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7월 15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사진전 및 북콘서트 강연이 있었다. 이 사진집은 '공평해 프로젝트' 일환으로 발매됐다. 이 프로젝트는 군사적 긴장감이 도는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을 잇는 바닷길 3000km를 요트로 항해하며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아시아의 바다를 공존과 평화의 바다 '공평해'(共平海)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아직 요트가 없다. 3000권의 사진집을 구매한 공동선주 3000명의 힘으로 요트를 마련할 예정이다. 
 
공평해 프로젝트 강연을 진행하는 송강호씨와 참석자들 강연에 참석한 강아지를 보고 웃는 참석자
▲ 공평해 프로젝트 강연을 진행하는 송강호씨와 참석자들 강연에 참석한 강아지를 보고 웃는 참석자
ⓒ 수피아

관련사진보기

 
왜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인가? 

제주도-오키나와-타이완은 각각 한국-일본-중국에 속한 섬들이 아닌 합병이 된 섬들이다. 그 전에 왕국이었고, 전쟁으로 인한 대학살의 피해가 있었으며 현재 군사기지들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의 창립자 송강호는 세계 분쟁 지역을 다니며 축적된 경험을 통해 전쟁이 벌어지는 패턴을 보았다. 한반도로 눈을 돌려보니 이 세 섬들이 연대하지 않으면 아픈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항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아래는 전시 때 초대 손님들에게 들려준 강연을 간추린 내용이다. 


제주, '목호의 난'부터 4.3까지

"1200년대 고려에 복속이 되었던 탐라 왕국 제주. 이후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고려는 제주를 전쟁 배상으로 팔아넘겼고, 원나라의 다루가치라는 사람이 통치를 했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몽골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제주대학 있는 아라동, 제주 교도소가 있는 '오라동'도 몽골 지명이다. 제주 도민들이 몽골 사람들과 혼혈이 돼서 그 사람들이 제주도의 중간 지배층 형성했고, 이후에 고려 사람들이 그들을 목호라고 불렀다. 목호들이 제주도의 수많은 말을 관리하였으며 관리한 말들을 원나라에서 많이 가져갔다. 

100년이 지난 뒤 결국 원은 급속도로 쇄약해졌고, 고려는 원나라의 쇠망과 함께 제주도를 평정하기 위해 장수를 보내는데 바로 최영 장군이다. 최영 장군은 제주를 평정하기 위해 몽골 피가 섞인 사람들은 다 죽였다. 그 사건이 바로 1374년에 일어난 '목호의 난'이다. 

1948년 제주 4.3 사건 이전에 대학살이 있었던 것이다. 최영 장군이 마지막 원나라를 지지하던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원의 목호들과 마지막 항전을 벌인 곳이 서귀포와 강정마을 사이, 법환인데 그 앞에 범섬이라는 섬이 있다.

그 범섬에 최영 장군이 고려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가서 남아있는 패잔병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절벽에 밀어 원나라 사람들을 다 없앴다. '땅 위에는 뇌수가 가득하고 바다는 피로 물들었다'는 당시 기록이 남아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라는 왕국

"1879년 일본에 식민지로 합병되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다. 오키나와 옛 수도였던 슈리성에는 1458년 제작된 '만국진량의 종'의 복제품이 있다. 그 종에는 류큐 왕국이었던 당시 교역한 나라 명단이 나오는데 그 첫 번째가 조선이고, 그 다음으로 대명(중국), 일본이라고 쓰여 있다. 류큐 왕국은 당시 해상교역을 활발히 했던 독립국가라는 걸 알 수 있다." 

1879년 메이지 시대에 일본 제국은 오키나와를 병합했다. 이후 1945년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하고,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오키나와를 점령한 뒤 상륙작전을 펼쳐 일본 본토를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키나와가 일본 점령의 전초기지였던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본토 공격으로부터 시간을 벌고, 원주민들이 미군 측에 가담할 것을 우려해 자살을 가장한 학살을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학살이 일어났다. 엄마가 딸을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면도칼로 죽였다. 일본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미국인들에게 잡히면 너희들 다 학살, 강간을 당한다'고 선동했다. 그렇게 죽은 학살된 동굴이 숱하게 많다. 일본이 패망하고 천황이 맥아더에게 사정을 해서 오키나와를 팔고 자기의 목숨을 구했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완전히 미국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키나와의 거주지는 거의 다 군사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완,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넘겨지다

"대부분 원주민들이 다 쫓겨나서 산골짜기에 살고 있거나 일부 해상부족만 바닷가에 살고 있다. 원래 원주민들은 중국인과 성격이 다른, 오히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이완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이주해왔다. 특히 명이 청에 패망하면서 1662년 정성공이라는 명나라 장군이 타이완에 군대를 데리고 와서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지배층을 형성하여 타이완은 청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청나라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망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전쟁 배상금으로 일본에게 타이완을 넘긴다. 그때 중국 사람들이 '그 다음은 조선이다'라고 예언을 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한일합방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몰랐다. 


