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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에 성희롱 제소한 대학노조원에게 추가된 괘씸죄

[기획] 2018 한국외대 미투. 2006 외대노조파업을 향하다. <2> 2년 만의 복직 후, 출근 4시간 만에 해고당한 대학노조 간부
18.12.12 02:5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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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씨는 2007년 2월 해고됐다. 270 일의 파업 끝에 노동조합 간부 9명도 해고되었다.
2006년 4월에 시작된 한국외대 직원노조의 파업은 2007년 1월 22일 노사합의로 종료됐다. 노사는 단체협약을 끝으로 "학교는 파업사태와 관련하여 추가 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면책규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파업 종료 후 일주일이 지난 2007년 2월 1일. 학교 측은 노조원 36명을 징계처분 한다. 이 중 파업 지도부였던 직원 A 씨를 포함한 9명에 대해서는 해임처분(해고)이 내려졌다. 학교가 내세운 징계 사유는 "불법파업 및 불법행위 주도,가담으로 학교의 규율과 질서를 심대히 문란케 한 것" 등이었다.

ㅣ성희롱 제소한 A 씨에게 적용된 괘씸죄...학교 측, 성희롱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당시 징계관련 문서들을 살펴보면 A 씨의 징계사유에는 다른 피징계자들의 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
"확인되지도 않은 불명확한 사실을 이사장 및 총장 보직교수 전체가 행한 것처럼 허위선전, 유포하여 이사장 및 총장, 보직교수 개인 및 학교의 명예를 심대히 훼손하는 행위를 주도함"
A 씨는 앞서 2006년 6월 파업 중 일어났던 학교 측 L교수의 성희롱을 인권위에 제소한 상태였다.

 
(왼쪽)A 씨와 같이 해고된 다른 노조 간부의 징계 처분통지서. (오른쪽) A 씨가 2007년 2월 1일 받은 징계 처분통지서. 파란색 표시한 부분이 A 씨에게 추가된 징계사유. 파란색으로 표시한 징계사유는 A 씨와 함께 인권위에 성희롱 사건을 제소한 B씨에게도 적용됐다. ⓒ 외대알리
   
주목할 점은 A 씨와 함께 해고된 노조 간부 B씨에게도 동일한 징계 사유가 있었던 것이다. B씨 역시 A씨와 함께 L 교수의 성희롱을 인권위에 제소 한 바 있다. 당시 L 교수는 B 씨에게는 "예쁜 것하고 말하니까 말도 잘 나오네" 라 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씨의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성희롱 사건을 인권위에 제소한 사람에게만 특정 징계 사유가 적용된 것이다. 정황상 A 씨가 성희롱 사건을 인권위에 제소하고 공론화 한 것에 대해 학교가 괘씸죄를 적용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A 씨의 해고 이후 인권위는 A 씨에 대한 L 교수의 성희롱을 사실로 판단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후 제기된 A 씨의 해고무효소송에서도 인권위의 판단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또한 A 씨에게만 적용된 특정 징계사유가 "A 씨에 대한 L 교수의 성희롱 관련 선전활동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구호를 외치거나 작은 종이에 기재하여 외벽에 부착하거나 유인물에 기재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ㅣ징계위원으로 선임된 성희롱 L 교수, 해고된 피해자 A 씨
해고된 A 씨와 노조 지도부 8명은 학교 측에 징계 재심 요청을 했다. 이에 학교 측은 2007년 2월 28일을 징계재심위원회 시행일로 결정하고 징계위원 명단을 노조 측에 통보했다.
   
노조 측에 통보된 신 모 교수 대신 L 교수가 징계재심위원회 당일 징계위원으로 참여했다 ⓒ 외대알리
    그런데 징계재심위원회 당일, 징계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성희롱 가해자 L교수가 징계재심위원으로 참여한다. 애초 노조 측은 신 모 교수를 징계위원으로 통보한 상태였다.

당시 한국외대의 학교법인 동원육영회 정관도 "교원징계위원회 위원은 그 자신에 관한 징계사건을 심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었지만, L 교수는 징계위원으로서 A 씨에 대한 징계재심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최근 신 모 교수에게 문의한 결과 당시 학교 측에서 본인에게 징계재심위원으로 통보를 해줬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징계재심위원장이었던 한 모 교수에게도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본인은 학교를 떠난 몸이라며 취재요청을 거부했다.

L 교수를 포함해서 징계재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A씨와 노조 지도부에 대해서 징계위 원심의 해임처분을 확정했다. 학교 측은 3월 2일 부로 A씨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이후 같은 달 28일 인권위가 L 교수의 성희롱 사실을 판단했으나, A 씨는 이미 해고된 후였다.

