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포수 부문을 수상한 두산 양의지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8.12.10

10일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포수 부문을 수상한 두산 양의지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8.12.10 ⓒ 연합뉴스

 
11일 NC 다이노스와 FA 계약을 체결한 양의지는 '두목곰' 김동주 이후 두산 베어스라는 팀을 상징하던 선수였다. 근육질의 탄탄한 몸이나 날렵한 이목구비와는 거리가 있지만 곰 같은 체격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스윙과 정확한 타격을 자랑하는 강타자다.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으면서도 통산 장타율 .473에 20홈런을 넘긴 시즌이 4번이나 될 정도로 뛰어난 장타력을 겸비하고 있다.

혹자는 양의지의 진짜 가치는 수비에 있다고 말한다. 양의지는 강견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도루 저지능력뿐 아니라 투수를 편안하게 만들고 상대 타자의 허를 찌르는 노련한 리드가 돋보인다. 양의지에 대한 두산 투수들의 신뢰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두산에서 7년 동안 활약하며 94승을 기록했던 더스틴 니퍼트는 최근 모 인터뷰에서 옛 동료 양의지를 떠올리며 "그는 나에게 단순한 동료가 아닌 형제였다"고 극찬했다.

그런 양의지가 내년부터는 서울이 아닌 통합 창원시의 야구 팬들을 위해 배트를 휘두르고 마스크를 쓸 예정이다. 두산 팬들은 양의지의 이적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FA 이적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그리고 양의지는 이미 두산 구단에게 충분히 기여했다). 이제 두산은 당장 내년 시즌부터 양의지의 뒤를 이을 새로운 주전 포수를 찾아야 한다.

김경문-김태형-홍성흔-양의지로 이어진 '포수왕국'의 계보
 
경기 지켜보는 김경문 감독 27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 경기. 3회 초 NC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4.27

김경문 전 감독 ⓒ 연합뉴스

 
두산을 '포수왕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KBO리그 출범 초기부터 꾸준히 좋은 포수들을 배출해 왔기 때문이다. 프로 초창기에는 '불사조' 박철순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김경문(전 NC 감독)과 충암고 시절 봉황기 MVP를 수상했던 조범현(전 kt 위즈 감독)이 있었다. 두 선수 모두 현역 시절 타격 성적은 썩 뛰어나지 않지만 영리한 투수리드가 돋보이는 수비형 포수로 은퇴 후에도 지도자로 크게 성공했다.

1990년대에는 각기 다른 유형의 포수가 등장했다. 김경문의 뒤를 이은 수비형 포수 김태형(현 두산 감독)과 좋은 방망이 솜씨를 갖추고 있던 공격형 포수 박현영이었다. 그리고 1995년 프로 3년 차의 거포형 포수가 혜성처럼 등장해 두산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시즌 14개의 홈런 중 12개를 잠실 야구장에서 터트렸던 '원조 잠실홈런왕' 이도형(두산 2군 타격코치)이었다(물론 이도형은 수비에서 약점을 보여 2000년대에는 주로 지명타자로 활약했다).

90년대 중·후반에는 두산의 본격적인 '포수수집'이 시작됐다. 두산은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국가대표 출신 포수 최기문(롯데 자이언츠 배터리 코치)을 지명했고 1997년에는 LG 트윈스와의 꼴찌쟁탈전에서 승리(?)하며 '10년에 한 번 나오는 포수'로 불리던 진갑용(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을 지명했다(당시 진갑용의 연고팀은 롯데였지만 롯데는 진갑용의 부산고-고려대 동기 손민한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작 '두산 시대(1999년부터 팀 명을 OB에서 두산으로 변경)'의 첫 번째 주전 포수는 최기문도 진갑용도 아닌 홍성흔이었다. 입단 당시 포수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홍성흔은 입단 첫 해 신인왕에 올랐고 2001년과 2004년에는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홍성흔은 롯데 이적 후 지명타자로 변신해 우타자 최초의 2000안타를 기록하는 등 통산 타율 .301 209홈런 1120타점으로 서울과 부산의 야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두산은 홍성흔이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증상)에 시달리며 포수를 그만둔 후 한동안 심각한 포수기근에 시달렸다. 채상병(삼성 2군 배터리코치)과 최승환, 용덕한(NC 배터리코치) 등에게 기회를 줬지만 누구도 붙박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두산은 2010년 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한 양의지가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포수왕국'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양의지도 더 이상 두산의 선수가 아니다.

'슈퍼백업' 박세혁이 앞서 가는 가운데 이흥련과 장승현 도전장
 
 20일 경남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6회 초 NC 무사 만루 상황 두산 6번 박세혁이 안타를 친 후 1루에서 주먹을 쥐고 있다. 2017.10.20

두산 박세혁. ⓒ 연합뉴스

 
외부영입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내년 시즌 두산의 가장 유력한 주전 포수 후보는 역시 '슈퍼백업' 박세혁이다. 프로 입단 초기만 해도 박철우 코치(두산 벤치코치)의 아들이라는 점 말고는 이렇다 할 특징이 보이지 않던 박세혁은 상무 시절이던 2015년 타율 .350 12홈런 73타점을 기록하며 범상치 않은 타격 잠재력을 뽐냈다(당시 박세혁과 함께 퓨처스리그에서 뛰었던 군경팀 선수로는 전준우, 안치홍, 한동민, 김헌곤 등이 있었다).

박세혁은 전역 후 잔부상이 많았던 최재훈(한화 이글스)을 제치고 두산의 2번째 포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양의지가 부상으로 33경기에 결장했던 작년 시즌에는 97경기에 출전해 타율 .284 5홈런 26타점의 쏠쏠한 성적을 올렸다. 박세혁은 올 시즌에도 89경기에서 타율 .282 3홈런 22타점으로 활약하며 히어로즈로 이적한 이지영과 함께 리그 최고의 백업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내년이면 프로 8년 차가 되는 박세혁은 아직 풀타임 주전 경험이 없다. 양의지의 백업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였지만 올해 정규시즌 93승을 따냈던 두산의 주전포수가 될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만약 박세혁이 '포수왕국의 주전 포수'라는 무게감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두산은 작년 4월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보낸 최재훈을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힘든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양의지와 박세혁에 가려 제대로 된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이흥련에게 양의지의 이적은 한편으론 반가운 소식이 될 수 있다. 비록 전역 후에는 7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이흥련은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 타율 .260 6홈런 25타점의 괜찮은 타격 솜씨를 뽐낸 바 있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김태형 감독의 눈도장을 찍는다면 박세혁과 충분히 주전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갖췄다.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했던 장광호 전 코치의 아들인 장승현 역시 두산의 안방 경쟁에 뛰어들 다크호스다. 비록 1군 경험은 올 시즌에 얻은 20경기가 전부지만 한정된 기회에서도 .385의 고타율을 기록했다. 사실 이흥련은 1989년생, 박세혁은 빠른 90년생으로 1987년생의 양의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장승현은 20대 중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에 따라 내년 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부여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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