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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9년 1월 24일 오후 2시 50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원한다는 소식이 7일자(현지 시각) <월스트리트 저널>를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제10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회의를 앞두고 나온 보도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협상 과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 분담금을 2배 혹은 1.5배 인상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2018년에 한국 분담금은 약 9602억 원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의 절반에 해당한다. 따라서 2배를 인상하게 되면, 한국이 사실상 전액을 떠맡는 셈이 된다.

2배 인상을 원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1.5배 인상을 원한다는 소리도 나오는 것을 보면, 트럼프의 진의가 1.5배 쪽에 가까울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한국이 떠안기에 과도한 금액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단 한 푼이라도 한국이 분담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합리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돈을 낼 게 아니라 오히려 받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보낸 것은, 한국을 북한 침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미국의 국익에 대한 위협을 동아시아에서부터 차단할 목적으로 군대를 두는 것이다. 한국 보수진영의 생각과 정반대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한미군이 미국의 국익과 무관하게 대한민국 이익을 위해 '헛되이' 사용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자율성에 관한 미국의 인식과 행태 연구'라는 논문에서 권영근 한국국방개혁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의 전쟁에 연루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 뒤, 박정희 정권 때 주한미군 문제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사이러스 밴스(Cyrus Vance) 미국 특사와 관련해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아래의 말줄임표는 권영근 논문에 있는 그대로다.
 
"당시 대한민국의 전쟁에 대한 연루 우려를 밴스 특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대한민국에는 독수리 또는 비둘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호랑이로 보였다. 남북한 모두,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재통일을 원하고 있었다. ······ 대한민국의 반격으로 북한과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서울 인근에 있는 1만 2천여 명의 미국 민간인들의 생명이 즉각 위험해질 수 있다. ······ 한반도 전쟁은 북한군의 심각한 남침에 의해서 또는 남한의 북한 공격을 통해서 점화될 수 있다.'"
-2016년에 한국전략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전략연구> 제23권에 수록.
  
북한이 일으킨 것이든 남한이 일으킨 것이든 간에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전쟁에 미국이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나타난다. 그로 인해 주한미군이 '헛되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민간인들까지 희생될 가능성을 미국은 겁내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영어로 'US Armed Forces in Korea'다. 미국 특사의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주한미군은 'in Korea'(한국에 있는)이지 'for Korea'(한국을 위한)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주한미군은 'in Korea'이지만 'for USA'일 뿐이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오로지 미국을 위해 체류하는 군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1976년 이후에 필리핀 주둔 미군이 그랬던 것처럼 주한미군도 시설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미국의 이익을 위한 군대에 한국이 땅을 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주둔비용까지 지불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시설 사용료를 요구해야 이치에 맞게 되는 것이다.

태평양 지배권을 거머쥔 미국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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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을 연상해보면, 주한미군이 'for USA'라는 게 한층 명확해진다. 그때 만약 미군이 북·중 연합군에 패했다면, 미군은 한반도로부터 멀리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물론이고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까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괌과 하와이에 대한 지배력에까지 영향을 주어, 미국의 서부전선이 미국 서해안에 조성되는 결과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세계 교역이 바닷길에 의존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중 연합군이 승리했다면, 북한은 바다로 나가는 길을 뚫기 위해서라도 오키나와를 미국 영향권에서 독립시키려 했을 것이다. 북한이 바다로 나가는 길은 현재까지도 일본-대마도-남한-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 라인에 의해 봉쇄돼 있다. 이 라인은 북한의 해상 교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중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면, 북한이 오키나와 민족해방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북·중 연합군이 승리했다면, 중국이 필리핀을 미국 영향권에서 빼내고자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미서전쟁)의 결과로 미국에 넘어간 필리핀은,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진출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중국은 자국 코앞에 있는 필리핀에서 어떻게든 미국의 흔적을 몰아내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과 오키나와의 관계를 끊고 중국은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끊었다면, 1898년에 미국 식민지가 된 괌도 미국 영향권에서 떨어져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은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면, 미국의 적대 세력이 태평양을 넘나들며 미국 서해안을 위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이란 바다는 넓기는 하지만, 중간에 큰 섬이 없다. 그래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동안에 군사적 반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것은 태평양 서쪽에서 미국 방어선을 뚫은 국가가 미국 서해안까지 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이 태평양 지배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1886년에 인디언과의 전쟁을 끝내고 동아시아 진출에 나선 미국은 1898년과 1899년에 집중적으로 전쟁을 벌여 태평양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2년 동안 미국은 하와이·필리핀·괌·사모아·웨이크섬을 점령했다.

짧은 기간 동안 수차례의 전쟁을 거쳐 태평양 지배권을 확립한 미국은, 곧바로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얻게 됐다. 1905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는 합의를 도출한 것은,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해졌기에 가능했다.