A 씨와 해고 노조원들은 학교를 상대로 법원에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학교 측은 면책합의이전인 2006년 12월 7일 징계위원회에서 노조원들에 해임건을 의결했으므로 면책합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대법원은 파업에 대한 면책합의에 근거해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가 무효라며 외대 노조측의 손을 들어줬다.


ㅣ2년 만의 복직. 출근 4시간 만에 재해고
A 씨가 복직 판결을 받은 후 첫 출근날. 한 직원이 A 씨에게 다가와서는 미안한 얼굴로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그렇게  다시 출근한 지 불과 4시간 만에 A 씨는 재해고 당한다. 해고 사유는 A 씨의 비정규직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는 것. A 씨는 2003년 임시직으로 채용된 후 2006년까지 이미 3년을 근무한 터였다.

A 씨는 또다시 해고무효소송을 하게 됐다. 1심 법원은 "2004년 단체협약 중 2009년 12월까지 원고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약정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번에도 대법원까지 상소를 거듭했다. 소송이 끝난 것은 2014년 6월. 박철 총장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야 A 씨는 최종적으로 복직할 수 있었다. 2006년 4월에 시작한 A 씨의 파업은 2014년 6월이 되어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7년 반 만이었다.

7년 반 동안 이어진 수차례의 소송, 복직과 해직의 반복은 A씨와 노조원들에게 버거운 짐이었다. 파업 기간 중 발생한 파산 등의 생계문제, 이혼과 같은 가정파괴,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의 갈등, 정신적 외상 등 노조원들은 심각한 파업 후유증을 겪었다.

2012년 12월 25일 성탄절, 당시 노조 지부장이었던 이호일 씨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현 글로벌캠퍼스)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숨진 이호일 씨를 발견한 것은 전날부터 연락 두절된 남편을 찾아 노조 사무실에 온 그의 아내였다. 당시 곧 대학에 입학하는 딸과 초등학생이었던 이 씨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아버지의 기일이 되어버렸다. 이 씨의 상주는 초등학생 아들 이 군었다.

다음날인 26일 이호일 씨의 문상객을 받던 당시 노조 수석부위원장 이기연 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이 날에 출연 중이던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현 성남시장)은 방송 도중 비극적인 문자를 받는다. 이기연 씨의 사망소식이었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이호일 지부장의 해고무효소송 변호를 맡았던 김선수 현 대법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결과가 뻔해 보이는 소송을 끝까지 이어가는 대학의 대응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간과 돈은 강자의 편이란 점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일까"라고 학교 당국의 대응을 지적했다.  

잇따른 부고 소식에 그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심상정, 고 노회찬 당시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당시 은수미 (현 성남시장) 민주통합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도 직접 조문을 하거나 SNS 등을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 ⓒ 문재인 대통령 트위터
 
| A씨, '돌아가서도 똑같은 선택하겠다'... 외면하는 교수들
A 씨는 7년 반 동안의 파업과 복직 과정을 회상하면서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는 한국외대를 떠났지만 당시 파업에 참여해 두 차례 해고를 당했던 김은주 씨도 "후회되지 않는다. 당시 파업을 한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며  "그것 조차 하지 않았으면, 노동조건이 더 형편없이 망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직 교수의 노조원 폭행과 성희롱 사건을 알리다가 무기정학을 당한 조명훈 씨 역시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반면 2006년 당시 총무처장(파업 대응 주무부서)을 맡았던 교수는 파업과 관련한 취재요청에 "오래 지나서 기억에 없거나 모른다"며 " 더 이상 이런 연락은 사절한다" 고 답했다. 당시 A 씨의 징계재심위에 참석해 해고에 동의한 한 모 교수 역시 "이미 학교를 떠난지 3년이 됐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당시 파업과 관련한 대화를 원치 않아 했다. 2006년 당시 학생복지처장(서울)을 맡았던 교수도 취재요청에 사의를 표하며 "다만, 그와 같은 아픈 역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4년 전인 2014년.파업 대응 비용을 교비에서 사용한 혐의로 형사고소 되어 벌금 1천 만원 선고를 받은 박철 전 총장은 본인의 정년퇴임 출판기념회에서 2006년 파업에 대한 견해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사진 출처: 유튜브 애국뉴스 갈무리 ⓒ 애국뉴스
 
"저는 후회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중략)...아무리 사회가 혼탁하여도 진리는 살아 있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습니다."

외대알리 정소욱 기자(jane9709@gmail.com)
외대알리 인보근 기자(coriendo9@gmail.co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외대알리 홈페이지에도 중복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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