타이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패망으로 다시 중국 차지가 되었고, 장개석 정권(국민당)은 중국의 모택동(공산당)과 싸우다가 타이완으로 밀려났다. 

그 과정 속에서 국민당은 1947년 2월 28일 타이완 주민들을 대학살하였다. 일명 2.28사건은 마치 제주4.3처럼 2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 마치 박정희와 비견되는 장개석 독재자는 타이완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감옥에 가뒀다. 타이완에 녹도라는 작은 섬에 있는데 그 섬에 가보니까 완전히 섬 전체가 감옥이었다. 그렇게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다 공산주의자들로 몰아서 감옥에 쳐 넣고 테러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저는 이 세 섬이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언어가 다르지만 말만 통하면 서로 상호간의 이해가 아주 잘된다. 그것이 저희가 섬들의 연대라고 하는 활동을 하면서 확인한 바이다."

 
공존과 평화를 위한 바다인 '공평해' 가상 지도 공평해 프로젝트는 요트를 타고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을 끼고 있는 바다를 '공평해'로 명명하고 세 섬을 돌며 서로의 역사를 공부하고, 연대하며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 공존과 평화를 위한 바다인 "공평해" 가상 지도 공평해 프로젝트는 요트를 타고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을 끼고 있는 바다를 "공평해"로 명명하고 세 섬을 돌며 서로의 역사를 공부하고, 연대하며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 송강호

관련사진보기

 
군사 기지 완공, 이대로 끝인가

"저는 해군 기지가 다 지어졌지만 끝이 아니라 이 건물들을 앞으로 6자 회담을 하는 컨벤션 센터로 바꾸면 어떨까(생각한다). 제주는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 중국-일본-남북한의 평화를 논의하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할 때 오히려 해군기지가 오히려 뜻 깊게 사용될 수 있는 거 아닌가싶다. 생명평화 공원이나 국제해상평화대학이나 유엔동아시아본부 등등. 유엔 본부가 지금 제네바, 뉴욕에 있는데 제 3의 본부가 아시아로 올 예정이다. 아마도 베이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이징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요청하자. 현재 유엔기구에는 강대국들의 패권주의가 팽배하다. 우리나라같이 작은 나라가 유엔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국제적인 기구를 유치하는 것이 평화를 위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제주도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뿐만 아니라 비무장평화의 섬, 제주도를 만들자.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를 비무장평화의 삼각지역으로 만들자는 그런 생각을 펼치는 것이다.

우리는 비무장 평화의 섬, 반전반핵 원전반대 절대자치 영구자치 그런 방향으로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이 연대를 해야 한다. 요트를 구해서 제주도에 제주-오키나와-타이완 평화 운동을 위해 애써왔던 선배들을 태우고, 우리도 역사교육을 받고 함께 훈련하면서 항해를 매년 진행하는 것이 제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젊은이들이 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강연에 이어 사진을 찍은 작가 박 로드리고 세희는 "이 책 판매 수익 전액은 평화항해 프로젝트를 위해서 다 쓰인다. 책을 사는 게 아니고 평화를 사시는 거다. 제주-오키나와-타이완 삼각형 항해 거리가 약 3000km 정도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요트가 없다. 평화의 힘을 보태어 평화 항해를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평해 프로젝트'는 2019년 여름, 평화 항해를 시작하기 전까지 전시 및 각종 모임과 콘서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평화 메시지를 전할 것이며 다가오는 12월 22일 오후 4시 신촌 뉴욕비앤씨 레스토랑에서도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12월 22일 오후 4시에 있을 '공평해 프로젝트' 강연 공동선주가 되었거나 관심있는 분들 모두 참석 가능하다
▲ 12월 22일 오후 4시에 있을 "공평해 프로젝트" 강연 공동선주가 되었거나 관심있는 분들 모두 참석 가능하다
ⓒ 수피아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