 비핵화 과정에서 이런 문제점을 도외시했다.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 핵무기를 철수하는 방법으로 남한 비핵화를 추구했지만, 자국 핵무기를 언제든 북한에 떨어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이는 남한에 핵을 떨어트릴 수 있는 가능성을 유보해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1991년 10월 29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전북 군산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투기 탑재용 핵폭탄 60발을 철수하더라도 괌섬 앤더슨 기지에 있는 B-52 전략폭격기(핵심 시설 폭격용)로 한반도를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남한에 언제라도 수송할 수 있고 북한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위치로 남한 핵무기를 빼내는 것이 미국이 생각하는 남한 비핵화였던 것이다. 노태우의 핵 부재 선언은 그런 위험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위의 <말> 기사는 노태우 선언에 담긴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주한미군 핵무기의 반입·반출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핵을 보유한 비행기나 선박의 출입을 금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선언의 실효성 또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론
 
 미국 항공모함. 왼쪽이 미국의 존 C. 스테니스 항공모함. 오른쪽은 영국의 일러스트리우스 항공모함.
 미국 항공모함. 왼쪽이 미국의 존 C. 스테니스 항공모함. 오른쪽은 영국의 일러스트리우스 항공모함.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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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투기나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에 언제라도 투입할 수 있었으므로, 핵 부재 선언 이후에도 미국은 언제든지 남한을 핵무장시킬 수 있었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면서, 남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미군 핵무기 철거 정도로 상대방을 만족시키고자 했으니, 미국이 북한에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불신감 때문에 북한이 내건 제안이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론이다. 핵을 탑재한 전투기나 항공모함이 한반도 주변에 나타나지도 못하게 하고 한반도가 제3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도록 하는 핵의 무풍지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런 비핵지대는 북한의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인류 33%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낸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이 강지혜·고정선과 함께 쓴 보고서 '북한 핵무기의 위협과 대처 방안: 핵억지, 선제공격, 비핵화, 비핵지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거주 지역'이란 표현이 눈길을 끄는 보고서다.
 
"현재까지 인간거주 지역 내에 5개의 비핵지대조약이 체결, 발효되어 총 116개국, 전 세계 인구의 33%가 비핵지대 내에 있음. 지역으로 보면 중남미·남태평양·동남아·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비핵지대조약이 발효되고 있음. 비록 비핵지대는 아니지만 북미나 EU 지역은 분쟁이 없는 안정적인 지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핵지대에 속해 있거나 비핵지대는 아니더라도 분쟁이 없는 안정적인 지역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음." - 제주평화연구원이 2013년에 발행한 <JPI 정책포럼> 2013-6, 7, 8호에 수록.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북한 비핵화 및 북한 비핵지대화였다. 북한이 자체 핵무기를 없앤다 해도 북한이 외국 핵무기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의도하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나라 핵무기가 북한 영향권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이다. 반면에, 노태우 정권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것은 남한 비핵화뿐이다. 남한 비핵지대화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이 같은 미국의 접근법은 남한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상충된다. 남한 국민들은 한반도가 핵무기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되기를 원한다. 남한 국민들이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은 단지 북한이 핵을 갖는 게 무섭거나 질투나서라기보다는, 한반도가 핵전쟁에 휘말리는 게 두려워서다.

만약 '북한 비핵화(○), 북한 비핵지대화(○)/ 남한 비핵화(○), 남한 비핵지대화(×)'라는 방식으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계속 나선다면, 북한은 미국을 무한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한 비핵화에도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 진행되는 남·북·미 3자의 한반도 평화협상이 앞으로도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남한 국민들이 일희일비하는 양상이 계속 되풀이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전망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남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을 무한정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상위에 미일동맹을 두고 있다. 미일동맹에 손상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한미동맹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계속 추진하게 되면,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도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일본을 이끄는 그들 집단이 한국에 대해 편치 않는 마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간에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미국은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일본을 편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남한을 핵무기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하는 데는 관심도 없이 '북한 비핵화+북한 비핵지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접근법은 한반도 평화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할 뿐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시원하게 추진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이런 조건에서 한·일 간에 분쟁이라도 발생하면 남한 국민들의 안전까지 위태해질 수 있다.

이런 불안한 구도를 만든 것 중 하나가 1991년 12월 18일 노태우의 핵 부재 선언이다. 이 선언으로 증폭된 모순과 취약성을 해소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인간거주 지역' 전체를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이지만, 당장에는 한반도 전체를 핵의 무풍지대,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전체를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남북한을 위태롭게 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가 비핵지대가 되려면 북한 핵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핵무기까지도 한반도를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계 정상급 강대국들의 핵 전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세계사를 새로 쓰는 대형 사건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1991년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말 몇 마디로 해결하려 했으니, 그런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한국의 안보가 얼마나 위태한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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