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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제정 70주년 기념일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정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딛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반성과 미래비전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유엔 창립 이후 거의 제일 먼저 시급히 착수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전문(前文)과 기본적 권리,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3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7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봐도 구성과 내용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문헌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70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고 있는 30개 조항의 인권목록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1948년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로만 범위를 좁혀도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입니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제주 4.3항쟁과 뒤이은 여순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해이기도 합니다.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샤요궁에서 온두라스와 예멘을 제외한 당시 유엔에 가입한 56개 나라가 세계인권선언을 제정한 반면 9일 전인 12월 1일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이 공포되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12월은 세계인권선언과 함께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70주년이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둔 국가보안법은 형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당시의 좌익과 사상범을 처벌하기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법입니다. 공포 이후 몇 차례 개정만 되었을 뿐 없어지지는 않으면서 이승만 정권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양심수와 사상범을 만들어 냈고 유엔 에서 수차례 한국 정부에게 폐지와 개정을 권고한 악법이기도 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조항은 흔히 찬양고무죄로 알려진 7조입니다.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는 '찬양·고무·선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모호한 기준으로 공안기관이 광범위한 법 적용을 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독재와 군사정권에서 이 조항이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는 주요 근거가 되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이 법으로 적지 않은 시민들이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당장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환영하는 일부 단체들의 의견표명과 행사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터넷 공간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인권선언 18조는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의 자유,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며 사상·양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19조는 "모든 사람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에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을 뛰어넘어 정보와 사상을 모색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고 의사 표현의 자유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인권선언에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상·양심의 자유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편적 권리로 보장되어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기 9일 전에 이러한 권리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반대하는 국가보안법이 제정 공포된 것은 1948년 당시의 복잡한 국내정세를 고려한다고 해도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더구나 70년이 지나도록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적인 주요 내용을 개정하지도 철폐하지도 못한 것 또한 분명 수치스러운 세월이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문을 펼쳐보고 있는 엘리너 루스벨트 인권선언문 작성 소위원회 위원장
 세계인권선언문을 펼쳐보고 있는 엘리너 루스벨트 인권선언문 작성 소위원회 위원장
ⓒ 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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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시설 한 부모 아이 돌봄 서비스 지원 예산 61억 3800만 원의 '전액 삭감'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일부인 17억 1900만 원이 삭감된 채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사회복지 예산을 바라보는 국회의원의 편협한 시각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송언석 국회의원은 70년 전에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의 25조 2항에서 이미 "자식이 딸린 어머니,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전체 사회로부터 특별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 부모가 결혼한 상황에서 태어났든, 미혼인 상황에서 태어났든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사회적 보호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지를 알고 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부와 기업계는 탄력근로를 6개월이나 1년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를 실시하면서 이제 겨우 과로 사회를 탈출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는데 다시 탄력근로를 확대하면 실질임금도 내려가고 노동시간도 다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계인권선언 24조에 "모든 사람은 휴식할 권리 그리고 여가를 즐길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에는, 너무 심한 노동을 하지 않게끔 노동시간을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정기적인 유급 휴가를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라는 조항 내용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휴식과 적절한 수준으로 노동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선언작성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세계인권선언 제정을 주도한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원래 국제인권법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당시의 유엔 수준에서는 국제법을 제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선언'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법이나 규약이 아닌 선언형식이라서 이를 지켜야 할 강제의무는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 국가가 합의한 '보편적' 인권 문헌이라는 점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은 각 국가가 지향해야 할 최고점으로서의 '이상향'이 아니라 오늘날의 정상적인 국가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보장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맞을 것입니다.
  
2013년 타계한 프랑스인 스테판 에셀이 93세인 2011년에 출간한 작은 소책자 '분노하라'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팔렸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맞서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에셀은 그의 책 '분노하라'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만능주의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하고 신자유주의의 범람으로 인해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며 비판합니다.

'분노하라'에서 특이한 점은 책의 곳곳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전 후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실무진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에셀의 '분노하라'는 메시지와 '세계인권선언'의 언급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에셀은 '세계인권선언'을 그의 책에서 불러냈을까요?

에셀은 인권이 위협받고 인간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상황에 대해 참지 말고 저항하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러한 분노와 연대의 구체적인 교범으로 에셀은 '세계인권선언'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이 파시즘에 맞선 결과로 탄생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시장 만능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분노하고 싸우라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어떤 면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은 재미없고 밋밋한 문헌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70년 전의 문헌이다 보니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 동안 세계인권선언이 사회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유력한 지지대가 되었던 것은 에셀이 이야기한 대로 불의를 거부하고 부정의한 세상을 바꾸려는 세력에게는 세계인권선언이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정 기념일인 오늘, 시간을 내어서 세계인권선언의 전문과 30개 조항을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조항이 7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지금의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원문과 해석판 읽을 수 있는 곳 :
http://www.dchr.or.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data_b&wr_id=4

태그:#세계인권선언70주년, #인권,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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