필리핀을 떠났던 미군은 왜 다시 돌아갔나
 
 미국-스페인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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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날에는 태평양을 정복하는 일이 1890년대보다 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에 벌어진 미국의 태평양 정복은, 태평양이란 바다가 지리적으로는 넓지만 군사전략적으로는 좁은 공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세계 지도를 재구성한다면, 동아시아와 미국이 붙어 있는 지도가 나오게 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외교를 잘 해서 미국을 꼭 붙들어 두었기 때문이 아니다. 군사전략적으로 보면 한국과 미국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밀리면 일본·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괌에서도 밀리고, 이렇게 되면 하와이를 포함한 태평양 전체에서 밀리게 돼, 워싱턴주-오레곤주-캘리포니아주로 이어지는 서해안이 미국의 최전방이 될 수도 있었다.

반미시위로 1992년에 필리핀을 떠났던 미군이 1999년에 방문군 협정을 체결해 최장 14일 주둔의 기회를 얻고 2014년 방위협약 확대협정을 체결해 재주둔의 기회를 얻어내고 현재 재주둔을 준비 중인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중국의 급부상이 두려워 미군을 불러들였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태평양 방어선을 지킬 목적으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미국이 필리핀인들의 눈치를 무릅쓰면서까지 필리핀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은, 동아시아가 미국 안보에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국한테는 한반도가 필리핀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국이 돈을 낼 게 아니라 오히려 받아야 한다는 이치가 명확해진다.

1970년대에 닉슨 행정부와 카터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했던 것은 당시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었다. 베트남전쟁 패배로 동아시아 패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마저 미국의 입지를 흔들지 못하도록 하려면 중국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타이완을 몰아내고 중국을 그 자리에 앉힌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 코앞에 있는 주한미군을 감축해준 것도 중국에 대한 성의표시의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주한미군 완전 철수는 자국 국익에 해롭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에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나올 때마다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반환할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한국에 계속 주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욕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무마하고 미군에 대한 반감을 약화시킬 목적이었던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이 자국의 이익과 무관하다면, 자존심 강한 미국이 "양키 고 홈!" 소리를 수없이 들으면서까지 한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역대 보수정권은 이런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이는 그들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의존하다 보니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군이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주둔하는 것은 한국 안보를 위한 일이니 한국이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1991년부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을 주기적으로 체결했던 것이다. 절반은 스스로 속고 절반은 미국에 속은 탓에, 'in Korea'이지만 'for Korea'는 절대 아닌 군대를 이제껏 지원해왔던 셈이다.

"한국을 지켜주는데 받는 것이 없다"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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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을 트럼프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을 요구할 때마다 그가 사용하는 화법을 들여다보면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트럼프가 자주 내뱉는 말이 2015년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우리는 독일을 지켜준다. 일본을 지켜준다. 한국을 지켜준다. 이 나라들은 강하고 부유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는 것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을 바꿀 때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트럼프는 필리핀 이야기를 빼놓는다.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했다가 협정 등을 통해 되돌아오고 시설 사용료까지 내게 된 일은, 미군의 해외 주둔이 미국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는 아주 적절한 사례다. 트럼프가 이런 이치를 몰랐다면, "우리는 독일을 지켜준다, 일본을 지켜준다, 한국을 지켜준다" 다음에 "필리핀도 지켜준다"는 말을 무심코라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심코라도 그 말은 하지 않는다. 해외 미군의 존재 이유를 잘 알기 때문에, 분담금 이야기를 꺼낼 때 필리핀 이야기를 조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대 거짓말이라는 게 있다. 그중 하나는 '밑지고 장사한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상인도 손님이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의 보수정권은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를 위한 존재'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엄청난 혈세를 매년 미군에 퍼주었다.

노인복지, 출산정책, 학교 교육, 보건복지, 중소기업 지원 등에 쓰였다면 한국을 부강하게 했을 거액의 돈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미군에 넘어갔던 것이다. 돈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근 30년 동안 도리어 돈을 퍼주는 '바보짓'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지금 단계에서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남·북·미 3각 관계를 고려한 결과인 측면도 있다. 북·미 간 대화를 적극 주선하는 한국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북·미 대화를 주선하려는 의욕에 너무 이끌려,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북·미 수교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다 보면 주한미군 분담금 외에도 많은 것을 내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이 초래되고,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의 북·미 관계 중재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북·미 관계를 움직일 수 있는 한국 정부의 역량마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미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주둔도 필요하고 북한과의 대화도 필요하다. "주한미군 나가라!"고 외치면 좀더 있으려 할 게 뻔하고, 북·미 대화가 끊어지면 북한 못지않게 미국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미 관계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할 필요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날의 보수정권들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방위비 특별협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의 이익과 자존심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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