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에는 '모든 선수의 체급이 같다'는 가정 하에 누가 가장 강할지 가상으로 순위를 메기는 '파운드 포 파운드(P4P)' 랭킹이 있다. 사실 P4P랭킹은 순위에 포함된 선수들이 실제로 맞붙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격투팬들이 언제나 많은 관심을 갖는 랭킹 중 하나다. 현재는 헤비급과 라이트 헤비급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다니엘 코미어가 P4P랭킹 1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UFC에서 가장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파이터는 단연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다. P4P 2위에 올라 있는 하빕은 종합격투기 27전 전승이라는 전적이 말해주듯 동급 최강의 파워와 압도적인 레슬링을 바탕으로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펼친다. 아무리 강한 상대도 하빕을 만나면 '순한 양'으로 변해 옥타곤 바닥을 청소하기 바쁘다.
 
 UFC 선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UFC 선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 EPA/연합뉴스

 
하빕은 격투기 데뷔 후 그 흔한 스플릿 디시전(2-1 판정승)조차 한 번 없었을 정도로 무결점의 전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하빕도 KO를 경계하며 상당히 조심스런 경기를 펼친 적이 있었다. 지난 4월에 열렸던 알 아이아퀸타와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이었다. 그리고 당시 하빕을 긴장시켰던 아이아퀸타는 오는 16일(이하 한국시각) 밀워키에서 열리는UFC on Fox 31대회를 통해 생애 첫 메인이벤트 경기에 출전한다(대타 출전 제외).

거침 없는 성격 때문에 많은 기회 얻지 못한 아이아퀸타

학창 시절 킥복싱과 레슬링을 배우고 아마추어 종합격투기에서 14전 전승의 기록을 쌓은 아이아퀸타는 2009년 뉴저지의 '링 오브 컴뱃'을 통해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격투기 데뷔 후 6번째 경기 만에 링 오브 컴뱃 라이트급 챔피언에 오른 아이아퀸타는 2개월 후 팻 아우딘우드와의 1차 방어전에서 1라운드 암바로 패하며 곧바로 타이틀을 잃었다.

2012년 UFC의 선수 육성 프로그램 TUF의 15번째 시즌에 참가해 유라이아 페이버 코치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은 아이아퀸타는 라이트급 토너먼트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만난 마이클 키에사에게 1라운드 서브미션 패배를 당하며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상대적으로 서브미션 방어에 취약한 아이아퀸타의 약점은 이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12월 1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UFC FIGHT NIGHT Milwaukee(UFC on FOX 31)에서 라이트급 랭커 케빈 리(왼쪽)와 알 아이아퀸타(오른쪽)가 약 5년 만에 다시 맞붙는다.

12월 1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UFC FIGHT NIGHT Milwaukee(UFC on FOX 31)에서 라이트급 랭커 케빈 리(왼쪽)와 알 아이아퀸타(오른쪽)가 약 5년 만에 다시 맞붙는다. ⓒ 알 아이아퀸타 SNS 갈무리

 
하지만 UFC와 정식 계약한 아이아퀸타는 내리 3연승을 달리며 라이트급의 젊은 신예로 떠올랐다. 아이아퀸타의 3연승 제물 중에는 16일 아이아퀸타와 재격돌할 케빈 리도 있었다(당시 리는 아이아퀸타와의 경기가 옥타곤 데뷔전이었다). 아이아퀸타는 2014년5월 미치 클라크에게 2라운드 서브미션으로 패하며 연승이 중단됐지만 연승마감이 아이아퀸타의 상승세를 막진 못했다.

아이아퀸타는 4개월 후 복귀해 호드리고 댐과 로스 피어슨, 조 로존을 3연속 KO로 제압하며 다시 연승행진에 시동을 걸었다. 2015년4월 호르헤 마스비달을 상대한 아이아퀸타는 접전 끝에 2-1 판정으로 승리하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자신에게 야유하는 관중들을 향해 욕설을 하며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2년 동안 옥타곤에 오르지 못했다.

2017년4월 아이아퀸타는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경험했던 디에고 산체스를 98초 만에 KO로 제압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당시 라이트급 타이틀 구도는 코너 맥그리거와 하빕, 토니 퍼거슨이 확실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10위 안팎을 오가던 아이아퀸타가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년 4월 아이아퀸타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올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빕과의 타이틀전 패배 후 8개월, 케빈 리 상대로 건재 보여줄까

지난 4월 UFC 223의 메인이벤트는 하빕과 퍼거슨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이었다(챔피언이었던 맥그리거는 연이은 타이틀전 거부로 타이틀 박탈이 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퍼거슨이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고 대체 선수였던 페더급 챔피언 맥스 할러웨이마저 주 체육위원회의 승인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UFC에서는 폴 펠더와 싸울 예정이었던 라이트급 11위 아이아퀸타를 급하게 대체 선수로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아이아퀸타는 하빕과의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얻는 데 실패했다. 판정 점수 역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43-50, 44-50, 44-50) 정도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패배였다. 하지만 챔피언을 눈 앞에 둔 하빕은 아이아퀸타의 한 방을 경계해 평소보다 조심스런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이아퀸타는 역대 하빕을 가장 고생시킨 파이터가 됐다(아이아퀸타는 적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최후까지 버텨냈다).

아이아퀸타는 하빕에게 패하며 5연승 행진이 마감됐음에도 '하빕을 유일하게 고생시킨 파이터'로 주가가 더욱 올라갔다. 하빕과 싸우기 전 라이트급 랭킹 11위였던 아이아퀸타가 경기에서 패했음에도 랭킹이 8위까지 올라간 비결이다. 그리고 아이아퀸타는 오는 16일 UFC on Fox 31 대회의 메인 이벤트에서 라이트급 랭킹 4위 케빈 리를 상대로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

지난 2014년2월 아이아퀸타에게 판정으로 패했던 리는 이후 10경기에서 9승1패를 기록하며 단숨에 라이트급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비록 작년10월 퍼거슨과의 잠정 타이틀전에서 패했지만 지난 4월 UFN128 대회에서 에드소 바르보자를 KO로 꺾고 건재를 과시했다. 리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UFC 데뷔전 패배를 안겼던 아이아퀸타를 상대로 설욕전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마스비달전의 '욕설 파문' 이후 경기가 일정하게 잡히지 않으면서 저평가된 부분이 있지만 사실 아이아퀸타는 UFC 라이트급의 숨은 강자다. 특히 최근 6경기 중 KO승이 4회에 달할 정도로 체급 내에서 손꼽히는 펀치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아이아퀸타에게 과거 한 차례 승리했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더 순위가 높은 리는 자신의 건재를 알리기에 매우 적당한 상대다. 과연 아이아퀸타는 리를 제물 삼아 운이 아닌 '실력'으로 타이틀 전선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UFC UFC ON FOX 31 알 아이아퀸타 케빈 리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