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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지 벌써 1년 반,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꽃다운 목숨을 잃고 제도 개혁을 약속한 지 2년 반이 되었는데 그동안 뭐했냐는 질책에 할 말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국회는 반성문을 쓰고 있다. 산업재해 사고로 사지에 몰리는 비정규직 문제, 즉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해 온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전 을지로위원장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당을 하며 그렇게 외치고 주장했던 일을 여당이 되어서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썼다.

2016년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 비정규직 청년이 홀로 사망한 구의역 사고와 쌍둥이 사례인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여론의 화살은 국회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 법만 통과 됐더라면 죽지 않았다'는 매서운 질책도 함께였다.

"상임위 문턱도 못넘고 제자리 걸음"

특히 지난 11월 발의된 사업주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비롯해, 유해·위험 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보장한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등 산재 법안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모두 만년 대기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입장하는 이해찬-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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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라도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처리하자고 야당에 제안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14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산재사고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출돼 있는데, 이번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해찬 대표는 당장 내주 당정 협의를 통해 산재 사고 근절을 위한 입법 논의를 진행할 것을 당부했다. 이 대표는 같은 자리에서 "최근 들어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많이 발생해 안타깝기 그지없다"면서 "당에서도 비정규직 사업 현장에 대해 잘 점검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고위원인 남인순 의원은 통계를 가져왔다. 남 의원은 "공공운수노조 조사 결과 5개 발전사에서 9년간 발생한 산재 사망 40명 중 37명이 하청 노동자였다고 한다"면서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 조치 위반의 경우 원청의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국회서 통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최고위원은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한 "여전히 (관련 법안이)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못 넘고 28년 만에 정부가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도 제자리걸음이다"면서 "나경원 신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또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2년 전보다 못한 한국당

자유한국당은 관련 사고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같은 날 원내대표 및 상임위원장 간사단 연석회의 등 회의는 물론 공식 논평에서도 문제 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2년 전인 구의역 사고 때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밝힌 반성과 비교해 봐도 현저히 다른 모습이다.

당시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은 2016년 6월 7일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들이 구의역에 붙인 포스트잇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면서 "작은 종이에 희생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죄송해야 할 주체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또한 "새누리당이 비정규직,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새누리당이 약자를 위해 일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도록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대 국회 당시에도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발의한 바 있는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처리가 더딘 이유를 사용자 측의 반대와 자유한국당 등 야권의 '발목 잡기'에서 찾았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반짝 관심을 갖는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한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원청 책임을 강화한 방식에 대한 법안 작업이 들어갔고, 올해 2월 입법 예고를 했는데 사용자 측의 반대가 심해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 "지난 11월 정부안을 도출했다. 자유한국당이 탄력근로제 등을 가지고 또 조건을 걸면 어렵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의원이 2013년 제출한 사업장의 산재 발생 건수와 재해율 공표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한 의원은 또한 "(사고가 발생해) 갑자기 이슈로 떠오르는 현상도 불편하다"면서 "평소에는 관심도 갖지 않다가 사건이 터져야만... 계속해서 사고는 나고 있다. 이슈가 잠잠해지면 또 (해결 노력이) 없어져서야 되겠나. 안전한 산업 현장을 만드는 것은 국민에게 줘야 할 약속이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11월 '위험의 외주화' 해결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와 노동자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권했다. 근로 계약에 따라 원청, 하청의 책임을 모호하게 두는 대신, 모든 노무에 대해 산재 책임과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책임강화 방안 마련 및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원청 측은 산재에 따른 경영상 손실 등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하도급 관계를 맹목적으로 선호하면서도, 그 관계를 근거로 산재 위험에 대한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산재 발생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산업재해, #산업안전보건법,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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