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업무 중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업무 중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 전국공공운수노조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는 운송설비 점검을 하던 김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그가 태안화력발전소의 협력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되어 벌어진 참사였다.
 
일부 언론들은 김씨의 죽음을 협력업체 직원의 죽음이라 규정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공약을 빨리 이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김씨의 죽음을 현 정부 비판에 소비할 뿐, 정작 그 사고 이면에 감춰져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왜 비정규직이 이렇게 일상화 되었는지, 같은 노동을 하고도 다른 임금을 받는 작금의 상황이 정상인지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보도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언론들의 태도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2018년 대한민국 사회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규범이며, 20년 넘게 지속되어온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20대 청년의 죽음이 안타깝다지만, 그래서 또 다시 그 문제에 대해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것이 과연 사회 전체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결국 지난하고 답이 없는 문제 아닐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영화는 현재 우리가 부당하고 불합리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경제 시스템을 겨냥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과 출발을 알아야 하는 만큼, 영화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시작이, 이 체제의 기원이 바로 1997년 IMF 사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건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배후가 누구였는지에 주목한다.
 
떨어지는 리얼리티 그러나...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 영화사 집

  
영화는 등장인물을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한다. IMF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분)과 하루라도 빨리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 사회의 시스템을 뿌리부터 바꾸려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 IMF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계급상승의 기회로 삼으려는 윤정학(유아인 분)과 아무 것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평범한 가장 갑수(허준호 분).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각 계층별로 국가경제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지만, 도식적인 역할 구분은 영화의 전체적인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인물들의 전형성을 과도하게 강조한 결과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들이 누락되고, 현실에서의 복잡다단한 관계들이 단조롭게 묘사되었다.
 
감독은 이를 의식한 듯 마지막에 한시현과 갑수의 관계를 드러내고, 윤정학이 구매한 아파트가 갑수의 협력사 사장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암시하면서 나름 반전을 꾀하지만 오히려 이는 관객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굳이 등장인물을 저렇게 억지로 엮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꼭 한 번 봐야 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작품성과 상관없이 영화는 처음으로 IMF를 본격적인 다룬 영화이며,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부조리의 기원을 다시금 고민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IMF의 이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IMF를 막으려던 사람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IMF를 막으려던 사람들 ⓒ 영화사 집

 
영화는 1997년 금융 위기 당시 우리가 선택한 IMF 구제금융이 유일한 대안이 아닐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한시현이 주장하듯이 우방국들로부터의 단기 차관도 가능했으며, 모라토리엄 선언을 통한 협상력 강화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인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밀실에서 아주 치욕적인 모습으로 IMF가 요구했던 조건들을 그대로 수용했고, 경제와 관련된 국가 주권을 많은 부분 침해당하고 만다. 내외적으로 한국의 IMF 구제금융을 주장했던 이들이 엄연히 존재한 덕분이다.
 
영화는 바로 그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 시스템 자체를 IMF를 통해 가진 자에게 유리하도록 아예 새로 만들고자 했던 일부 관료들과 재벌, 그리고 IMF를 계기로 한국의 시장을 그들의 입맛대로 개방하고자 했던 미국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이를 막고자 하는 세력들도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대선 때문에 어지러웠으며, 정부는 과거 군사정부 때처럼 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IMF를 반겼던 관료와 재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IMF를 반겼던 관료와 재벌 ⓒ 영화사 집

 
그 결과 대한민국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었다.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꽤 시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를 그려내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동시에 뼈아픈 묘사이기도 했다.
 
나 빼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경쟁만이 우선인 각자도생의 사회, 직원을 가족으로 여기기보다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여 오로지 자본을 축적하려는 사회, 실업이 일상이 되고 높은 자살률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
 
우리는 현대사를 구분하면서 정치적 관점으로 정권을 위주로 시대를 규정하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류일 수 있다. 경제적 관점으로 우리 사회는 IMF 사태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뉘며, 이는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쉽게 달라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IMF사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의 기원으로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정확하게 응시하기 위해서는 1997년 당시의 결정을 내린 주체와 그 의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IMF 세대들의 등장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누구나 중산층을 꿈꾸던 1997년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누구나 중산층을 꿈꾸던 1997년 ⓒ 영화사 집

 
흔히들 세대 간의 갈등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들 한다. 실제로 사회에 무슨 이슈가 생기거나 투표를 하면 세대 간의 주장은 확연하게 갈리기 마련이다. 특히 50~60대 이상과 그 이하 세대는 물과 기름 같아 보인다.
 
그러나 40대 이하 세대 간 차이 역시 만만치 않다. 지금의 40~50대는 20~30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IMF를 유년, 청소년 때 겪은 세대와 성인이 되어 겪은 세대의 사고방식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꿈이 과학자와 대통령이었던 세대와 공무원과 건물주가 꿈이었던 세대. 전국 1등이 서울대 물리학과를 지원하던 세대와 대학과 상관없이 의대 가는 것만이 최고인 세대. 과연 그들이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
 
우리가 IMF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이해를 위해서,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서 우리는 IMF 사태를 직시해야 하며,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밖에 돌아갈 수 없는지, 이 시스템의 정점에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챙기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IMF를 공부해야 한다.
 
촛불을 들어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모든 이에게 권하는 까닭이다.
국가부도의날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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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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