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년째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수시로 원서를 넣고 입사시험을 보고 운 좋게 면접을 보고 나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아들을 보며 속이 탑니다. 지켜보는 사람보다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넣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하는 본인 속은 오죽할까 싶어 채근하지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지요.

제 아이는 '인 서울' 4년대 대학에서 비교적 취업하기 쉽다는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성적도 4.1 이상으로 우수하고 2년간 외부 장학금을 받았고 국가 인증 자격증도 땄습니다. 그런데도 쉽사리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더군요.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한 학기 교육을 받아 프로젝트 과제물을 내면서부터 지금까지 취업을 위해 공부하며 입사 지원서를 넣고 있는 중입니다.

아들의 험난한 취업길

얼마 전 아들은 "대기업에서 위탁받은 IT교육 과정이 있는데 서류와 시험은 통과했고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청년들에게 1년간 IT교육을 시켜주면서 월 100만원의 교육비를 지급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면접 복장과 신발 규정이 있다고 했어요. 정장이나 정장에 준하는 재킷이었는데 와이셔츠, 넥타이는 매지 않아도 된다고요. 재킷이 없어서 할부로 재킷을 구입했습니다. 신발도 운동화는 안 되고 신사화나 정장에 무난한 캐주얼화를 신어야 한다더군요.

아들은 교육생으로 면접을 보러 가서야 전공자는 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했다고 합니다. 면접관의 첫 마디는 "다 알잖아요? 여기 왜 왔어요? 더 배울 게 없을 텐데..."라고 했다는 겁니다. 다른 청년들에게는 풀었던 문제를 설명해 보라는 식의 질문을 했는데 아들에게는 그런 질문은 하지도 않더라는군요.

서류를 넣을 때는 분명 '전공 무관'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말이지요. 아들은 면접 갔다가 상처만 받고 돌아온 채 탈락되었습니다. 3개월로 끊은 재킷 값은 고스란히 어미인 제 빚으로 남았습니다.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나라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를 기리기 위한 2차 촛불 추모제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를 기리기 위한 2차 촛불 추모제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수십 군데 입사 서류를 넣다 한국발전기술에 소속된,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전원으로 일한 지 3개월 만에 희생된 고 김용균(24)님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저도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고 김용군님 촛불추모제'에 갔습니다. 이날 발언을 한 젊은이들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정규직화를 약속한 뒤 무조건 자회사 소속을 강요하는 업체,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에게 검은색 정장을 입으라고 해 한밤중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례까지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모든 현실이 내 아들을 비롯한 대부분 청년들의 일자리라는 사실도요.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업무 중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업무 중 사망한 김용균씨의 유품.
ⓒ 전국공공운수노조

관련사진보기

 
2년 전 구의역에서 19세의 앳된 청년이 희생되었을 때 그곳에 놓여 있던 컵라면이 그리도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고 김용균님 유품에서도 어김없이 컵라면이 나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하루에 13시간씩 일을 부려먹으면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컵라면과 과자로 때워야 하는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일상이 이 나라 노동의 현주소입니다. 석탄 가루 속에서 석탄가루 섞인 과자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다니요. 그건 노동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파는 것이지요. 피와 살과 정신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서요.

수시로 내려오는 원청의 지시로 휴게시간과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끼니때 마다 라면을 끓여 먹였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가슴 아팠습니다. 그 석탄재가 날아다니는 곳에서 석탄 가루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겠지요. 유품으로 남긴 수첩, 물휴지, 심지어 동전에조차 석탄가루가 묻어 있었으니까요. 
 
 더 이상은 김용균님과 같은 희생이 일어나지 않기를
▲ 정부종합청사 앞 촛불  더 이상은 김용균님과 같은 희생이 일어나지 않기를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고공 행진 중인 청년실업률은 1999년 이후 가장 높아 10.5%라고 합니다. 체감 실업률은 23%로 심각한 수준이고요. 일자리 대부분은 목숨을 내놓고 기계처럼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비정규직이고 말이지요.

청년들이 일터에서 살해 당하는 나라,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한해 산재 사망자가 1777명이랍니다. 매일 일터에서 하루에 5명 정도가 죽어간다는 것이지요. 이게 나라입니까? 

아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는 IT계통이면 뭐합니까? 얼마 전 번듯한 IT 기업에서도 과로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죽음으로 내몰릴 만큼 일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측은 고인이 평소 지병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요. 성난 동료들이 나서서 청와대 청원을 넣어 놓은 상태입니다.
  
외주화로 청년들이 살해되는 이 나라는 바뀌어야 합니다. 미친 자본의 질주에 제동을 걸지 않는 한, 어디서 일을 하든지 노동자들의 안전한 삶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어 주십시오. 눈가리고 아웅하기 식 청년실업 정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정책을 펼치십시오. 더 이상 청년들을 절망의 벼랑으로 내몰지 마십시오. 청년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의 미래나 희망은 없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그:#고 김용균 추모, #외주화금지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