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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날씨가 추워지고 눈도 내린다. 우리 몸도 덩달아 움츠러든다. 마음속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곳이 그립다.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를 맡고, 비움의 미학까지 배울 수 있는 산속 암자로 간다. 내 집처럼 편안한 불일암이다.
 
순천 송광사에 딸린 암자 불일암은 법정 스님과 엮인다. '무소유'의 산실이다. 스님답게 살다가, 스님답게 간 법정 스님이 오래 머물렀던 곳이다. 법정 스님은 1932년 해남 우수영에서 외아들 박재철로 태어났다.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중 출가했다.
 
무엇보다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를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킨 스님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1970년대 중반부터 17년 동안 살았던 암자다. 속세 나이 43살 때 들어와서 60살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법정 스님을 상징하는 법문이 '무소유'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 했다.
 
법정 스님은 행복의 척도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렸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고 했다.
 
부를 쫓고, 소유에 목적을 둔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준 가르침이다. 욕심부리지 않는, 소탈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나고, 비움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법문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떠오르는 얘기들이다.
          
귀로 걷는 길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불일암은 송광사 매표소를 지나 만나는 청량각 앞에서 왼편 계곡을 따라간다. 참나무 숲길과 삼나무·편백 숲길, 대나무 숲길을 지난다. 솔방솔방 걸어도 30분이면 닿는다. 스님이 생전에 오가던 이 길이 '무소유 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무소유 길은 법정 스님이 입적한 뒤, 송광사와 순천시에서 단장했다. 안내판 몇 개, 스님의 법문 몇 개를 팻말로 세워둔 게 전부다. 법정 스님의 마음가짐으로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새소리에 귀를 열고 걸으면 더 좋다.
          
숲길에서 법정 스님의 법문을 만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아는 데 있다.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내려놓는 것이고, 비움이고, 용서이고, 자비다. 그 마음이 눈에 선하다. 속세의 번뇌도 사라지면서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여운이 길게 남는다.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불일암도 내 집처럼 편안하다. 대숲바람 서걱이는 대숲터널의 끄트머리에서 만난다. 대숲터널 사이로 법정 스님이 직접 짓고 생활한 작은 요사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그마한 채마밭도 보인다. 스님이 생전에 소유한 네 가지 가운데 하나다.
 
불일암 자리는 오래전, 암자 터였다.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 가운데 한 명인 자정국사가 창건한 자정암이 있던 자리다. 법정 스님이 1975년에 다시 지어 불일암(佛日庵) 편액을 내걸었다.
 
지금까지 모두 330만 부가 팔린 〈무소유〉를 시작으로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 빈 충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버리고 떠나기〉 등 스님의 많은 책이 여기서 나왔다. 생전의 스님 표현을 빌리면, 밥값의 일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곳이다.
           
빈 가지를 보며 나를 돌아보다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법정 스님은 불일암의 후박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잠들어 있다. 40여 년 전 스님이 암자를 지으면서 심었던 나무다. 스님이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나무다. 하지만 후박나무가 아니다. 향목련(일본목련)나무다. 후박나무는 사철 푸른 상록활엽수다. 스님을 품은 나무는 지금 이파리를 다 떨구고 없다. 스님의 글감으로 자주 등장했고, 스님이 후박나무라 썼다.
 
'뜰 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가 마지막 한 잎마저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았다.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홀가분하고 시원한지 모르겠다. 이따금 그 빈 가지에 박새와 산까치가 날아와 쉬어간다...(중략)…잎을 떨쳐버리고 빈 가지로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 자신도 떨쳐버릴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법정 스님은 사계절의 변화를, 이 나무를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봄이면 후박나무 꽃이 연꽃처럼 하얗고 은은한 향기를 머금는다. 여름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아름답다. 가을엔 잎사귀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잎사귀를 다 떨군 겨울에는 청빈한 모습, 무소유의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법정 스님은 출타했다가 돌아오면 '잘 있었냐?'며 나무를 안아주기도 했다. 이 나무를 스님이 후박나무라 얘기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보며 법정 스님을 떠올리는 이유다.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암자 뜨락에 나무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스님이 땔감용 장작으로 직접 만든 의자다. 조잡하게 생겼지만, 스님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법정 스님의 법문이 담긴 책갈피도 방문 기념품으로 놓여있다. 방문객들의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주전자에 물도 담겨 있다.
 
채마밭 한 쪽에 감나무가 서 있다. 필요한 만큼만 따고, 다른 생물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나머지를 그대로 둔 마음이 엿보인다. 겨울에 노루와 사슴, 토끼들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개울의 얼음까지 깨뒀다는 스님을 보는 듯하다.
 
불일암을 보듬고 있는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종갓집으로 통한다. 통일신라 때 창건됐다. 고려 때 보조국사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정혜결사의 도량으로 삼았던 절집이다. 16국사를 배출한,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는 승보사찰이기도 하다. 효봉스님과 구산 스님에서 법정 스님까지 훌륭한 선승들이 한국불교를 일으켰다. 예부터 송광사에 가서 계율 자랑하지 말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 이돈삼
 
태그:#법정스님, #불일암, #무소유, #송광사, #무소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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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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