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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용두동에 있는 건강관리협회를 방문했다. 12월이 검진 마지막 달이라 그런지 작년 11월에 왔을 때보단 사람이 많았다. 대기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검진이 끝나고 급한 일정이 있는지 직원분께 검진이 얼마나 걸리는지 재차 확인하며 핸드폰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해도 이곳에 왔기에 다음 일정은 넉넉히 잡았다. 사람이 많아 검진이 늦어지게 되면 2시간이 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관리협회 내부
▲ 건광관리협회 건강관리협회 내부
ⓒ 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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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은 층을 옮겨 다니며 받기 때문에 뭔가 게임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몸에 대해 알게 되는 유일한 시간이라 꽤나 재밌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니까 내가 작년보단 키가 더 컸는지 살이 쪘는지 궁금하지, 다른 사람들은 내가 키가 줄든 몸무게가 늘든 별로 궁금하지도 재밌지도 않을 것이다. 네일샵을 가고 미용실에 가는 모든 행위들이 즐거운 이유 또한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체혈 상황
▲ 체혈 체혈 상황
ⓒ 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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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진을 할 땐 사람이 많아 각 검진마다 5-10분 정도 대기시간이 있다. 이런 기다림 혹은 지루한 타이밍엔 보통 노래를 듣거나 유투브를 보는데 이날은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멀뚱멀뚱 앞만 보아야 했다. 

채혈을 하고 나서 순번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핸드폰을 하는 사람, 검진받는 딸과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 등등 핸드폰을 볼 때와 다르게 여러 모습들이 보였다. 그러다 한 여자분이 눈에 띄었다. 그분은 유독 긴장하고 계셨는데, 말하는 것을 유심히 들어보니 간호사분께 주사를 안아프게 놔달라며 여러번 부탁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또한 어린 시절 주사 맞는 것을 정말 무서워했다. 당시 어머니는 주사를 맞으면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손가락 약속까지 하며 어린 나를 달랬고, 나는 계속 버티다 간호사 언니에게 꼭 안 아프게 놓아달라며 여러차례 부탁을 하고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27살이 된 지금은 주사를 맞는 것이 그 당시만큼 치를 떠는 공포를 주진 않는다. 왜일까? 주사는 그 당시와 똑같이 아픈데, 왜 나는 주사가 덜 무서워진 걸까? 검진을 기다리는 동안 고민해보았다.

첫째, 맞을 만큼 맞았다.

27살이 되는 시점까지 내가 주사를 맞은 건 적어도 50번은 넘을 것이다. 1년에 1~2번은 감기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다. 그러다 보니 매번 주사는 겁나지만 그 고통은 예측이 가능해졌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타는 것이 덜 무서워진 것도 놀이공원을 많이 가서 죽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둘째, 주사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서 주사 맞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인 줄 알았던 5살 꼬마는 이제 주사보다 큰 고통이 세상에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는 사람의 죽음, 배신, 사기 등등은 어린 시절 부모라는 바람막이 안에서는 몰랐던 경험이었다. 그 경험들의 고통은 확실히 주사보다 100배는 아팠다.

고통에 대한 역치(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높아진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사람이 고통에 대한 역치가 높아지면 행복에 대한 역치도 올라가게 되는데, 행복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웃음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풍이 굴러가는 것에도 웃던 여고생 시절이 없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 과정을 거쳐야만 난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도 얼굴을 찡그리고 감정을 모두 보여주는 미성숙한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며 다른 사람마음까지 이해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려면 고통에 대한 역치가 올라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

태그:#건강검진, #주사, #역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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