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을사오적을 비롯한 친일파들이 일왕(천황)에게 받은 욱일장. 한국 사회에서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이런 훈장을 오늘날에도 일부 한국인이 받고 있다는 YTN 보도가 있었다(2018. 12. 13). '을사오적이 받은 욱일 훈장, 지금도 한국인은 받고 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일본 최초의 훈장으로 일제강점기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은 물론, 친일파라면 대부분 받았던 훈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일부 외교관과 정치인, 경제인이 이 훈장을 받고 있습니다.  (중략) 이완용이 일본 천황으로부터 받은 훈장이 '훈1등 욱일동화대수장'.이토 히로부미 가슴에 달린 것과 같은 일본 최고의 훈장입니다."
 
YTN은 박태준 전 자민련 총재가 '훈1등 욱일대수장'을 받은 사실을 소개한 뒤, 한국인 수훈자 일부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욱일장 내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욱일대수장 수상자만 보면, 이병기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권철현, 유명환, 유흥수씨 등 전 일본 대사 가운데 일부가, 정치인으로는 김수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경제인 가운데는 손경식 경총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등이 받았습니다."
  
 욱일장에 관한 YTN 보도.
 욱일장에 관한 YTN 보도.
ⓒ YTN

관련사진보기

   
'일본 훈장' 기사, 부조리한 현실에 경종 울리는 보도지만

북한·중국·대만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직도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일협정을 졸속으로 처리해 식민지배 피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해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방해해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려 했다.

이런 사실들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가 일본제국주의의 벽에 가로막혀 있음을 보여준다. 1945년에 패망한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에서만큼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지도층 상당수가 여전히 일본 정부나 기업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국의 친일 청산을 훼방 놓는 모양새다. 부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YTN 보도는 우리 사회의 그 같은 현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보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완용 같은 친일파가 받았던 훈장을 해방 이후의 지도층 인사들이 아무 고민 없이 받아오는 부조리한 현실에 경종을 울릴 만한 보도인 것.
 
 일본 훈장을 받은 외국인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 외무성 홈페이지.
 일본 훈장을 받은 외국인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 외무성 홈페이지.
ⓒ 일본 외무성

관련사진보기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자국에서 훈장을 받아간 외국인들의 이름과 프로필이 공개돼 있다. 2000년 이전의 신문 기사를 담고 있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같은 곳에서도 욱일장을 받은 한국인에 관한 보도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은 욱일기 이름 아래 자행된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치를 떨고 있다. 그때 입은 상처는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욱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가 적지 않다.  
 
 대마도에서 찍은 욱일기.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불안정하다.
 대마도에서 찍은 욱일기.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불안정하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이런 사회에서 특권과 명예를 누리며 사는 지도층 인사들이 '욱일' 명의가 붙은 훈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물론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지만, 국민정서상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일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YTN 기사는 의미있다. 하지만 기사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YTN은 이완용이 받은 욱일동화대수장이 일본 최고 훈장이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욱일장에 관한 YTN 보도.
 욱일장에 관한 YTN 보도.
ⓒ YTN

관련사진보기

  
욱일장이 최초인 것은 맞지만, 최고는 아니다

1875년 제정된 뒤 1946년에 중단됐다가 1963년에 다시 시행된 일본의 훈장 제도에 관해 김정훈·황성원의 논문 '정부 상훈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일본의 상훈제도 현황 및 개혁을 중심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최고 훈장으로는 대훈위국화장이 있고, 이 외 훈장으로 동화대수장, 욱일장, 보관장, 서보장 및 문화훈장이 있다." - 한국인사행정학회가 2013년 발행한 <한국인사행정학회보> 제12권 제3호 중
  
 욱일장.
 욱일장.
ⓒ 일본 내각부

관련사진보기

  
욱일장 위에 상급 훈장이 더 있다는 점은, 상훈제도를 주관하는 일본 내각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각부'는 내각 전체를 지칭하는 부처가 아니다. 내각부라는 별도의 관청이 있다. 예전의 총리부·경제기획청·오키나와개발청을 통폐합하고 신설한 관청이다. 이곳 홈페이지에 이런 설명이 있다.
 
"대훈위국화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이다. 메이지 9년(1876년)에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勳位菊花大綬章)이 제정되고, 메이지 21년(1888년)에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勳位菊花章頸飾)이 제정됐다."
 
대훈위국화장 안에서도 대훈위국화장'경식'이 대훈위국화장'대수장'보다 높다. 따라서 '경식'이 일본 최고 훈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완용이 받은 욱일동화대수장은 최고 훈장이 아니었다. 지금은 없어진 이 훈장은 이완용이 살던 시기엔 대훈위국화장 바로 아래였다. 이 훈장에 관해 내각부 홈페이지의 설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동화대수장은 메이지 21년에 욱일장 내의 최상위 훈장인 욱일동화대수장으로 제정됐지만, 현재는 별도의 훈장으로 운용되고 있다."
 
일본 훈장의 서열은 대훈위국화장-동화대수장-욱일장 등으로 매겨져 있다. 처음에는 대훈위국화장 바로 밑에 욱일장이 있었지만, 욱일장 안에서 최고인 욱일동화대수장이 동화대수장으로 독립하면서 동화대수장이 대훈위국화장 바로 아래에 놓이게 됐다. 이완용이 받은 훈장은 당시엔 욱일장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동화대수장이 된 훈장이다. 지금은 물론이고 그때도 최고 훈장이 아니었다.

욱일장을 최고 훈장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는 것은 이것이 일본 최초의 훈장이기 때문이다. 1875년 훈장제도 시행 당시에는 욱일장밖에 없었다. 이때는 욱일장이 최초·최고의 훈장이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876년에 대훈위국화장이 생기면서 욱일장은 최고 자리를 내줬다. 그런 뒤에 이완용 같은 친일파들이 욱일장을 받았다. 최고 훈장을 받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대훈위국화장.
 대훈위국화장.
ⓒ 일본 내각부

관련사진보기

    
을사오적, 욱일장 단체로 받은 건 아니지만... 문제는 문제

YTN 보도를 읽다 보면, 이완용이 받은 최고 훈장을 오늘날까지도 일부 한국인들이 받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완용이 받은 훈장뿐 아니라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받은 훈장 역시 최고가 아니다.

그리고 을사오적이 욱일장을 단체로 받은 것 같은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을사오적 이완용·이지용·권중현·박제순·이근택 중 박제순·이근택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이전에 욱일장을 받았다. 일본 정부가 조선 관료들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수여하는 훈장을 받은 것. 민족반역자로 낙인 찍히기 전에 받은 훈장이므로, 을사늑약·정미늑약 이후에 받은 훈장과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일본 훈장을 받아오는 것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들이 뭔가 부정적인 일을 했다는 증표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본 훈장을 받아오는 일은 국민 정서를 해치는 일이다. 하필 '욱일'이라는 단어가 붙은 훈장을 받아오는 건 더욱 그렇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고 한일간 과거사 문제가 해소된 뒤라면, 이런 훈장을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받는다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훈장을 받아오는 건 한국인들을 '욱'하게 만드는 일이다.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